20세기 한국의 트라우마와 판타지, 박수근과 이중섭
critic & column | 2006/04/18 17:16
20세기 한국의 트라우마와 판타지, 박수근과 이중섭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하면 으레 박수근과 이중섭 둘을 꼽곤 한다. 그것은 미술전문가와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이견 없이 공감하는 정설에 가깝다. 1910년대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의 역경 속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에 걸출한 자취를 남긴 이들은 20세기 한국의 트라우마를 온몸에 담고 있는 예술가이다. 한 시대의 정황들이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일반적으로 초월의 관점을 가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월의 관점은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독소조항이다. 한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들의 삶의 모습을 살피지 않은 채 그가 남긴 작품에만 심미안이라는 돋보기를 들이댄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신화화된 물신(物神)으로서의 예술상품 만이 남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예술작품의 물신화를 걷어내는 한 방편으로 그들의 작품과 더불어 그들의 시대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 아니겠는가.
박수근과 이중섭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몸으로 받아낸 역사 속의 인물들이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사건과 정황 속에서 살았던 두 화가는 그 상처를 부드럽게 받아 안고 살았느냐, 아니면 세상의 격변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대비되는 양상을 보인다. 강원도 양구출신으로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서 어렵사리 화가의 길을 걸었으며, 한국전쟁 이후 도시 서민의 남루한 삶을 그려낸 박수근(1914-1965). 평양 출신으로 도쿄제국미술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으나 전쟁 중에 월남해서 일본인 아내와 이별하면서까지 화가의 길을 걸었으며,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격정적인 예술혼을 불태운 이중섭(1916-1956). 이들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시대의 짐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매우 달랐다. 박수근이 차분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벌거벗은 나무를 그린 반면에, 이중섭은 격정에 찬 필치로 황소를 그린 화가이다. 양구 사람 박수근이 차분하고 진득한 성심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평양 사람 이중섭은 격정적이며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예술가의 신화를 만들었다.
박수근은 따뜻한 마음으로 서민의 삶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그림들 가운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식상한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인생행보에 있어 가족의 존재는 매우 각별하다.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불행하지 않았던 화가 박수근. 그는 아내와 아이들의 존재로 인해 화가로서의 힘겨운 삶을 딛고 20세기 한국미술사를 대표하는 국민화가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는 곡절 많은 삶 속에서 화가의 꿈을 키웠으며, 6.25 이후 서울에 정착해서 마음 착한 화가로 살았다. 서울 창신동 판잣집에서 살림을 꾸리면서 그가 그린 것은 보잘것없이 남루하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서민들의 모습이었다. 박수근이 여느 화가들과는 좀 다른 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예술가의 진지하고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그림이 무엇을 담고 있는가 하는 소재나 주제의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무엇으로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점이다. 나무, 아내, 동네사람들 등의 그림 대상들을 빼고 나면 우리가 기억하는 박수근 그림의 실체는 우둘투둘하면서도 흐릿하고 아련한 표면의 질감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그림들에서는 격렬한 흔적보다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따뜻한 마음이 돋보인다. 색이나 색면들은 갈등과 긴장이 거의 없는 갈색, 노란색, 밤색 중심의 심플한 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색면들은 특유의 화강암질 표면효과를 통해 깊은 맛을 더해준다. 마치 화강암 위에다가 그림을 그린 것 같은 표면효과는 박수근 그림의 대명사와도 같은 요소다. 마티에르(재질감)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요소는 물감을 여러 겹 덧칠해서 독특한 맛을 내는데, 몇 년 전에 한 미술관의 박수근 전시에서는 첨단 과학 기법으로 박수근 그림의 덧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해서 박수근 마티에르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박수근의 부드러움에 비해 이중섭의 삶과 예술은 격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중섭만큼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극적인 삶을 살다간 예술가도 드물다. 평양 출신인 그는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고통 속에서도 치열하게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이중섭 그림은 강렬한 느낌을 풍기는 표현주의 화풍을 가지고 있다. 세부 묘사에 치중하기보다는 빠른 붓질로 윤곽선을 중심으로 대상의 특징을 그려내는 것이 표현주의 화풍의 묘미이다. 얼핏 보아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특징을 분간해내는 것이 애매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유념해야 할 것은 인상주의 회화가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의 특성을 잡아내는 데 주안점을 둔 반면, 표현주의 화풍은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감성을 격정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색이나 형태를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데 있어 훨씬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 <황소>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중섭의 주된 관심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재현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대상의 특질을 포착하여 화가의 감성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이중섭의 그림에도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혼자 살면서 가족들에게 안부편지와 더불어 그린편지를 보내곤 했다. 오늘날 담배포장지에 그린 은지화로 잘 알려진 동화 같은 그림들은 알고 보면 그가 아이들에게 그려 보낸 그림편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은지화 뿐만 아니라 유화작품들 가운데서도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단란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근현대 미술작품 가운데 가족을 그려낸 작품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이중섭의 가족 그림이 각별한 까닭은 그가 가족에 대한 실존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시기에도 예술 창작의 혼불을 놓지 않아 가족과의 생이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로도 유명한 그는 예술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갈망을 수많은 작품 속에 담았다. 가족과의 이별을 감내하면서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예술의 길은 얼마나 고난에 찬 것이었겠는가.
삶의 질곡을 넘어서는 예술 작품은 현실 너머의 판타지로 작동한다. 박수근과 이중섭에게 있어서 그림은 현실 삶을 반영하는 그 무엇이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한 세기가 흘러 감성과 사유의 패러다임의 전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두 화가에게 열렬한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진실 때문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좀 더 흘러도 두 화가에 대한 관심은 흔들림 없이 이어질 것 같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두 화가의 신화가 화폐가치로 계량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십억을 호가하는 두 거장의 작품이 과연 그들의 예술적 가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일까? 예술작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전도된 가치혼란의 시대라지만, 이따금씩 벌어지는 진위공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만을 앞세워 거장의 예술세계를 돈다발로 덧칠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 피어난 예술작품을 대하는 우리 후대사람들의 논란이 이렇듯 살벌한 화폐놀음이어서야 어디 국민화가 운운할 자격이나 있겠는가. 예술작품을 예술상품 삼아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논박이야 그렇다 치고, 어려운 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안목만큼은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예술의 가치를 헤아리려는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하면 으레 박수근과 이중섭 둘을 꼽곤 한다. 그것은 미술전문가와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이견 없이 공감하는 정설에 가깝다. 1910년대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의 역경 속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에 걸출한 자취를 남긴 이들은 20세기 한국의 트라우마를 온몸에 담고 있는 예술가이다. 한 시대의 정황들이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일반적으로 초월의 관점을 가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월의 관점은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독소조항이다. 한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들의 삶의 모습을 살피지 않은 채 그가 남긴 작품에만 심미안이라는 돋보기를 들이댄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신화화된 물신(物神)으로서의 예술상품 만이 남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예술작품의 물신화를 걷어내는 한 방편으로 그들의 작품과 더불어 그들의 시대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 아니겠는가.
박수근과 이중섭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몸으로 받아낸 역사 속의 인물들이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사건과 정황 속에서 살았던 두 화가는 그 상처를 부드럽게 받아 안고 살았느냐, 아니면 세상의 격변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대비되는 양상을 보인다. 강원도 양구출신으로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서 어렵사리 화가의 길을 걸었으며, 한국전쟁 이후 도시 서민의 남루한 삶을 그려낸 박수근(1914-1965). 평양 출신으로 도쿄제국미술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으나 전쟁 중에 월남해서 일본인 아내와 이별하면서까지 화가의 길을 걸었으며,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격정적인 예술혼을 불태운 이중섭(1916-1956). 이들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시대의 짐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매우 달랐다. 박수근이 차분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벌거벗은 나무를 그린 반면에, 이중섭은 격정에 찬 필치로 황소를 그린 화가이다. 양구 사람 박수근이 차분하고 진득한 성심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평양 사람 이중섭은 격정적이며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예술가의 신화를 만들었다.
박수근은 따뜻한 마음으로 서민의 삶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그림들 가운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식상한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인생행보에 있어 가족의 존재는 매우 각별하다.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불행하지 않았던 화가 박수근. 그는 아내와 아이들의 존재로 인해 화가로서의 힘겨운 삶을 딛고 20세기 한국미술사를 대표하는 국민화가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는 곡절 많은 삶 속에서 화가의 꿈을 키웠으며, 6.25 이후 서울에 정착해서 마음 착한 화가로 살았다. 서울 창신동 판잣집에서 살림을 꾸리면서 그가 그린 것은 보잘것없이 남루하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서민들의 모습이었다. 박수근이 여느 화가들과는 좀 다른 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예술가의 진지하고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그림이 무엇을 담고 있는가 하는 소재나 주제의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무엇으로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점이다. 나무, 아내, 동네사람들 등의 그림 대상들을 빼고 나면 우리가 기억하는 박수근 그림의 실체는 우둘투둘하면서도 흐릿하고 아련한 표면의 질감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그림들에서는 격렬한 흔적보다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따뜻한 마음이 돋보인다. 색이나 색면들은 갈등과 긴장이 거의 없는 갈색, 노란색, 밤색 중심의 심플한 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색면들은 특유의 화강암질 표면효과를 통해 깊은 맛을 더해준다. 마치 화강암 위에다가 그림을 그린 것 같은 표면효과는 박수근 그림의 대명사와도 같은 요소다. 마티에르(재질감)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요소는 물감을 여러 겹 덧칠해서 독특한 맛을 내는데, 몇 년 전에 한 미술관의 박수근 전시에서는 첨단 과학 기법으로 박수근 그림의 덧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해서 박수근 마티에르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박수근의 부드러움에 비해 이중섭의 삶과 예술은 격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중섭만큼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극적인 삶을 살다간 예술가도 드물다. 평양 출신인 그는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고통 속에서도 치열하게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이중섭 그림은 강렬한 느낌을 풍기는 표현주의 화풍을 가지고 있다. 세부 묘사에 치중하기보다는 빠른 붓질로 윤곽선을 중심으로 대상의 특징을 그려내는 것이 표현주의 화풍의 묘미이다. 얼핏 보아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특징을 분간해내는 것이 애매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유념해야 할 것은 인상주의 회화가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의 특성을 잡아내는 데 주안점을 둔 반면, 표현주의 화풍은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감성을 격정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색이나 형태를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데 있어 훨씬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 <황소>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중섭의 주된 관심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재현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대상의 특질을 포착하여 화가의 감성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이중섭의 그림에도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혼자 살면서 가족들에게 안부편지와 더불어 그린편지를 보내곤 했다. 오늘날 담배포장지에 그린 은지화로 잘 알려진 동화 같은 그림들은 알고 보면 그가 아이들에게 그려 보낸 그림편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은지화 뿐만 아니라 유화작품들 가운데서도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단란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근현대 미술작품 가운데 가족을 그려낸 작품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이중섭의 가족 그림이 각별한 까닭은 그가 가족에 대한 실존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시기에도 예술 창작의 혼불을 놓지 않아 가족과의 생이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로도 유명한 그는 예술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갈망을 수많은 작품 속에 담았다. 가족과의 이별을 감내하면서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예술의 길은 얼마나 고난에 찬 것이었겠는가.
삶의 질곡을 넘어서는 예술 작품은 현실 너머의 판타지로 작동한다. 박수근과 이중섭에게 있어서 그림은 현실 삶을 반영하는 그 무엇이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한 세기가 흘러 감성과 사유의 패러다임의 전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두 화가에게 열렬한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진실 때문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좀 더 흘러도 두 화가에 대한 관심은 흔들림 없이 이어질 것 같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두 화가의 신화가 화폐가치로 계량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십억을 호가하는 두 거장의 작품이 과연 그들의 예술적 가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일까? 예술작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전도된 가치혼란의 시대라지만, 이따금씩 벌어지는 진위공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만을 앞세워 거장의 예술세계를 돈다발로 덧칠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 피어난 예술작품을 대하는 우리 후대사람들의 논란이 이렇듯 살벌한 화폐놀음이어서야 어디 국민화가 운운할 자격이나 있겠는가. 예술작품을 예술상품 삼아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논박이야 그렇다 치고, 어려운 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안목만큼은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예술의 가치를 헤아리려는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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