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특정적인 예술 프로젝트와 양평환경미술제
critic & column | 2009/11/20 19:24
현장특정적인 예술 프로젝트와 양평환경미술제
<2009 양평환경미술제 : Echo of Eco>는 생활공간에서 열렸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공간이라는 것은 실재의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전시장이나 조각공원 같은 미술문화공간뿐만이 아니라 경기도 양평군 일원의 한강생태학습장, 강하하수종말처리장, 강상체육공원 등과 같은 장소에서 생태적 의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들 공간에는 장소성과 의제가 매우 정교하게 얽혀있다. 양평의 지역적 가치를 생태로 파악한다면 이 공간들은 가장 유효적절하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한강생태학습장은 보전, 완충, 탐방지구 개념의 생태교육 공간이며, 인공과 자연을 재생의 차원에서 결합시킨 하수종말처리장 또한 관념적인 생태 미학적 공간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태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다. 따라서 생태공간이라는 개념에는 생태적 가치와 그것을 지탱하는 장소성이 함께 들어있다. 프로젝트 현장의 작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장소와 의제의 맥락에 접근하는 공공미술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양평의 미술축제를 다룸으로써 열린 문화생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 현장의 장소와 의제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출품작들은 영구설치 작품으로 남아 명실공히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일시적인 미술축제의 전시 프로젝트와 달리 영구설치를 염두에 둔 것이어서 지속적인 의미작용과 상호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다. 생태학습장에는 권남희, 금중기, 김승영, 김태준, 안종연, 이재효, 이종빈, 최평곤, 양평미술인 1팀 등이 참가했고, 하수종말처리장에는 경희대학교 현대미술연구소와 양평미술인 2팀이 참가했다. 두 장소 이외에도 양평교 하단 강상체육공원 남한강변에 최평곤의 설치작품이 들어갔다. 또한 갤러리와에서는 야외 설치 작업의 도큐먼트 전시를 열어 사진 및 드로잉으로 현장의 기록을 정리해주었다. 이것은 현장의 작품들에 대한 예술적 이해를 높이고 관람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외에도 마나스아트센터에는 양평의 미술인 54명이 실내전시를 가졌고, 닥터박갤러리에서는 도예체험교실을 진행함으로써 현장과 전시장 두 장소에서의 미술축제 균형을 맞추었다.
참여작가들에기 있어 프로젝트의 장소는 ‘작품을 놓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품의 설치 현장은 곧 작품의 서사와 형식을 규정하며 작품과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권남희의 간판 작업은 장소의 특성을 짧은 기호로 처리한 공공디자인 개념의 작품이다. 야외공간에서의 작품이란 감상의 대상일뿐더러 사용의 대상이라는 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금중기는 거북이나 개구리 같은 생명체를 색다른 질감의 조각으로 만들어 생태공간에서 만나는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각성시키고 있다. 장소에 대한 명상적이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는 김승영은 생태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물과 섬의 존재를 재발견할 수 있는 작품을 설치했다. 김태준은 바위나 물 위에 유머러스한 동물들을 배치하여 자연환경과 친화하는 생명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안종연은 관람객과 하늘과 주변 풍경을 투영하는 수퍼밀러를 배치해 자연 속의 인간 존재를 성찰하게 한다. 태양열 전지를 써서 빛을 끌어들이는 조형물을 설치한 경희대 조형연구소의 작품 또는 생태적 가치를 중심에 둔 작업이다.
소재의 선택이나 창작 방식의 문제도 생태예술의 주요 변수이다. 나무를 이용한 작업은 자연환경에서의 바깥미술 프로젝트에 매우 효과적인 작업이다. 양평에 사는 작가인 이재효는 나무를 이용한 추상 조각을 설치했다. 이종빈은 나뭇가지들로 만든 두상 속에 나무를 심어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의 하나로 돌아갈 작품을 남겼다. 최평곤은 거대한 대나무 인간 작업으로 주민들에게 ‘어서오세요’라고 반갑게 손을 내밀거나 강나루를 지키는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주민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작품을 설치했다. 공동작업을 통해서 주민참여와 상호작용을 지향한 점도 미 프로젝트의 큰 미덕이다. 양평작가 1팀(김창호, 안경문, 이정수)은 맑은 물의 가치를 상징하는 붕어를 만들고 비늘 부분을 주민들의 참여로 완성시키는 진행형 공공미술 작품을 진행했다. 양평작가 2팀(고봉옥, 김성일, 김승민, 김영리, 김용철, 김진화, 김철환, 김호순, 모지선, 박경인, 이봉임, 이흙, 찰스장, 황경혜)은 강하하수종말처리장 벽면에 공동벽화 작품을 제작했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작품이 그들로부터 더 적극적으로 사랑받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이번 행사의 가장 기본적인 예술적 가치는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을 잘 살렸다는 데 있다. 짧은 기간에 행사를 조직해야 하는 미술축제가 장소특정성을 살린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성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공공미술이 공공의 기금과 장소와 의제를 필수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번화한 도심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논의를 생태공간 개념으로 확장시키면서 시사적인 논점을 제공했다. 또한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장소에서 생태와 예술이라는 이슈를 가진 일련의 생태미술 프로젝트를 생활공간이라는 또 다른 거점으로 확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미술작품은 그것을 모시기 위한 별도의 공간을 원했다. 전시장이나 조각공원과 같은 공간이 대표적이다. 장소특정성 논의는 작품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장소의 맥락과 공존하는 작품 또는 장소를 위한 작품이라는 관점을 요청한다. 그것은 단순히 장소를 재해석하는 작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장소의 특수한 성격, 가령 그 장소의 실질적인 활용도나 역사적 맥락 등을 작품의 내러티브로 끌어들이고, 주민이나 관객과의 상호소통에 적합한 형식을 추동하기도 한다.
그동안 일부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예술운동차원에서 이뤄졌던 생태미술, 바깥미술 프로젝트가 바야흐로 제도 영역에서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독일 뮌스터조각프로젝트나 인겔홈브로이, 일본의 에츠코 츠마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장소특정적인 예술 프로젝트, 좋은 공공미술의 사례를 한국의 양평에서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생태공원과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생태적 가치 구현이라는 미션을 전제로 한 작업을 고민하게 했다. 그것은 주민의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예술 프로젝트, 도시/자연환경을 재해석하고 맥락화 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키웠다. 생태공원이나 종말하수 처리장 같은 소외 공간이나 혐오 시설에서 예술작품을 만나게 했다는 점에서 예술이 박제화한 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에서 제 몫을 담당하는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 몫을 하는 예술’이라는 언급은 예술의 효용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모더니즘 미학에서 경원시하는 효율성을 비평언어로 등재할 수 있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요컨대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매우 효율적인 예술로 언급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보아야 할 덕목은 의제특정성(issue-specificity)의 맥락이다. 장소의 맥락은 의제 설정에 의해 그 가치를 배가한다. 의제특정성의 문제는 특히 장소특정성의 맥락을 일관된 주제 의식 속에서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특별히 ‘Echo of Eco(생태의 메아리)’라는 주제로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 주제는 장소특정성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의제특정성을 강조한다. 기획자는 ‘생태/환경 특정적인(eco-specific)’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장소특정성과 의제특정성을 동시에 살려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있다. 이번 행사가 표방한 ‘에코-스페서픽(eco-specific) 예술 프로젝트’라는 개념도 결국은 양평환경미술제가 양평이라는 장소특정성 위에 생태적 가치라는 이슈를 더함으로써 양평이라는 도시에 반드시 필요한 예술행사로 자리잡기 위한 중요한 기초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인 장소에 참여하고 개입하여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비평언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태적 맥락을 ‘특별히 지정하는’ 목표 설정이야말로 양평에서 벌어지는 예술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이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자연과 예술 프로젝트의 만남, 장소특정성과 예술, 나아가 의제 특정성과 예술의 만남에 관한 매우 실질적인 사유지점을 형성한다. 이것은 현장특정적(insitu-specific) 예술 프로젝트라는 명제를 성립하게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개념의 설정뿐만 아니라 대상지에 대한 분석 및 해석, 나아가 참여작가들과 출품작들에 대한 분석 및 해석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가 이뤄질 현장에 대한 장소/의제 특정적인 예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장소의 공간성 개념에 시간성을 더한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의존적인 공존의 맥락 위에 놓여있다. 현장은 지금 여기의 시공간, 즉 생동하는 삶의 맥락 속에서 발견하는 동시대의 장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결합한 현장성은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인 역동적인 장소로서의 현장을 맥락화 하는 현장특정성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것은 상호지역성의 문제이다. 공공미술의 진정한 가치는 지역성을 살린 예술프로젝트의 가능성에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생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관념적인 수사를 지닌) 양평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중요한 사건인 이유는 예술언어를 가지고 양평이라는 도시의 현장이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전시장에 일시적으로 작품을 설치했다가 철수하는 일, 즉 출품작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일시적인 공감대 형성만으로는 생태도시의 문화정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속가능한 미술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이번 프로젝트가 전시장이 아닌 생태공원 등을 선택한 것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동안 양평은 수백명의 작가가 거주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도시로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명실공히 문화도시의 면모를 확인할 시스템이 부재한 탓에 양평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배후에서 예술가들의 거주와 개별 창작을 담보하는 배후도시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다.
‘생태 행복 도시 양평’에서 벌어지는 미술 프로젝트, 예술과 자연이 결합된 문화특구로서 양평의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지역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만들어야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성은 폐쇄적인 지역성이 아닌 상호지역성(inter-locality)이다. 그것은 우리를 주목함으로써 우리의 바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 우리와 그들, 우리 지역과 다른 지역이 공존하는 서로-지역성 개념이다. 양평의 지리적 조건은 거대도시의 상수원으로서 불가피하게 청정수역을 유지해야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양평이 생태적 가치를 살린 도시로 굳어진 것은 서울의 상수원확보라는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태가치는 상당히 박제화한 관념 속의 가치였다. 생태적 가치를 불가피한 수동적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미래 발전 가능성으로 끌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다른 도시와의 관계성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부각된 생태도시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양평 바깥과의 협업을 통해서 서로-지역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예술체제는 고립된 섬과 같은 예술가 정체성으로부터 상호 협력하고 연대하는 네트워크 시대의 예술가 상을 요청한다.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생태적 가치를 성찰하며, 지역의 공동체 성을 재발견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일이 하나둘씩 좋은 사례로 드러나고 있다. 양평이 지금 그 전환점에서 의미심장한 과정과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양평환경미술제는 본격적으로 양평의 문화적 자원을 지역사회와 공유할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예술과 그 바깥의 협업은 도시/자연 환경을 생태적 관점에서 재발견하는 일이다. 나아가 양평과 양평바깥의 예술가들이 폐쇄적인 예술 담론과 실천으로부터 열린 가치의 예술 담론과 실천에 참여하면서 예술체제의 전환을 예고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볼 게 있다. 양평의 지역성이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규명되는 것이 아닌 이웃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술 안팎에서 불고 있는 지역성 논의의 핵심은 상호주의 관점의 열린 마음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