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예술

critic & column | 2010/08/25 16:40


행동하는 예술

흔히들 예술은 순수한 것이라거나 순수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순수미술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미술이 사실은 순수하지 않다. 순수를 부르짖은 미술일수록 당시의 제도와 주류 속에 철저하게 영합하여 살아남은 미술권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 반대로 현실과 부딪히며 시대정신을 구현한 예술가들에게는 불순한 예술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주류의 미술권력과 비주류의 전위예술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순수한 예술인가? 순수에 대한 개념규정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지겠지만, 예술 개념의 태동과 변화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히 후자의 예술이 순수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은 전근대적인 생산과 매개, 유통 체계로부터 이탈해서 예술적 표현과 발언이라는 자율성을 획득한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근대적 의미의 예술개념이 자리잡았다. 물론 전근대 시기에도 사회와 예술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회와 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늘 동행한다. 사회는 고정불변의 구조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동하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예술도 한 가지 이념이나 태도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동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한 시대의 주도적인 예술담론은 이후 시대의 극복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을 삶과 사회를 반영하는 틀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예술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예술은 사회의 변동에 따라 그 구조를 반영하는 시대의 유산이다. 예술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와 예술의 상동성은 단선적이지 않다. 때로는 예술이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일 뿐만 아니라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고 그 비전을 제시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곤 한다. 시대의 선구자로서 예술가들이 일궈놓은 찬란한 유산은 20세기의 위대한 전위예술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술언어의 자기완결성이나 좁은 의미에서의 예술의 자율성 논리에 천착한 나머지 사회와의 접점을 거부한 탈접점의 미학으로 일관했을 때, 예술은 더 이상 생생한 삶의 언어로 작동할 수 없었다. 이 고착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전복의 가치가 탈근대 예술에 들어있다. 행동하는 예술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예술과 사회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접점을 찾아서 진화하고 있다. 사회는 움직인다. 예술도 함께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앞당기기 위해 한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예술이다. 변화하는 사회 속의 행동하는 예술. 동시대 예술담론의 최전선이 여기에 있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8/25 16:40 2010/08/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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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emonemo 2010/10/06 19:33

    담아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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