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정의 꽃그림 또는 그림꽃

critic & column | 2006/04/11 22:49




한수정의 꽃그림 또는 그림꽃
한수정 개인전 : flower, 2006.4.7-4.28, 갤러리스케이프

꽃그림이라는 게 워낙 오랫동안 화가들의 손을 거쳐 온 흔한 소재인지라 아무나 한다고 다 동시대성을 가진 예술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한수정은 그동안의 작업과 비교해봤을 때 파격에 가까운 변신을 감행함으로써 꽃그림을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화재를 모으고 있다. 그는 전시장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현장설치작업을 해왔다. 커다란 바코드를 여러 장 겹쳐서 늘어뜨리는 작업이나 바닥이나 벽에 라인드로잉 설치작업을 해오던 작가가 갑자기 캔버스 작업을 들고 나온 것이다. 평소에 작업실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두고 다듬어서 회화작품을 만들어내는 잔재미를 느낄 겨를이 없었던 그가 작업실에 앉아서 꽃을 그렸다는 게 뭔가 심상찮다.

한수정이 꽃그림을 그림으로써 뭔가 확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그가 해왔던 설치작업들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번 꽃그림들은 라인드로잉과 그림자 작업들이 보여주었던 형상과 환영의 문제를 변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꽃그림이 ‘시각의 고정성에 대한 도전’으로서 ‘꽃의 동물성’을 그려낸 것이라고 말한다. 파란 해바라기, 코끼리가죽 같은 아이리스, 주름진 꽃잎 등 실재의 꽃과는 다른 그림 꽃을 보여줌으로써 꽃이라는 식물로부터 동물성을 끌어오는 식이다. 그는 꽃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상과 형태를 ‘한수정 마음대로’ 바꿔냄으로써 대상의 리얼리티를 회화적 재현체계를 통해서 뒤집고 있다.


전시장에 설치하는 작업과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는 일은 많이 다르다. 그는 작업실에 앉아서 차분하게 그림 그리는 일이 얼마나 예술가 자신에게 가슴 따뜻한 일이었는지는 자분자분 얘기한다. ‘꽃그림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림을 선택했다’는 그의 말마따나, 그는 이번 전시에서 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우연히 접한 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새로움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그림 그리는 일 자체에 몰입해서 크고 작은 그림 몇 점을 뽑아낸 것이다. 대상물을 평면 위에 옮겨놓는 그림을 그린다는 일.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간의 손끝에서 나오는 가장 원초적인 표현의 행위이자 가장 발달한 고도의 눈속임의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수정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꽃그림이 아니라 그림꽃인지도 모르겠다. (02-3143-4675)

김준기(미술비평, www.gimjungi.net)
2006/04/11 22:49 2006/04/1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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