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한국인과 한국그림 : 한국화 1953-2007 리뷰
critic & column | 2007/04/25 15:20
한국과 한국인과 한국그림
한국화 1953-2007展, 2007.4.25(수)-5.27(일), 서울시립미술관
그림에도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존재한다. 유럽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림을 그냥 '그림(painting)'이라고 부르는 반면에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림을 '중국화'라고 부르고, 일본사람들은 '일본화'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동양화'라는 말을 쓰다가 '한국화'라는 말로 바꿔서 굳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한반도 땅에서 수천년 동안의 역사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그림의 개념과 방법을 '한국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화나 독일화, 영국화 등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수세기동안 진행되어온 식민의 역사가 만들어낸 모순이다. 스스로 타자의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지어진 이름 ‘한국화’. 그러나 그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문화적 식민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보루이다. 한국화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21세기 문명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60여년간의 한국화 작품들을 모은 이 전시는 탈식민주의 맥락 속에서 일반적인 ‘모듬전’과 차별화 한다. 이응노, 박래현, 박생광, 천경자 등 80여명 작가의 작품 200여점을 전시하는 이 기획은 총 다섯 개의 센션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인 ‘추상의 유입과 실험’에서는 전후 20여년 동안 서구모더니즘을 받아들이는 시기의 김기창, 박래현, 이응노 등과 같은 선구자들의 작품을 조망한다. 두 번째, ‘전통산수의 재인식과 현대적 변용’은 변관식, 이상범 같은 대가들의 뒤를 이은 산수화를 다룬다. 박대성, 오용길 등에서 유근택, 박병춘 등에 이르는 실경산수의 맥락을 보여준다. 세 번째인 ‘서구 모더니즘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섹션은 권영우, 서세옥, 송수남, 문봉선 등으로 이어지는 미술운동 차원의 다양한 모더니즘 실험을 다룬다.
네 번째 ‘채색의 맥’은 천경자와 박생광이라는 거장을 비롯해서 정종미, 김선두에 이르는 채색화 작가들의 계보를 그려낸다. 일본의 채색화 영향을 탈피하기 위해 수묵에 무게를 두었던 한국현대미술이 새롭게 발견해온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여로를 탐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화의 시야를 넘어’에서는 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장에서 장르나 재료기법의 개념을 넘어서 동시대성을 획득해온 임만혁, 정재호, 김정욱 등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응노에서 김정욱에 이르기까지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60여년 역사가 남긴 한국그림의 맥락이 특수를 넘어 보편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세기 한국현대사를 가로지른 거장 이응노의 출품작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1950년대의 화단에서 한국초유의 앵포르멜 작품을 선보인 후 홀연히 프랑스로 떠난 이후 문자추상과 군상 연작으로 동서고금에 걸친 거장으로 거듭난 그의 출품작은 1958년 <도불전>에 나왔던 작품 두 점이다. 박생광의 저 화려한 채색화 또한 한국의 회화 전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 중요한 대목이다.
김준기 (미술비평, www.gimjungi.net)
* 주간동아 게재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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