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억과 상징 : 대추리 현장예술의 새로운 국면
critic & column | 2007/04/10 07:28
평화의 기억과 상징 : 대추리 현장예술의 새로운 국면
대추리 평화예술마을의 작품들이 마을 철거와 동시에 파괴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들 작품은 지난 3년간에 걸려 수백명의 예술가들이 참가한 대추리 현장예술활동의 결과물이다. 그곳에서 열린 예술활동은 공연과 같은 시간예술의 형태와 회화나 설치 등과 같은 공간예술의 형태로 나뉘는데, 전자의 경우 그 활동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은 문헌자료나 시청작 자료와 같은 2차적인 물직형식으로 남아있지만, 후자의 경우 마을 전역에 걸쳐 생생한 작품 자료로 남아있다. 조만간 대추리 주민들의 이주 결정에 따라서 마을 전체가 철거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그곳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예술작품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아무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마을로 이주해서 1년여 간의 임시 거주에 들어간 주민들과 예술가들과 평택시가 머리를 맞대고 몇몇 작품들을 이전하는 작업을 했지만, 대다수의 작품들은 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짧은 글은 마을 철거와 동시에 이뤄질 예정인 예술작품 파괴의 야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대추리 마을에서 이뤄진 예술활동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현장의 미술작품들이 어떻게 새로운 소통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왜 사라지는 마을의 예술작품이 파괴가 아닌 보존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보존을 위한 논의 절차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볼 것이다.
공공영역으로서의 대추리 예술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예술적 실천이 ‘공공영역에서의 소통을 이루며, 소수자의 문화생산을 매개하고, 특정 장소와 사안에 개입하며, 해당 공간을 활성화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사적인 소통채널로만 인식되었던 예술적 소통을 공공적인 소통채널로 확장하는 예술공론장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예술공론장 논의는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근대적 맥락의 예술적 자율성과 탈근대적 맥락의 공공성 논의를 통합의 수준에서 재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예술 개념이다. 나아가 그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포섭된 예술적 생산의 일방적인 흐름을 문화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재검토함으로서 성립가능하다. 이러한 근거를 가진 예술은 오늘날 새로운 공공예술로 불리고 있다. 새로운 공공예술은 비물질적이며 비영구적인 예술실험을 지향하는 새로운 형식과 태도의 공공예술을 말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예술을 심미적 수준의 창작과 향유의 과정만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으로까지 확장해서 사고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모더니즘 예술의 폐쇄적인 창작과 매개, 소통의 방식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공공성을 염두에 둔 예술은 공공장소에서의 예술, 공공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 공공기금으로 성립하는 예술 등으로 규명되고 있다. 공공의 요청으로 제작되어 사회적 맥락과 참여민주주의의 성격을 가지는 공공예술은 특정장소의 역사성과 특수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다. 포스트모더니티 논의는 모더니티의 체계적인 영역분할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탈분화 과정을 해명함으로써 미술의 실천적 영역과 창작 방식에 있어서 실재와 기표, 현실과 예술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에 당위성을 제공한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의 미학화 개념이나 매체, 스타일, 장르의 해체와 중복 등 예술 영역의 확장과 다원주의적 양상은 예술의 탈제도화나 사회적 실천들과의 통합 등과 같은 유연성을 제공한다.
예술가의 행위 과정은 ‘경험, 분석, 보고, 행동’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공공적인 예술이란 ‘개인의 경험에 따른 주관성적 감성을 공감시키는 단계로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나아가 새로운 합의를 세워내는 과정’으로서 예술행위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예술가의 창작과 실천을 사적인 것으로부터 공적인 것으로 견인하는 이론과 실천의 근거를 제공한다. 공공영역(public sphere)에서의 예술적 실천은 공론장에서의 예술가의 지위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예술공론장 속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는 예술가이자, 예술가 집단의 조직가이며, 특정 상황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보고하는 이슈 파이터이자, 정치적 맥락 속에서 시민사회의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 내는 사회적 퍼포먼서이다. 새로운 공공예술은 ‘예술을 통한 공동체 건설, 사회적인 표현, 공공적인 안건을 만드는 새로운 미술가의 역할’ 등의 특성에서 드러나듯이, ‘주제의 문제나 장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활성화된 가치체계의 미학적 표현‘을 시도하는 참여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다양한 관객들과 삶의 이슈를 소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을 의미하며, ‘장소(site)의 역사적, 생태적, 사회적 측면에 대한 관심으로 관객과의 관계설정을 모색하는’ 예술 개념이다.
대추리 예술활동은 예술적 실천을 통해서 공론의 장을 만든 새로운 방식의 공공예술 활동이다. 우선 그것은 공공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룬 예술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사회는 대추리라는 작은 마을을 통해서 지난 세기 이래 세 차례에 걸쳐 삶의 터전을 유린당해야만 하는 대추리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접했다. 나아가 평택으로 집결하는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군사정책의 면면을 비판하는 평화운동을 진행했다. 따라서 평택 대추리는 공공의 영역이었다. 대추리라는 공공영역에서 이뤄진 다양한 방식의 소통 방식 가운데 하나로 존재했던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은 당연히 예술공론장을 만들어냈다. 둘째로, 대추리 예술활동은 대추리 주민이라는 문화적 소수자의 능동적인 문화생산을 매개했다. 주민들과 함께 만든 예술활동은 예술가들만의 창작을 넘어서 대추리 주민들이 참여하고 공유하는 문화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셋째로, 그것은 특정 장소나 사안에 개입하는 행동주의 예술 프로젝트이다. 예술활동의 장을 전문화된 창작의 공간이 아닌 실재 삶의 공간에서 펼쳤으며 나아가 대추리 공간의 주거권과 평화라는 의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특정 공간을 활성화 하는 예술 프로젝트였다. 대추리 주민들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삶의 희망을 이어간 데는 예술적 소통의 기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추리 예술작품의 새로운 국면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공론장의 한 축을 형성해온 대추리에는 그 활동을 증거하는 물질형식, 즉 예술작품들이 남아있다. 대추리는 평화예술 마을이다. 대추리는 새로운 공공예술의 가능성을 현실화한 대표적인 예술적 실천의 장이다. 대추리의 예술작품들은 사적인 맥락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자산이며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기억이며 상징이다. 따라서 공동체와 동행한 커뮤니티 아트로서의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공적인 논의를 매개한 예술활동의 결과물인 이들 예술작품들은 이제 주민들의 이주와 더불어 파괴 혹은 보존이라는 갈림길에 서있다.
이미 국방부는 예술작품 파괴를 서슴지 않고 자행해왔다. 2006년 5월, 대추분교를 파괴한 것은 건물을 파괴한 것 이상의 야만이었다. 분교의 벽과 유리창에 마을 주민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포크레인은 콘크리트 골조와 시멘트 블록을 파괴한 것만이 아니라 대추리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시각이미지를 훼손했다. 그것은 실재와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상동성에 의해 매우 극렬한 상징 파괴로 읽히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였다. 또한 영논단지 앞 들녘에 세워둔 최병수의 미사일 솟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매장문화재 조사 과정에서 문화재로 기록되었던 최평곤의 문무인상 또한 경찰의 실수로 인해 넘어져서 심하게 훼손된 바 있다. 이러한 반달리즘에 대해 여러차례 문제를 제기했음해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해명이 없었던 바, 이는 상징에 대해 무감각한 대한민국 정부의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평택시와의 협의를 통해서 대추리 바깥으로 옮긴 세 점의 작품 이외에 대다수의 작품들은 마을 철거와 동시에 파괴될 위험에 처해있다. 수많은 벽화와 벽시와 설치미술 작품들이 포크레인 삽질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병수의 작품들은 그 수나 양 뿐만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에 있어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대추리박물관 옥상의 한반도 솟대를 비롯해서 영농단지의 경운기 솟대, 대추분교 잔해를 이용한 설치 작품, 아메리카 지도 모양의 철판 작업, 대형 포탄으로 만든 입체조형물 등이 곳곳에 놓여있다. 특히 대추리 마을 바깥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한반도 솟대는 그 상징성이 크다. 작가는 솟대 및에 ‘국방부는 한반도를 지켜라’라는 문구를 적은 프랙카드가 걸려있다. 국방부가 스스로 한반도를 꺼꾸러트리는 날, 최병수는 UN에 예술작품 파괴 행위를 재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불행에 비해 유럽의 몇몇 사례들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기억과 상징을 문화생산으로 이어나간 좋은 사례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통일독일의 베를린 장벽이다. 프랑스 청년 느와르와 부셰에 의해 1984년부터 시작된 베를린 장벽의 그래피티는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참가한 거대한 캔버스로 변했다. 통일독일 이후 이 장벽은 패널이나 파편의 형태로 흩어졌고, 특히 동베를린 지역의 장벽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변모하면서 분단의 기억을 담은 예술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장벽에 그린 그래피티 이미지는 엽서 등과 같은 2차 저작물의 형태로 전세계적으로 유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벽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그려진 그림이 실물의 예술작품으로 순회전을 가지고 있다. 몇해 전에는 서울의 올림픽 미술관에서도 이들 작품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최초에 이 벽에 대고 그래피티를 시작한 예술가들의 활동은 불온한 것이었으며 허락받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장벽에 대한 인식과 그 장벽의 벽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한 시대를 증거하는 귀중한 인류의 유산으로 남아있다. 허락받은 미술, 시장의 교환체계에 부응하는 미술에 대해서 훨씬 더 생생한 현장성과 공공성을 담보한 예술작품으로 되살아난 베를린 장벽 그래피티는 현실의 제도와 관습을 넘어서는 예술활동이 새로운 꿈과 이상을 그려나간 한 시대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대도시에는 비어있는 건물을 대상으로 한 스쾃 아틀리에가 대안적인 예술소통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점거 예술공간은 최초에는 주거의 목적으로 이뤄지던 점거의 형태가 1980년대 이후 예술활동을 위한 작업실의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정착된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이 공간은 창작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소통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재건축을 위해서 파괴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낡은 건축물이 예술의 근거지로 쓰이면서 오히려 지역과 도시를 되살리는 매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은 파괴를 극복하고 재생을 매개하는 물질적인 매개체인 셈이다. 독일의 베를린 중앙역 인근에는 빌헬름대제가 세운 교회가 있다. 이 건물은 2차세계대전 당시에 영국의 폭격을 받아 종탑이 파괴되었다. 전후 독일 사회는 이 건물을 복원하지 않고 부서진 채로 두고 있다. 베를린대학 안에서도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 잔해를 만날 수 있다.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반성하며 성찰하겠다는 의미이다.
예술적 소통은 새로운 생산에서 뿐만이 아니라 낡은 것을 보존하는 것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한 시대를 증거하고 기록함으로써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꿈꾸는 예술 콘텐츠는 과거를 지워버린 후 새로 만든 새하얀 벽면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오래된 낡은 벽에서 우러나오는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강렬한 소통을 매개한다. 지금부터라도 대추리의 예술작품 보존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들 예술작품들을 제작한 작가들의 입장 차이에 따라서 일부 작품만이 대추리 바깥으로 이전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다수의 작품들이 대추리 마을의 철거와 더불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부분적으로나마 대추리의 예술활동에 대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라는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서 대추리 예술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아카이빙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방대한 작품 자료를 실물로 온전히 보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군기지확장이전이라는 목표만을 향해서 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데에만 골몰했을 뿐 그 터전의 의미와 기억과 상징들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지난 수년간 싸워온 것은 생계대책이나 보상금 따위가 아니었다. 그 싸움은 대추리와 황새울이라는 공간에서 쌓아온 삶의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한 투쟁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대추리 마을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한 생존권 투쟁이었을 뿐더러 공간에 담긴 세월의 의미를 지키기 위한 상징투쟁이었다. 이제 마을 공간을 떠났으므로 남은 것은 기억과 상징이다. 대추리 마을의 예술작품은 대추리의 기억과 상징을 매개하는 물질형식이다. 그 물질형식은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의 대상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예술작품 파괴라는 야만적 행위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대추리 예술작품 보존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김준기 (미술비평)
* 이 글은 아래 행사의 발제문임.
대추리 평화예술품 지키기 전시 및 토론회
□ 주최(무순): 민주노동당(천영세의원실 / 민주노동당문화예술위원회) / 들사람들 / 민족예술인총연합 / 문화연대 /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민족미술인협회 / 우리만화연대 / 한국독립영화협회 / 영화인회의 / 노동만화네트워크 / 대추리 아카이브 기획단 / 평택미군기지이전확장반대 문화예술(인)단체 비상대책위원회 / 대추리 평화예술마을조성위원회
□ 대추리 평화예술품 지키기 전시전
- 일시: 4월 10일(화) 오전 9시 - 11일(수) 오후 6시
- 장소: 국회의원 회관 1층 로비 전시장
- 내용: 대추리 작품 - 사진전(20점), 걸개시화전(10점), 모판초상화전시전(80점), 대추리만화전, 대추리 관련 출판물 전시전 등
□ 대추리 평화예술품 지키기 토론회
- 일시: 4월 10일(월) 오전 9시 30분
- 장소: 국회의원 회관 전시장 내
- 내용: 대추리 예술품의 사회적 가치 확인 및 파괴 방지와 관련한 각계 의견 표명 및 대책 마련의 자리
- 발제자: 조영선(변호사. 민변 사무처장) / 김성수(화가. 들사람들) / 김준기(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