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생산을 넘어서는 부산의 공공미술
critic & column | 2008/11/25 02:31
주문생산을 넘어서는 부산의 공공미술
거대도시 부산의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미술이 번지고 있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관념적인 도시일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특별한 마을 또는 공동체로 인식하고 그 장으로 뛰어드는 미술. 도시와 동행하는 미술. 공공이다. 그것은 도시 공동체라는 삶의 단위와 직접 만나는 예술적 실천이다. 부산의 미술가들이 참여와 개입의 원칙 아래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온 것은 지난 수년간 진화한 한국의 공공미술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 부산대역 일대의 그래피티 작업들은 이미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봐도 그만한 사례를 보기 드물 만큼 풍부한 예술적 에너지로 넘쳐나고 있다. 부산의 젊은 그래피티 작가들을 비롯해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와서 자생적이고 창의적인 젊은이문화를 만들고 있다.
<아트 인 시티 2006> 프로젝트는 부산에 본격적인 공공미술의 첫 삽을 뜬 사업이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수정동 프로젝트와 물만골 생태마을에서 벌어진 프로젝트는 예술가와 주민의 소통이 어떤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겠는지에 대해 많은 경험을 축적하게 했다. 공공미술은 공동체와 동행하기 위해 때로는 갈등과 소외의 상황까지도 감당해야했다. 이어서 벌어진 2007년의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공공미술의 좋은 사례를 남겼다. 올해도 안창마을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행보가 분주하다. 좋은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가장 큰 원동력으로 삼는다. ‘공공기금 없이도 계속 하는 프로젝트의 사례를 보여주고 싶다’는 서상호 예술감독의 말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이 있다.
안창마을로 뛰어든 예술가들이 마을을 대상화 시키지 않고 그 속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예술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앞으로도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영역에 뿌리를 둔 채 예술활동을 통해서 공공영역을 형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자율성이라는 덕목이야말로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예술가에게 주문생산을 요청하는 시대에 예술적 실천의 근본적인 힘을 신뢰하게 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예술적 자율성은 예술가 주체의 창의력과 진정성을 발휘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공공미술의 공공성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작가의 일방주의가 아닌 작가와 시민의 상호주의 관점과 협업이 이뤄져야한다. 공공미술은 상호소통의 관점에 뿌리를 둔다.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시민에게 예술작품 감상을 비롯해서 향유 채널을 다양화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은 공공미술에서도 통용가능하다. 그러나 알맹이는 그 너머에 있다. 예술가와 시민의 역할은 창조자와 관객의 지위를 넘어서 상호 소통과 협업의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예술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사람이자, 그 공동체의 상황을 분석하고 보고하는 구성원이며 조직가이자 이슈 파이터로서 새로운 합의를 창출하는 액티비스트이다.
공공미술은 장소의 문제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장소 특정성(site specific)이라는 말이 있는데, 특정 장소(site)의 특성을 잘 반영한 예술작품의 생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 공간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상황(situation)을 끌어들이는 데에까지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적 공론장/공공영역(public sphere)을 확인할 수 있다. 공공영역은 공공장소의 문제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장소와 상황의 논리를 결합한 말로 현장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소성과 시간성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는 현장성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예술적 공론장으로 작동하는 공공미술의 참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부산대신문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