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문예술

critic & column | 2010/08/11 14:38


새로운 주문예술

생명은 흐른다. 그것은 순환을 으뜸 원리로 한다. 새들의 생태는 생명의 흐름을 잘 드러낸다. 텃새는 텃새대로, 철새는 철새대로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맞게 삶을 꾸리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 순리에 맞게 흐르며 산다. 풍부한 자연생태는 새들과 같은 생명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천혜의 서식처를 이룬다. 예술도 흐른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시대정신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감상과 새로운 예술이 흐른다. 그 예술가들에게 사회는 서식처이다. 메마른 하천에서 새와 물고기를 만날 수 없듯이 궁핍한 사회에서 예술가를 만날 수 없다.

자연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서식처를 찾아 움직이듯이 사회적 장으로서 자리잡은 예술생태계의 예술가들 또한 서식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예술가들을 품어 안을 만한 서식처는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향유한다는 것을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애호가(愛好家, amateur)라는 말 속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의 공공성에 동의하는 선의의 후원자(패트론, patron)가 필요하다. 애호가와 후원자가 많은 문화도시라는 서식처는 좋은 예술가들을 품어 안는다.

예술(가)의 거처인 예술생태는 곧 예술(생산과 교환)체제이다. 예술체제의 변화는 주문방식의 변화와 연관이 깊다. 주문방식의 변화가 예술체제의 변화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예술체제가 주문에 따라 생산해서 납품하는 주문생산방식이었다면, 근대 시기의 예술체제는 주문 없이 생산해서 ‘전시장이라는 시장’에 내다 놓고 화폐와 교환하는 시장체제로 바뀌었다. 비록 콜렉터들의 보이지 않는 주문을 추종하는 ‘시장미술’을 쏟아내는 부류도 있지만, 주문의 방식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전근대 시기의 패트론은 자신의 권력을 옹호하는 예술을 길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근대 시기의 콜렉터는 예술가의 자율적인 창작세계와 시대정신을 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예술가들을 간접적으로 후원했다.

탈근대 시기의 예술체제는 점차 전근대나 근대와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주문체제로 바뀌고 있다. 근대 이후의 예술생태에서는 패트론이나 콜렉터와는 다른 종류의 문화생산자가 등장했다. 공공의 선을 위해 예술가들과 동행하는 공중(公衆)이 그들이다. 공공의 이름으로 예술가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주문을 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을 더 이상 감상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소통기제로서 공동체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공공영역의 행위자로 본다는 얘기다. 예술가 스스로 주민들의 요구를 끌어내는 방식, 또는 공동체 속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새로운 주문예술’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8/11 14:38 2010/08/11 14:38

trackback :: http://gimjungi.net/blog/trackback/874
  1. 김수영 기자 2010/08/11 16:28

    슬쩍 훔쳐가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이전  1 ... 888990919293949596 ... 8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