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물질성과 김원의 역발상

critic & column | 2006/04/19 09:02


조각의 물질성과 김원의 역발상

조각은 숙명적으로 물질과 조우한다. 예술의 개념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절반 또는 절반을 상회하는 수준에서 우리는 조각이 안고 있는 실체로서의 물질을 대면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모더니즘 패러다임은 예술 창작의 목표를 본질 그 자체에 두고 본질 속으로 파고드는 환원적 태도에 맞추었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이란 주로 예술작품의 물질적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결국 남는 것은 물성 그 자체라는 심난한 반성을 낳았다. 이로부터 다시 예술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 확산의 시각을 가진 것이 오늘날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이 물질로부터 이탈하여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작가의 예술적 행위를 증거하는 실체로서 조각 재료의 물(질)성을 통해서 그 예술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예술적 개념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 포스트모던 패러다임 속에서도 조각 재료의 물(질)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해나가는 것으로부터 작업의 시작을 삼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김원은 조각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다스리는 작가이다. 특히 그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통해서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리는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스테인레스 스틸은 근래 들어 조각가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재료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지만 정작 그것을 매체공학적인 차원에서 파고드는 작가는 드물다. 김원은 기성 작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의 매끈한 표면 대신에 굴곡이 있는 울퉁불퉁한 표면을 만들어 냄으로써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 깨트리고 있다. 그는 이 독창적인 굴곡면을 두상의 단면을 잘라서 얹어두거나 원기둥, 반구 등과 같은 기하학적 조형적 요소와 결합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창작세계에 있어 조각재료의 물성의 문제 자체만을 전면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조형작업의 일부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의 작품은 이항대립적인 요소의 만남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 속에는 반짝이는 표면과 뿌연 표면이 함께 등장한다. 볼록 튀어나온 것이 있으면 움푹 들어간 것이 있다. 가득 찬 것이 있으면 텅 비어있는 것이 함께 있다. 긴 것이 있으면 그곳에는 반드시 짧은 것이 함께 나타난다. 특히 결정적인 요소는 앞서 말한 평평한 것과 울퉁불퉁한 것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원의 작품은 대립적인 요소의 결합을 통해서 만남을 주선하는 이원론적인 문제틀을 가지고 있다. <공간-교감>은 세워둔 원통과 반원 곡선의 만남이며, <공간-이탈된 자아>는 긴 곡선과 두 반구의 긴장을 담고 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원통이 울퉁불퉁한 표면을 전면에 두고 대면하고 있는 <공간-조우>와 평면 위에 움푹 들어간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두 개의 반구를 얹어 놓은 <공간-일탈>, 또는 수퍼밀러 위에 몇 개의 돌출 부위를 강조하고 있는 <공간-팽창>과 같은 작품도 대립쌍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는 마찬가지다. <공간-흔적>은 보다 극적으로 이러한 대립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마치 쇠를 찢어낸 듯 잘라내고 구부린 무광의 스테인레스 스틸 표면 안쪽에 반짝이는 굴곡면을 배치해 둠으로써 이분법적인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묵상>은 커다란 두상의 상단부를 절단하고 그 위에 특유의 일렁거리는 굴곡 표면을 얹어둔 것이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한다. 특히 눈과 귀와 입은 보다 직접적인 매개체로 기능한다. 김원은 커다란 두상을 만들면서 눈을 감고 입을 다문 것도 모자라 귀를 없앰으로써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얼굴의 기능을 판단중지의 상황으로 두고 그 내면을 들여다 볼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얼굴을 구성하는 두상 표면을 수없이 많은 스테인레스 스틸 선재를 이어 붙여 만듦으로써 가능해졌다. 김원은 얼굴의 외형 보다는 그 내면에 무게를 두기 위해 판재 단면에 광을 냈다. 얇은 선재를 제살녹임 용접으로 이어 붙여 만든 두상 표면에 비해서 절단된 두상의 내부를 드러내는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는 반짝이며 일렁거린다. 눈감고 귀 멀고 입 다문 채 군더더기 없이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인물 두상은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파란만장한 굴곡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김원의 굴곡면 속에 담긴 인간의 내면은 분출하는 욕망으로 인해 꿈틀거리는 파장으로 가득 차 있다.

김원이 판재의 완벽한 평면을 굴곡면으로 만드는 것은 열에 따라 형상을 달리하는 금속재료의 유기적인 형상에 따른 것이다. 그는 열에 민감한 금속 판재의 까다로움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판재에 불꽃을 가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꿈틀거리면서 비정형의 굴곡면으로 변신한다. 한쪽에 열을 가하면 다른 한쪽이 꿈틀거린다. 열을 가해서 식기 전에 두드리는 단조작업을 반복하다가 문득 식어버리면 굴곡이 진채 굳어버리는 단점을 살린 것이다. 그는 굴곡면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금속 판재를 산소용접기의 불꽃으로 달구었다가 그것이 식으면서 나타나는 독특한 표면의 곡선들을 그대로 살린다. 금속은 열을 받으면 늘어났다가 식으면서 줄어드는데, 얇은 두께의 수퍼밀러인 경우에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때의 팽창과 수축은 인간의 신체가 가하는 힘에 따른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매개하는 불꽃과 금속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화학적인 변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 자체의 유기적 형상화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열을 받은 금속은 색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광내기로 말끔하게 처리된 굴곡면 뿐만 아니라 불꽃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색의 요소가 가미된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 굴곡면의 매력도 있다.

이러한 굴곡면 효과는 물질과의 대결에서 항상 행위자의 절대의지를 강조하는 것에서 물질 자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한 결과이다. 명석한 자유의지와 그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신체와 그 신체를 연장하는 기계와 도구를 가진 작가 주체가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주체적 의지에 따라 재료를 다루었을 때 획득하는 물질에 대한 완전정복 의지를 강조하기보다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의 유동하는 들끓음에 결과를 맡기는 것이다. 그것은 확신에 찬 의지의 실천이라기보다는 불확실한 가변의 행위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 작업을 매끈한 평면의 기하학적인 작업 일변도에서 비정형의 굴곡면으로 확장시킨다. 김원은 조각 재료로서의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를 매끈한 평면의 강박으로부터 구출해낸 셈이다. 과도한 욕심 탓에 팽팽한 평면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울룩불룩 표면효과 때문에 실패사례로 언급되는 다수의 수퍼밀러 조각들에 비해 이 얼마나 극적인 반전인가. 수퍼밀러에 덧씌워진 ‘울면 안돼’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예술적인 자유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스테인레스 스틸 굴곡면의 반사는 매끈한 평면의 반사와는 다른 효과를 보인다. 그것은 정형의 대상을 비정형의 형상으로 전환한다. 김원의 굴곡면은 물질 자체의 유기적 형상화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비정형을 조각에 끌어들이고 있다. 일렁이며 우글거리는 김원의 굴곡면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물결을 표상하기도 하며, 존재의 울림으로 읽히기도 하고, 금속의 변화 과정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시각적인 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반짝이는 평면의 안정성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굴곡면의 역동을 제공하고 있다. 조각재료로 쓰이는 물질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역발상이야말로 김원 작업의 가장 큰 예술적 근원이 아니겠는가.
김준기 (미술비평)
2006/04/19 09:02 2006/04/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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