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도 예술, 문화행동가들의 유쾌한 반란 : 오아시스

critic & column | 2005/01/06 19:43


점거도 예술, 문화행동가들의 유쾌한 반란
도심의 ‘방치 공간’을 창조와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예술가들의 투쟁

나는 지난 1월 5일 점심시간에 문화부 정문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다. 큐레이터가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이슈는 ‘예술인회관 국고환수’였다. 한 민간단체가 나랏돈을 받아서 예술인회관이라는 걸 짓다가 부도가 났는데, 알고 보니 그 건물은 70% 이상이 임대공간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말하자면 예술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집 짓는 게 아니고, 빌딩 임대사업을 하려고 나랏돈을 받아서 집을 지으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건 문화부의 공적자금 관리 소홀 탓도 있다. 어쨌든 잘못된 사업은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이미 집행된 돈을 토해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인회관 정상화의 방법은 도덕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이 일을 위해서 불철주야 뛰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오아시스 프로젝트(www.squartist.org) 멤버들이다. 이들은 유럽의 스쾃(squat) 문화를 모델로 한국사회에서 점거예술을 실행하는 개척자들이다.




▲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예술인회관 국고환수’를 요구하며 릴레이시위를 벌이고 있다. 1월 5일 점심시간에 문화관광부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서있는 필자의 모습.



도시의 바람구멍 ‘스쾃’

소유구조를 바꾸거나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행위를 가리켜 ‘점거’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점거라는 말 뒤에는 관행적으로 시위나 농성이라는 단어가 붙기 마련이다. 따라서 점거는 불법적이고 불온한 행동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점거라는 행위를 예술의 방법으로 채택하는 개념이 있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쾃이 그것이다. 스쾃은 18세기 이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유입된 노동자계층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점거하여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에서 유래했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예술가들이 작업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비어 있거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건물을 점거해서 작업실 겸 전시장,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스쾃은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싹튼 하나의 대안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은 유럽 특유의 사회적 탈출구 가운데 하나이다.

몇 해 전에 파리의 한 공공미술관에서는 이들 스쾃 아뜰리에들을 모아서 페스티벌을 연 적이 있다. 파리 지도 위에 찍힌 스쾃은 스물여덟 군데였다. 빡빡한 거대도시 파리에는 스물여덟 군데의 바람구멍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용으로 만들어낸 파리의 스쾃은 연간 수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문화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도심 속의 비어있는 건물, 폐허 같은 흉가를 멋들어진 문화생산과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내는 그들의 사회적 관용이야말로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파리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이나 베를린 등 유럽의 도시들은 스쾃 아티스트들의 유쾌한 반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문화적 숨통 트이기의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보호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라면 그것은 점거가 아닐 터, 쳐들어가고 쫓겨나는 일은 스쾃 아티스트들의 기본이다. 하지만 쫓겨나는 일까지도 일종의 페스티벌로 만들어 내는 이들의 예술행위는 우리사회의 견고한 시각으로는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목동 예술인회관은 230억에 이르는 세금이 투입됐음에도 공사가 중단된 채 5년째 목동의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점거예술과 공간재생 프로그램

남의 일을 부러워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 스쾃과 같은 맥락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 500여명이 뭉쳐서 점거예술을 벌이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보면 한국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은 지난해 여름, 목동의 빌딩 숲에 자리 잡은 예술인회관 건물을 점거했다.


▲ 지난해 8월 15일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한 모습. 예술인회관을 예술가와 시민의 품으로 가져오자는 점거 예술행동이 오아시스 프로젝트다.
<사진=문화연대>


이 건물은 예술인단체총연합(이하 예총)이 김영삼 정권 때 문화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받아서 공사를 시작한 20층짜리 빌딩. 그런데 IMF 때 공사부도가 나서 52%의 공정을 마친 후 특별한 대책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오아시스가 이 빌딩을 점거한 것은 도심 속의 흉물로 변해버린 이 건물을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만들자는 취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오아시스의 목동예술인회관 점거는 한 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공권력의 투입으로 반나절의 점거를 접어야만 했다. 이들 또한 미리 예상한 듯 순순히 웃으면서 걸어 나왔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예총이 예술가들을 고발한 것. 경찰과 검찰의 수사대상이 된 이들은 조만간 법정에 서야만 한다. 남의 공간을 무단 점거했으니 단죄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점거가 효율적인 공간 활용과 국고보조금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성 퍼포먼스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미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범법행위가 아니라 예술행동이라는 것이 언론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중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의 여론 형성이 문화관광부로 하여금 공사를 재개하라는 명목으로 예총에게 내준 돈 50억원을 환수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공간재생 프로젝트라는 차원에서도 오아시스의 점거예술 프로젝트는 매우 의미있는 문화실천이다. 여기서 잠깐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리더격인 김윤환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도심의 버려지고 방치된 공간을 예술행동을 통해 재생하고자 하는 예술점거 그룹.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예술행동과 사회참여를 통해 공간의 창조성·자율성·공공성·다양성 등을 구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일상적으로 만나서 교류하고,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 나가며, 자율적인 운영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의 공동체’를 위한 프로젝트이다.”

김 작가의 말대로 죽어있는 공간을 살리는 일. 점거의 사회적 파장을 예술로 풀어내는 너무나 산뜻하고 창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은 80년대 민중미술 이래로 집단적인 움직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런 흐름을 가지고 민중미술을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공공미술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깊이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공공장소에 대해 공론화 과정으로서의 예술행위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새로운 리얼리즘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오아시스의 행보를 찬찬히 지켜볼 일이다.


▲ 프랑스 파리의 공동 작업실. 예술가들의 점거 작업실로 미테랑 도서관 옆에 위치한 이 곳은 프랑스 국영철도의 냉동창고였다. 지금은 약간 변해서 합법적인 작업실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스쾃이라 취급하지 않기도 한다.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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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28 문화예술 게재문


행동주의 전략과 예술의 꿈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윤환과 김현숙. 이들은 부부이다. 두 작가에 대해서 ‘김윤환과 김현숙’이라는 일곱음절의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해서 예전에 네 음절로 줄여서 붙인 별칭이 있다. 꽁치마담이다. 김윤환은 특유의 외모에서 나온 꽁치라는 별명이 있고, 김현숙은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품을 반영해서 일찍이 김마담이라고 불려왔다. 두 별명을 합친 김윤환-김현숙 부부작가의 합성 이름 ‘꽁치마담’은 인터넷 상에서 주로 사용하던 애칭이었다. 이렇게 지면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려니 이 참에 두 작가를 듀엣 개념으로 생각하고 그 이름을 꽁치마담으로 불러보는 것이 ‘따로 또 같이’ 부부동행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을 호명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다.




꽁치마담은 2004년의 벽두에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작업실 리포트>에 각자의 작품을 가지고 참여했는데, 이들은 각각 휴대형 작업실과 유럽 스쾃 리포트를 출품했다. 김윤환의 <휴대형 작업실>은 개인용 이동 작업실(Personal Mobile Atelier)의 약자를 따서 PMA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바람을 불어 넣으면 언제든지 자그마한 작업공간으로 부풀어 올라 어디서든지 작업실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기주입식튜브이다. 실제 제작비가 만만찮았던 터라 PMA는 실물로 만들어지지는 못하고 모형으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람들객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한곳에 터를 잡은 공간 개념이 아니라 가지고 다니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기발하고 황당할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 있어서 작업실의 개념이 유동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현숙의 <유럽 스쾃 리포트>는 한국에 출판물로 소개되었을 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점거 아뜰리에에 관해 관심을 환기시킨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스쾃(squat)은 비어있는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속히 변모해나간 18세기 이후 유럽의 도시에서 농촌인구가 급속히 도시로 유입되었으나 주거 공간이 미처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무단 점거해서 주거공간으로 활용했던 일종의 사회적 관행이다.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예술가들이 도시의 사각지대인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점거해서 아뜰리에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스쾃 아뜰리에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김현숙은 이런 사정을 한국에 소개하는 리포트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파리와 베를린 등 유럽의 도시에 산재해있는 점거 아뜰리에를 방문해서 그곳 예술가들이 벌이는 퍼포먼스와 인터뷰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서 소개해 주었다.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과 불법 점거 작업실, 꽁치마담의 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작업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작업실을 만들고 사용하는 작가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작업실 공간 자체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 봄으로써 예술생산자로서의 작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작업실 작업은 작업실의 사회학이자 예술 혹은 예술가의 대 사회적인 좌표를 찍어봄으로써 스스로 예술영역에서만 부유하는 자폐 상황을 벗어나고자하는 소통의 미학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일년전 여름, 파리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먼저 귀국한 김윤환은 인터넷 게시판에 작업실에 관한 이슈를 던지며 이후에 지속된 일련의 작업실 작업을 예고했다. ‘한 평의 작업실이 예술가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그의 텍스트는 당시로서는 무모하거나 무의미하거 둘 중의 하나였다. 작업실 리포트 전에 출품된 PMA도 마찬가지였다. 예산문제 때문에 개념과 모형으로 그친 미완의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약간 무모하거나 다소 무의미했다.

그러나 김현숙이 학위논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의 상황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참고로 김현숙은 파리에서 점거 아뜰리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활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작업실과 관련한 이들의 전략은 작업실을 얻어내는 1차원적인 성과를 통해서 예술의 생산과 소통을 담보하는 공유하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예술개념을 만드는 데 있다. 지난 4월 재건축을 위해 철거가 예정되었던 까페시월 건물을 상대로 점거연습을 벌임으로써 가상의 성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퍼포먼스는 어디까지나 예술적 행동에 불과했다. 가상의 점거는 5월에 접어들어 목동예술인회관 공사현장-사실은 공사가 중단된 도심의 폐허이다-을 사전 답사함으로써 좀더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목동 예술인회관은 예총이 주체가 되어 90년대 중반부터 짓기 시작한 20층짜리 고층건물인데, 공공기금을 투여한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투명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로 여러 차례 사회면을 타고 세상에 알려진 문제의 공간이었다.

좀더 구체적인 이러한 목표를 풀어나가는 전술적 접근의 시작은 작은 소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이라는 빡빡하게 짜여진 도시에 바람구멍을 내는 첫 번째 행동은 예술인회관을 작업실로 임대하겠다는 분양광고를 내는 것이었다. 이 건물을 작업실로 분양하겠다고 나선 황당한 발상은 새로운 예술담론 생산을 위한 전술적 언어였다. 미미한 액션에 불과한 이 광고문은 다수의 예술인들과 시민사회에 파고들어 점점 파장을 증폭시킴으로써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꽁치마담의 표현으로는 광고행위라는 작은 바이러스가 침입해 주위를 감염시킨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다수의 작가들에게 작업실 이슈를 제공했고 대사회적인 파장을 늘려나가는 촉매가 되었다. 분양광고와 무단 침입이라는 행위는 예총과 경찰과 언론과 예술계에 모종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김윤환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예술점거라는 컨텍스트를 이식함으로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상상력을 증식시켜 사회 시스템에 변화를 유도한다”.

8.15 점거를 준비한 이들은 거사 예정일을 앞두고 공사현장에서 굴삭기를 동원해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도심에서 스쾃 관련 게릴라 퍼포먼스도 벌이고, 목동 시민들에게 예술인회관을 알리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점거는 짧고 굵게 이뤄졌다.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당일 새벽에 잠입한 이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선언서를 낭독한 후 하루가 못 채우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싱겁게 끝난 이 퍼포먼스는 일회용 해프닝으로 상황종료 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에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아야하는 피곤한 과정이 남았다. 점거를 통해 얻은 후과이다. 오아시스의 이후 대응은 예술운동과 사회운동의 경계 선상에서 위태롭게 버티는 일이다. 예총을 상대로 낸 소송을 통해서 공간에 대한 이슈 파이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법정소송이라는 행위는 엄밀히 따지면 사회운동의 방편이다. 여기에 오아시스의 함의가 농축되어있다. 이들의 전략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생존지형을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담론적 실천까지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법정소송을 통해서 여론을 만들고 그 결과로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것은 프로젝트의 연장전인 셈이다. 법정소송을 예술행위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작업이 개념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술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탈현대시대의 예술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꽁치마담이라는 두 예술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에는 예술생산자, 기획자, 이론가 등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법조인, 시민운동 활동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경찰과 언론, 나아가 시민들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다. 이 얼마나 명민하고, 치밀하며, 조직적인 네트워킹인가. 이것이 바로 이들이 말하는 예술행위의 대 사회적인 맥락화의 저변을 이루는 밑그림인 것이다.




꽁치마담은 예술가들은 불온할 필요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층위로 얽힌 세계의 법과 제도 관습 등을 깨쳐 나가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행동주의적 역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핵심은 행동주의의 관점에서 예술가가 대면하는 세상의 다양한 층위를 객관화시켜 놓고 비판적 예술행위를 보여주는 것 보다는 직접 뛰어들어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이것은 비판적 리얼리즘이 견지하는 예술가의 지위에 비해 훨씬 더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실천적 차원의 행동주의적 리얼리즘이다. 이것은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관한 통념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양상을 이끌어내는 실천적 행동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운동과 예술운동을 접목한 행동주의적 예술운동 흐름으로 읽어낼 만하다.

꽁치마담이 만들어내고 있는 작업실 작업을 가늠할 수 있는 열쇠말은 행동주의 예술 전략이다. 꽁치마담의 행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행동주의의 강령은 의외로 낭만적이다. ‘사회에 대해 저항하고 불복종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통해서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보여주는 일’이 그것이다. 저항과 불복종을 말하면서 꿈을 좇아가는 꽁치마담이 꿈의 세계와 현실을 넘나드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 번잡하고 흉흉하며 때로는 가소롭기까지 한 문화예술지형에서 드물게 마음 흐뭇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01/06 19:43 2005/01/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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