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호 : 현실 참여와 현실 비판의 간극을 넘어
critic & column | 2009/11/05 20:10
현실 참여와 현실 비판의 간극을 넘어
현대미술처럼 정보의 양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평준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술적 기호를 생산하는 주체에 관한 헤아림은 매우 중요하다. 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 주체의 삶의 궤적을 작품과 함께 매우 근본적인 요소로 설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삶이 어떤 가치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 속에서 지행합일의 길을 찾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정호는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활동을 전개한 작가이다. 인권과 통일, 민족해방 등은 그가 미술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중심의제였다. 그가 세상에 눈뜨고 그림으로 그 세상의 격랑 속으로 뛰어든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1992년에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조직미술운동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걸개와 판화를 제작했다. 대형 걸개작업 등 많은 일들이 집단창작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투적 신명, 시민미술학교, 집단창작 등의 뚜렷한 현장미술운동 기풍 속에서 전정호는 미술로서 거리에 선 액티비스트로서 격동의 시대를 가로질렀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본격적인 사회변혁운동 에너지는 전정호를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격랑 속으로 인도했다. 1987년에 친구 이상호와 함께 그린 대형 걸개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는 민중미술 진영 안팎에서의 첨예한 논쟁을 촉발했다. 1989년을 뒤흔든 <민족해방운동사> 연작 걸개에도 참가했다. 그는 소그룹 땅끝, 일과 놀이, 광주시각매체연구회(시매연), 현장미술연구소 등에서 활동을 했다. 특히 선후배, 동료들과 함과 함께 시각매체연구소(시매연) 활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풍과 예술적 에너지를 생성한 중요한 자산으로 남았다. 이후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민미련) 활동에 이르기까지 전정호는 1980년대 이후의 광주지역 리얼리즘 미술운동사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회변혁운동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그는 미술가로서 살아남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아니 하였다. 1994년의 <민중미술15년전>이라는 매우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1980년대 이후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은 한 시대의 열정을 서서히 접었다.
예술의 장은 더 이상 액티비스트를 원하지 않았다. 마치 새 세상이 열린 듯,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변혁운동의 에너지가 끓어서 넘치던 시절이 지나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가 더 이상 공론장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미술운동에 매진하던 예술가들도 산개하여 각자 나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시장 미술을 지향한 미술운동가들은 일부나마 명망을 획득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상징자본이 튼튼한 예술가들은 제도 안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액티비스트들은 미술을 중심에 두지 않고 생활 속으로 뛰어들었고, 한동안 우리는 조직적인 미술운동을 접할 수가 없었다. 전정호의 삶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겪었다. 열정적인 현장미술 운동의 과정에서 뒤로 미뤘던 첫 개인전을 그는 이래저래 자신을 추슬러서 30대 후반에 들어서야 열었다. 미술운동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96년의 일이었다. 이후 삶을 꾸리던 그가 나이 50에 들어 다시 개인전을 갖는다. 첫 개인전 이래 13년만인 2009년 올해의 일이다. 그는 개인전을 열기 위해서 광주 유동 작업실에서 두문불출 회화작업에 열중했다. 걸개와 판화, 만장, 깃발을 제작하던 현장미술가가 캔버스 페인팅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접고 다시 미술언어 게임의 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의 이번 개인전 출품작들에 대해서 언급하기 이전에 그의 과거를 들춰본 것은 전시장과 현장의 간극을 넘어서려는 그의 고심을 헤아려보기 위해서이다. 광장의 중심에 섰던 그가 광장의 서사를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회화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현실 정치의 이슈들도,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와 생명의 의제들도 실재를 반영하거나 현실을 전유하는 예술적 표현들이다. 과거의 그가 현장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의 그는 현장을 성찰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현장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광장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이슈가 종횡무진하는 공론의 장이다. 그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시각을 가진 예술가로서 현실 세계의 다양한 가치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언어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회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정호의 비판적 시각은 서울과 광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광장의 서사를 중심으로 시공간의 확장을 시도한다. 특히 그가 광주와 촛불을 비교선상에 놓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동시대에 관한 상황인식의 일단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회화 작품의 의제로 끌어들인다. <나는 불 가운데 눕고> 연작 석 점은 그의 스타일에서 보이는 독창성, 전형성이 도드라지는 그림이다. 인체와 불과 꽃을 결합한 이 그림들은 숭례문 화재 사건과 용산참사 현장의 불꽃을 인체와 결합한 그림에서 머리 부분만을 불꽃으로 대신함으로써 우리시대의 모순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진달래 꽃과 천을 든 여인이 살품이 춤을 추는 그림으로 연작을 완성한다. 정치적 현실을 냉소하고 풍자하는 시각도 담겨있다. <국회-가결되었답니다!>는 물리적 충돌 과정에 있는 국회의 군상들 한가운데 아기를 배치하고 윗부분에는 혀를 내밀고 있는 개를 통해서 정치현실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월오행악행도(대운하)>는 전통회화 스타일을 따서 대운하 사업에 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운 섬세한 구성과 꼼꼼한 필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노작이자 역작이다. <지금 흐르는 강물이 아름답다>는 금강전도를 끌어들여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림의 가장자리 곳곳에 허수아비를 띄워서 허깨비처럼 떠도는 현실의 모순과 그것에 관한 비판의 유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과 예술적 실천을 병행했던 그는 민주주의적 가치의 퇴행에 대해 깊은 우려와 새로운 희망의 시선을 회화 작품에 담아냈다. 공권력과 민중의 관계를 그린 여러 그림들은 매우 신랄한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눈> 연작은 1980년 5월과 2008년 5월을 교차한 그림이다. 분노와 슬픔을 절반씩 섞은 채 부릅뜬 눈 주변에 각각 횃불과 촛불을 배치하고 그 아래 광주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권력의 폭행 장면을 담고 있다. 팔방으로 둘러쳐진 방패 안에 피 흘리며 모로 누운 인물로 ‘부를 위해 민을 버린’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고, 전경방패 앞에 선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시대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비판의 시각은 촛불의 의미를 되새기는 연작으로 이어진다. <촛불 - 작음에서 큰 빛으로>는 크고 작은 회화 작품들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배치해서 촛불의 현실과 의미를 되새기는 연작이다. 촛불 소녀 아이콘에서 촛불 군중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촛불의 서사로 시대정신을 밝히는 ‘큰 빛’으로서의 촛불의 힘을 그리고 있다.
최근 들어 그는 현실의 모순을 바라보는 관점을 대한민국 내부에서 전지구로 확대하고 있다. 국가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모순까지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꿈1(사람이 사랑이다)>는 9.5미터 대작이다. 액자를 하지 않은 캔버스 천에 그린 걸개그림이다. 가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고통을 긴 파노라마 형식의 가로그림에 담고 있다. 이밖에도 <아프리카의 꿈2> 연작과 <절망> 연작과 같은 액자그림에서 고통과 절망에 빠진 아프리카 민중을 그리고 있다. 아프리카 연작들에는 판화와 걸개그림에서 보이는 전정호 스타일이 압축되어 있다. 굵은 윤곽선과 단색 계열의 채색을 결합한 회화 양식이다. 휴머니즘의 맥락을 잇고 있는 <생명> 연작에서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황토를 이용해 밥, 땅, 얼굴, 들, 곡식 등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부조 방식으로 평면을 탈출하려는 그의 황토 그림들은 표현의 방식을 확장하려는 부단한 실험의 결과들이다.
전정호의 이번 전시는 그의 과거 현장미술운동 경력과 앞으로의 예술적 행보를 잇는 복귀무대이다. 전정호의 이력은 현장미술가로서의 치열한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그가 전시장미술에서 관람객과 소통하기 위해 타블로 페인팅을 하고 있다. 수많은 주체들의 이념과 감성, 가치 등이 상호 충돌하는 사회적 공간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제를 가지고 예술창작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하는 현장미술과 예술가의 개별창작을 비평적 가치 경쟁의 장 위로 올려놓는 전시장미술은 같은 미술이면서도 그 메커니즘이 상당히 다르다. 현장미술의 생동감 넘치는 예술 생산과 문화 생산의 메커니즘을 그는 동시대의 제도미술 버전으로 옮겨 놓고 싶을 것이다. 사회적 연대로서의 예술 활동을 열망하면서 시대정신의 구현으로서의 예술을 실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현장미술활동의 초심을 바탕으로 하되 그의 작업 방식이나 태도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나 세상이 변하였다. 그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식, 달라진 세상에서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방식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적 전위로서의 현장미술운동이 예술의 장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아직 결론을 얻지 못했다. 전정호 케이스는 매우 상징적인 비평적 위치에 놓였다. 학생미술운동을 거쳐 현장미술운동을 했던 386세대 예술가 전정호의 향배는 변화하는 미술흐름을 짚어보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정호는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는 회화 작업으로 권력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나아가 전지구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다룬다. 현장미술가들의 예술실천은 대중적 소통 가능성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는 것이었다. 반면에 예술적 전위는 예술의 장 내에서 통용되는 언어게임의 영역이기 때문에 현장미술과는 또 다른 게임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전정호의 예술이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바로 여기에 뭉쳐있다. 현장과 전시장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의 신작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고심들이 몇 갈래로 나뉘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전정호의 예술적 실천이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실 참여와 현실 비판의 간극을 넘어 표현의 지평을 넓히는 예술의 장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