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현의 시니컬한 유머
critic & column | 2009/08/30 08:30
전수현의 시니컬한 유머
전수현의 최근작 <2009년 6월>은 10분짜리 단채널 비디오 클립이다. 그가 그동안 첨단의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이면의 배리를 폭로하거나 유머러스하게 비꼬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던 데 비해 이 작품은 매우 이질적이다. 두 컷의 실내공간 화면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폐가처럼 변해버린 실내공간의 벽지는 축축 늘어져 벽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하게 벽과 분리되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종이들이 칙칙한 실내의 공기를 전달하고 있다. 스러져가는 농촌의 빈집 실내 공간을 비추는 이 한 편의 영상에는 어두컴컴한 실내공간과 창밖의 풍경이 전부이다.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음과 실내공간을 유영하는 파리의 동선이 스틸 컷과도 같이 미동도 하지 않는 풍경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요소이다.
전수현은 이 짧고 간략한 비디오 클립에서 자신의 세계관과 현실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선은 세상과 불화한다. 약간의 소음과 파리의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정지화면과도 같은 이 영상을 통해서 그는 지루한 일상을 날것 그대로 제시한다. 그것도 남루하고 칙칙한 실내공간에서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일상의 프레임 그 자체만을 제시하고 있다. 매우 지루할 정도로 움직이 없이 정지한 화면을 통해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이 짜인 프레임 속에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답답한 현실이다. 바깥 공간에서 들려오는 약간의 소음들도 이 실내 공간의 답답함에 개입하는 정도는 매우 미미하다. 회색 공간을 배회하는 파리의 움직임은 더욱 한심하게 이 출구없는 어두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는 예술 또는 비디오 작업 자체에 관해 의문을 표현하는 방법론으로 이 폐가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권력에 저항해왔다. 이 작업에서 말하는 권력은 예술 그 자체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 아무렇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은 단채널 영상을 예술계에 투척함으로써 상징권력의 욕망으로 가득한 예술계를 향해 냉소를 보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리한 일상의 반복,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유의미한 삶’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을 끝까지 보면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짧게 낮잠을 즐기는 데 활용하라고 권면하기까지 한다. 지독한 시니시즘. 이것은 예술가 전수현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다. 예술노동이 우리시대 정신적 성찰의 마지막 영역일 수 있다는 믿음은 바로 전수현과 같은 이의 철저한 냉소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현란하고 화려한 영상기술을 활용해서 비교적 빠른 템포의 3D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편집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영상 작업을 해온 전수현이 이렇게 실사촬영 데이터를 이용해서 지루한 영상을 내놓은 것은 다분히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영상은 과거의 잔재 같으면서도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것은 동시에 현실과 낭만사이의 비관적 감성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 대한 낙관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것은 한 공간에 대한 무덤덤한 드로잉이며, 한편의 씁쓸한 시이기도 하고, 한가락의 통속적인 가요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전히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뾰족하게 드러나 있는 거대권력이든지 아니면 두루뭉술하게 잠재해있는 미시권력이든지 간에, 이 작품은 공간을 통해서 현시하는 동시대 삶의 공간이 함유한 권력관계를 얘기하는 전수현이라는 아티스트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전수현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변모해오면서도 일관된 기조를 보여주고 있다. 성적 도발을 통해서 문화적 편견과 권위를 깨려고 하는 그의 초기작 <비됴를보다>(1999)는 권력비판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이라는 작가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빨강바다>(2000)는 3D 애니메이션을 그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정착시킨 작업이었다. 2D 그래픽 애니메이션 <유나바순>(2001)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권위에 대한 발언이다. 월드컵 정국에 탄생한 3D 애니메이션 <깃발>(2002)은 국가주의 스포츠마케팅이 연출하는 대립을 극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개발 이데올로기를 통렬하게 비판한 두 편의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작업 <거짓말이야>와 <노스탤지어>도 2002년의 일이다. 이듬해의 <FBI WARNNING>은 이라크전쟁 당시 첨단장비로 목표물을 사냥하는 미군의 실제 동영상을 온라인 게임화면에 대입한 동영상이다.
지난 몇 년간 전수현은 침묵했다. 노동의 소외는 인간의 소외를 부추기고, 예술노동의 소외는 아티스트를 갉아먹는다. 전수현이 공백을 깨고 다시 발언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의 일이다. 그는 몇 년간의 공백을 깨고 <군대스리가>를 발표했다. 그것은 내 안의 권력, 우리 안의 권력에 관한 문제인식을 담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문화민주주의를 실험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치적 민주주의마저도 퇴행했다고 말할 정도로 참담한 실패였다. 그 이유는 내 안의 권력, 우리안의 권력에 있었다. 거대권력이 아니라 미시권력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상 속의 파쇼. 전수현은 이것을 동시대의 이슈로 끌어냈다. 전쟁을 전제로 존재하는 군사문화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거대한 힘이다. 그는 그 힘의 논리를 블랙 유머로 비판하고 나섰다.
전수현의 예술에는 웃음이 들어있다. 그 웃음은 두 가지 종류이다. 하나는 폭소 또는 미소이고 다른 하나는 냉소이다. 뜨거운 웃음과 찬 웃음, 환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이 공존하는 전수현의 세계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낭만적인 표현형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현실에 대한 비판과 낙관이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그것은 지독한 비관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비관이 낙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의 비관이 매우 낭만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전수현의 낭만은 지난 시기의 감성을 자극하는 향수의 코드에서 묻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대 속에 숨어있는 과거의 그림자를 끄집어내는 데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낭만, 비관과 낙관의 세계를 분주히 오가며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이야기꾼이다. 그는 시니컬한 시각으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한다. 이것이 전수현의 미덕이자 힘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상상마당 기획전 [비지올로기 2009] 도록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