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논리를 넘어서 : 현장과 전시장의 통합의 정치학 - 오아시스 720 프로젝트
critic & column | 2006/05/28 16:53

동숭동 720 프로젝트에 관한 소고
장의 논리를 넘어서 : 현장과 전시장의 통합의 정치학 - 오아시스 720 프로젝트
김준기 (미술비평)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쪽의 붉은 벽돌집에 딸린 나지막한 열두평 공간에서 이루어진 점거예술 프로젝트 “멈추지 않는 720시간동안의 저항의 퍼포먼스”는 전시장과 현장의 이원구조를 넘어서는 통합의 정치학을 이루었다. 그것은 오아시스 프로젝트라는 행동주의퍼포먼스 그룹이 지난 수년간 이어온 예술점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으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점점 증대하고 있는 작업실 담론을 가시화한 것이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예술점거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사회에 새로운 예술운동의 맥락을 소개하고 정착시켜왔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예술운동이 예술작품 자체의 변동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과는 달리 예술의 개념과 예술가의 존재 그 자체를 문제시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낯선 것이었거니와 심지어는 사회운동과 결합한 예술행동주의의 관점에서 보아도 어딘가 모르게 다소간 멀어보였다. 이들이 예술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한발씩 앞선 다른 관점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예술과 사회, 감성학과 운동의 관점에서 이탈한 제3의 길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점거예술 퍼포먼스는 두 가지 차원에서 세간의 우려를 낳았다. 첫째는 기존의 예술적 가치를 충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어느 정도나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그 반대의 시각에서 이들의 예술적 행위가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결국은 예술계 내부의 이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퍼포먼스와 실재 사이에 선 점거예술 프로젝트인 동숭동 720 프로젝트는 이러한 생각들을 일거에 불식시킨 투명한 사건이다. 이들이 그동안 펼쳐왔던 퍼포먼스로서의 점거를 실재점거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퍼포먼스와 실재 사이에 선 현실 속의 점거였다. 동숭동에서의 점거는 목동예술인회관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김밥집으로 쓰이다가 빈공간으로 남아있던 열두평에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작가들이 실제점거를 들어갔을 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는 문예진흥원에서 민간단체로 전환한 직후에 중대한 실험에 봉착했다. 불법적인 공간 점거에 대해 적잖이 당혹스러워했을 법한 문예위는 민간단체로서의 유연한 면모를 잃지 않는 데 성공했다. 불법점거를 합법적인 공간사용으로 전환한 일은 물리적 충돌을 각오하고 새벽시간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점거에 들어갔던 동숭동 720 프로젝트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나 민간단체 출범직후에 예술인들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봉착한 문예위 차원에서나 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범점거로 시작해 합법승인을 얻어낸 동숭동 720 프로젝트 공간은 전시장이자, 세미나실이며, 공연장이자, 수다를 또는 곳이며, 잠자는 공간이었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한 10월초부터 11월 상순까지 김윤환을 비롯한 많은 멤버들이 검거공간에서 침낭을 펴고 밤을 보내며 늦가을을 맞이했다.

오아시스는 예술점거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720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펼쳤다. 이들의 점거작업의 역사는 몇 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김윤환은 작업실을 주제로 한 미술관 전시에서 <휴대형 작업실>을 개념적 차원에서 제시한 바 있다. 개인용 이동 작업실(Personal Mobile Atelier)의 약자를 따서 PMA라고 명명한 이 작업실은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예술창작의 유동성을 제안했다. 김강은 유럽 예술가들의 작업실 점거와 관련한 사진과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작업실 모델을 소개했다.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과 불법 점거 작업실에 대한 이들의 예술적 발언은 이듬해에 예술적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2004년 봄, 이들은 철거를 앞둔 까페시월 건물에서 <불온한 점거 Work Shop>(2004.4.16)을 열었다. 건물의 안과 밖 모두 파괴를 통한 재창조 과정을 거쳐 전혀 새로운 예술실험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다음달 이들은 <숨바꼭질>을 했다. 목동예술인회관에 답사차 다녀온 것이다. 리얼링15년전(사비나미술관)에 참가한 이들은 목동예술인회관 분양광고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실재점거를 앞둔 홍보전략을 폈다.
그해 여름 포크레인 퍼포먼스와 세 차례에 걸친 게릴라 페스티벌을 개최한 이들은 8월 15일을 맞아 목동예술인회관의 점거를 거행했다. 광복절을 거사일로 정한 이들은 현장에서 예술가독립선언을 했다. 점거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유연하게 물리적 충돌없이 끝났다. 순순히 웃으면서 점거공간에서 자진 철수하는 이들의 모습은 점거라는 저 엄숙하고 비장한 싸움의 무게를 한꺼풀 벗겨내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점거는 절반은 실재이며 절반은 예술이었다. 예술에 있어 실재의 문제가 어느 정도까지 비중을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가르는 중요한 이슈이다. 이들의 행위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식으로 점거공간을 사수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점거공간에서 퇴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말그대로 퍼포먼스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일부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당혹스럽게 지켜봤다. 점거의 비장함에 비해 이들의 유쾌함은 도가 지나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후의 긴 싸움을 예견하지 못한 경박한 판단이었다.

움직이는 예술개념으로 생성하는 전시를 만든 동숭동 720 프로젝트는 김강, 김윤환, 노순택, 안현숙, 용해숙, 이중재, 이호석, 정정엽 등 8인의 작가와 박보경, 노현지, 이원재 등 3인의 문화활동가가 함께 만든 일이다. 이들의 실험은 공간을 점거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지속적인 퍼포먼스와 토론회를 통해서 많은 예술인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가 전시장 공간에 주목한 것은 모든 미술가들의 공통분모가 예술작품의 창작에 이은 전시에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점거공간에서 전시를 연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어서 초기에는 점거에 직접 뛰어든 예술가들의 작품만으로 시작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의 수가 늘어났다. 이른바 ‘생성하는 전시’였다. 생성하는 전시에 점거 당시부터 참여했던 작가들은 8인이다. 안현숙은 공간 내부에 푸줏간을 상징하는 붉은 조명을 설치했다.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처럼 모든 예술작품을 욕망의 담지체로 만드는 직업이다. 자신의 작업실 이동 경로를 그린 정정엽의 <나의 작업실 변천사 : 1986-2005>는 평상 위의 지도를 통해 한 작업공간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의 삶을 펼쳐놓은 파노라마이다. 김윤환과 김강 두 작가의 <예술행정의 실패가 예술의 죽음은 아니다>는 기억을 무형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비물질적 형태의 프로세스 작업이다. 용해숙의 <깨끗해 지세요>는 예총 현판을 그대로 복제한 비누조각이다. 그는 이 비누조각을 전시 진행기간 동안 실제 비누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장에 떡볶이 집을 차려서 <떡볶이 시스템>을 만든 이중재는 이후 다른 공간에서 실제의 떡복이 집을 차리기도 했다. 가짜가 진짜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이호석의 <튀김>은 볼펜과 같은 일상의 사물들을 오징어처럼 튀겨낸 것들로 주방기구와 밀가루반죽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본말이 전도한 가짜세상을 풍자했다. 노순택은 8.15 점거장면 기록사진으로 함께 했다.

720은 합법적인 사용 승인 이후에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전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의 방문이 이어졌으며 즉석에서 토론과 작업이 이어졌다. 출품작들은 공간의 특성에 맞게 설치작업이 많았는데, 풍경을 설치한 박동수, 붉은 색 실로 감겨진 두개의 돌 설치작업을 한 윤희수, 사진과 텍스트, 비닐봉지 설치를 720 내외에 설치한 삼순이피디 등이 참여했다. 박현희는 미술 심리 치료 프로그램 결과물을 전시했으며, 이은실은 작가가 상상하는 작업실을 조형 작품으로 만들었으며, 이효원은 입구쪽 나무에 검은 색 스타킹으로 설치 작품을 제작했고, 주재환은 생수통에 부착된 글귀를 남겼다. 노재운은 오아시스 GPS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서 기존 작품인 말, 자전거와 함께 전시했고, 곽범주는 실내 벽화작업에 동참했고, 정해남은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참여했다. 사진과 비디오 작업도 있다. 자신의 작업실 장면 비디오를 상영한 임경선, 정신대 할머니 다큐멘타리 침묵의 외침을 상영한 안해룡 등의 작품과 더불어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임종진, 철거 지역의 아파트에 들어가서 실내에서 실외를 찍은 사진을 전시한 고현주, <또 하나의 지문-배꼽>이란 사진 연작 작품을 출품한 정시원 등이 참여했다.
퍼포먼스도 작가들도 참여했다. 붉은 색 장옷을 입고 720 주변에 서 있는 퍼포먼스를 벌인 입김, 탈을 쓰고 작은 솟대를 이용해 퍼포먼스를 벌인 장소익 등이 그들이다. 외국인 작가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오쿠수 아야카(일본)는 종이컵에 실을 연결하고, 외부 화단의 땅에 묻고, 다른 한쪽은 나무에 연결했다. 라이언 씨에간 스미스(영국)는 분식집의 메뉴판을 이용하여, “무학 예술가의 100가지 아이디어”를 글로 남겼다. 이케다 교우코(일본)는 보석이 있는 왕관 사진을 720 곰팡이가 피어오르듯 벽과 천정에 설치했다. 예이리(대만)는 붉은색 의상을 입고, 꽃을 나누어 주면서 관객들을 포옹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챙씬쯩(대만)은 알람 시계 퍼포먼스를 했다. SP38(프랑스)은 평화를 상징하는 비행기 그림을 720의 쇼윈도우와 벽면에 설치했다. 윌리엄 헌터(캐나다)도 우연히 720앞을 지나가다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송민숙(춤새)의 오프닝 댄스, 온&오프 창작무용단의 창작춤 비디오 등 무용인들의 동참과 더불어 신동호, 박후기, 이인휘 등 문학인들, 모레인, 오 브라더스, 소이, 길거리 평화행동단 등 인디밴드들도 동참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이 전시를 만드는 데 동참했다.

이 모든 이들과 함께 720은 점거이자 전시이고, 투쟁이자 파티였으며, 그들이 머문 곳은 현장이자 전시장이었었다. 이들의 작업은 예술에 대한 물음이자 해답이었으며, 예술의 안쪽과 바깥쪽 모두를 향한 깊은 신음이자 동시에 의연한 함성이었다. 동숭동 720 프로젝트는 ‘점거 퍼포먼스는 실재와 예술 사이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하는가’, ‘행동주의적인 예술실천은 심미적 오브제로서의 예술작품과 대치하는 개념인가’ 하는 문제제기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이들의 실천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술이라는 것’ 속에 담긴 진정성의 국면을 자신들의 삶의 문제로 끌어안고자 하는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실재의 점거이자 예술적 점거’인 이들의 의도와 실천은 예술창작과 향유 개념으로 이원화 한 모더니즘 패러다임을 창작과 향유가 한 몸인 통합적인 작업실 공간이라는 포스트모던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실현한 것이었다. 그것은 행동주의 전략과 예술의 꿈을 함께 이루려는 것이며 동시에 전시장미술과 현장미술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통합의 정치학이다.
오아시스와 같은 현장성 기반의 소셜 퍼포먼스 프로젝트가 전시장이라는 시각이미지 게임장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전시장은 예술가의 형식실험과 내적필연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아정체에 대한 탐구의 장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작업실 공간에 앉은 작가, 붓을 쥔 예술가 주체의 고뇌의 흔적을 심미적 영역에서 통찰할 수 있는 전문화된 공간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시각예술의 심미적 소통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으로서의 전시장은 따라서 현장미술과 상대적 개념을 형성할지언정 서로 반대의 지향을 가지 배타적인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시장은 장으로써의 규칙이 작동하는 미술 고유의 공간이다. 동숭동 720은 장의 논리를 뒤집어 새로운 장을 만들었다. 이들이 꾸민 현장-전시장은 전시장 공간을 게토화 하는 소통부제의 개념과 제도를 넘어서고자하는 실험으로써 전시장 고유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맥락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멈추지 않는 720시간동안의 저항의 퍼포먼스”는 장의 논리를 넘어서 현장과 전시장의 이원화한 구분을 해소한 통합의 정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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