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론 1] 최흥수 : 어두움 저편의 “밝은 세상”

critic & column | 2005/09/24 18:05



최흥수 : 어두움 저편의 “밝은 세상”

누구든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나름대로의 사색에 몰두하는 시절이 있다. 대체로 10대 후반이 그렇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상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특히 인간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그 해답을 내려놓고는 무슨 큰 깨달음을 얻은 냥 자아도취에 빠졌던 적이 있다. “인간존재는 그 자체가 이유이자 목적이다.” 물론 그 결론의 철학적 배경은 개똥철학이었다. 이른바 실존주의 철학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이 말하는 던져진 존재로서의 피투성(彼投性)이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윤리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를 바탕으로 학력고사에서 적당히 답을 골라내는 수준에서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나는 대체로 이러한 막연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며 운명개척의 주인으로서의 주체철학을 설파하는 선배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존재에 관해 가장 뚜렷한 기억을 남긴이는 마르크스이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인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그의 말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정신이나 영혼, 의식에 선행하는 것이 존재, 물질, 신체인 것이다. 나는 최흥수가 존재에 관해 유물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굳이 대화를 통해 질문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존재로부터 의식을 규정하는 유물론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철저하게 몸으로 사는 작가이며, 자신의 신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최흥수. 서른 여덟 나이에 혼자 사는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노동현장과 탄광 군대를 거친 후에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그의 그림들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삶의 현실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끌어올리는 것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에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때 글 작업을 위해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만나고 보니 그는 학교 다닐 때 자주 본 얼굴이었다. 그의 이웃집 선배 홍성담 작가의 소개로 만났는데, 알고 보니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에다 동갑이었다. 작업 얘기도 중요했지만, 나는 그의 사는 얘기가 더 궁금했다. 그의 전시 주제가 ‘혼자서’였기 때문이다.


그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자화상> 연작, <환자복> 연작, <대변> 연작을 내다 걸었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생활공간을 그리는 것으로 자화상을 대신 하는 것,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그리는 것, 일기 쓰듯 자신의 똥을 사진으로 기록해 놓은 것. 그것이 2003년에 열린 최흥수의 첫 번째 개인전 “혼자서”의 출품작들이다. 그것은 혼자서 절망적인 상황을 보내온 흔적들이며, 생산적이지 않은 과거에 대한 기억들의 되새김이자,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그의 말대로 구질구질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의 첫 번째 전시의 서문을 쓰면서 동갑내기 화가의 청춘에, 그의 영혼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혼자서’ 세상을 사는 남자였다.

작업실론을 위해 오랜만에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만나 ‘밝은 세상’이라는 프랙카드가 걸려있는 그의 작업실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그는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에 걸친 김천예고 출강을 마치고 서울역을 거쳐 일산 대화역에서 구산동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일산평야 한 곳에 풀벌레소리가 가을을 재촉하는 곳. ‘밝은세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건물 공장 한 켠이 지금 그가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다. 예전에 조소작가 김진수가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거주공간으로 사용 공간이 지금 그의 작업실이다.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한 1993년 이후 그는 학교 근처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달세 10만원 하는 전형적인 자취집작업실 생활부터 시작했다. 일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하는 건 기본. 주차장을 개조한 작업실, 옥탑방 등이 주종을 이루는 작업실 겸 주거공간이었다. 2001년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홍대앞의 그런저런 작업실들을 섭렵하면서 30대 중반을 맞이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 현재 살고 있는 일산 구산동 막사 작업실로 옮긴 것은 그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였다. 막사 작업실을 정리하고 모 작가의 작업실로 잠시 옮겼다가 다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는 구산동 작업실과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지난 겨울 내가 잠시 그를 만났을 때, 갑작스러운 거취 변동으로 그는 상당히 곤란을 겪고 있었다. 지난 겨울 그는 실내에서도 농구선수들이 입는 긴 방한복을 입고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2층 작업실에서 한겨울을 보냈다. 지금 사는 곳의 2층 건물이 그의 주거공간이었다. 막사 2층은 보일러 시설이 없는 한기가 서린 곳이어서 거주공간으로서 매우 열악했다. 사태를 수습해서 지금은 아래층의 제대로 된 공간에서 주거공간을 꾸리고 2층은 작업공간으로 쓰고 있다. 부도난 회사를 이어받은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공장 “밝은 세상”. 그 한켠이 최흥수의 작업실이다. 10년 전에 홍대 앞에서 살았던 공간의 딱 2배정도의 돈이 들어가는 공간이다. 공간에 비해 세가 턱없이 싼 것은 그들 노동자들과 친밀하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최흥수, 거꾸로 가는 시계 - 구산동 추억1, 32*32cm, 장지에 먹, 담채, 시계 무브먼트, 2005

그는 요즘 시계를 만들고 있었다. 아트시계다. 이건 그냥 아트가 아니고 아트상품이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에 부천에서 학원을 연후 3년동안 운영하다가 정리하고, 지금은 김천예고에 먹그림 강사로 출강하먼서 외부일을 줄이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화가에게 있어서 학원수입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입원이었지만, 그는 다른 모색을 위해서 그 일을 접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강사이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온전히 아티스트로 살고 있는 그에게 있어 요즘 만들고 있는 아트시계는 차라리 아트가 아니어도 좋다. 최흥수라는 사람,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강한 생활인이라는 점이 곁에서 보기에 참으로 좋았다. 아트로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그는 건강하게 자생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자신의 먹그림이 들어간 시계로부터 컬러풀한 키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계들을 만들어서 방 한 가득 늘어놓고 있었다. 벽에도 한 가득 가지런하게 시계가 걸려있다. 그는 9월 내에 아트시계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트시계는 작업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아트시계 홈페이지도 제작하고 홍보마케팅도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인기업 시스템의 전형적인 예술가 스타일의 생산과 유통시스템이다. 워낙 없는 밑천에 시작해서 시작 자체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조금씩만 자금회전이 되면 일이 잘 될 것이라고 한다.

최흥수, 거꾸로 가는 시계 - 구산동 추억2, 32*32cm, 장지에 먹, 담채, 시계 무브먼트, 2005

장가 안가냐는 싱거운 질문에 ‘나이 먹고 구질구질한 것 숨기려고 움츠려들기도 한다’면서 씩 웃고 만다. 그의 말대로 반복되는 힘겨움은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짜증나는 현실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부끄러움 없이 단아하다. 미술대학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서 나이 서른여덟에 프리마켓에서 아트시계 좌판을 벌일 구상을 하는 최흥수. 말 그대로 누가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자기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것만이 그를 버티게 하는 새로운 희망이다. 나는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한 마디 보탰다. 미술이론을 전공한 나의 학부 동기생 형도 프리마켓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데, 매우 쿨하게 즐기면서 일하더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냥 여기가 외국이려니 하고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예고 강의를 나가면서 아트시계를 만들고 있는 최흥수에게 있어서 ‘나도 작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삶의 전부이다. 그의 첫 개인전 주제인 ‘혼자서’라는 말을 꺼내봤다.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의외로 공장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는 것, 그들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말한다. 함께하는 일은 없지만 서로서로 각자의 일을 존중하는 식구로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장 확고한 희망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드는가봐.” 불쑥 한 마디를 던지고는 담배를 한 가치 입에 무는 그는 어느새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중년 입구에 선 남자였다.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구산동 막사 작업실. 그를 혼자 두고 자유로로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난겨울의 한기 서린 2층보다 지금의 1층이 한층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아서는 길에 건물 제목을 돌아 보았다. “밝은 세상.” 혼자 사는 남자 최흥수에게 끊임없이 또 다른 꿈을 가지게 하는 캐치프레이즈이다. 그 밝은 세상이라는 것이 희망이 아니어도 좋다. '좀 더 버텨보자'는 생각 뒤편에서 그를 어디론가 밀어부치는 힘. 역시 그의 앞에 버티고 서있는 것은 “그놈의 아트”였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움 저편의 “밝은 세상”. 그 속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트’인지 ‘라이프’인지, ‘아트 인 라이프’인지 ‘라이프 인 아트’인지 알 수 없었다.
2005/09/24 18:05 2005/09/24 18:05

trackback :: http://gimjungi.net/blog/trackback/188
  1. 안녕한 바리네 :: [본문스크랩] 혼자 

    나, 근 2년? 2년 반동안 입시 지도 해준 선생님. 참, 많이 싸우면서 놀았는데... 하하하 ~_~ 예비반은 나혼자고, 맨날 자기고집만 부리는 학생이라, 참으로... 서로 짜증도 많이 내고... 심하게 싸우기도 하고... 심하게 울리기도 하고... 03년 개인전은 직접 보러 갔었는데, 그때는 왜 이렇게 그렸나.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