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식 20주기 심포지움 : 20세기 한국미술과 김종식 예술의 재발견

project | 2008/12/03 10:34


김종식 20주기 심포지움
20세기 한국미술과 김종식 예술의 재발견
2008.12.19(금) 오후 2시-5시, 부산시립미술관 강당

발제
김종식의 작품세계와 부산미술 - 옥영식 (미술평론가)
한국근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본 김종식의 예술 - 윤범모 (경원대학교 교수)
김종식 프로젝트의 가치와 방향성 -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토론
기혜경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김복기 (아트인컬쳐 대표)
배창길 (부산광역시 중구청 문화공보과 과장)
손기덕 (서울산업대 교수)

사회
이성훈 (경성대 교수)


20세기의 질곡을 관통한 삶의 궤적을 통해서 부산화단의 문을 열고 꽃을 피운 화가 김종식. 부산미술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그의 삶과 예술은 부산화단은 물론 한국 근대화단의 면면을 헤아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이다. 그는 여하한 시류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식민지 학습기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이룩한 예술가이며, 중앙과 지방의 차별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지키며 부산작가로 살다간 예술가 김종식은 근대화단의 선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종식은 근대의 콤플렉스를 관통한 거장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부산화단 혹은 한국화단의 콤플렉스들과 정면으로 대결했다. 그는 서구미술의 이식으로 출발한 근대화단의 근본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근대를 개척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거쳐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에 이은 일대 혼란기를 거치면서 예술적 열정과 시대적 소명의식 속에서 갈등해야 했다. 또한 부산지역을 지키는 작가로서 중앙화단과의 간극을 넘어서는 일 또한 매우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제국과 식민, 건국과 내전, 중앙과 지방 등과 같은 격변의 세월을 맞이했다. 김종식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가중시키는 이중삼중의 콤플렉스를 맞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다.

김종식 20주기 심포지움은 이제 충분한 역사적 평가를 거리가 확보된 작가이니만큼 본격적으로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에 대해 연구해서 그 위상을 재정립하는 자리이다. 이번 심포지움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진단을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부산지역 화단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또는 동아시에서 근현대를 관통해온 우리 미술은 역사를 재점검 하는 차원이다. 나아가 앞으로 김종식을 기리는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폭넓은 토론을 유도해서 향후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계획을 수립하는 초석을 놓는 자리를 만들 것이다.

김종식 약력
부산 동래구(현 금정구) 장전동에서 태어났다.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동래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에 유학, 1942년 귀국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개인전을 연 이후 부산미술전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하면서 부산근대화단을 만드는 데 함께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그는 새로운 예술활동을 모색하며 교류한 동료들과 토벽회 활동을 했다. 부산과 부산 인근 도시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동아대학교에 근무하면서 부산에 정착, 후진을 양성하면서 창작에 몰두했다. 600여 권의 스케치북과 2만여 점에 달하는 드로잉과 유화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사후에 범어사 인근 상마마을 어귀에 김종식 그림비가 세워졌다.

2008/12/03 10:34 2008/12/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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