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아파트 해체 기념사진 혹은 기억투쟁 : 화덕헌 개인전 리뷰

critic & column | 2009/10/17 09:12


원조아파트 해체 기념사진 혹은 기억투쟁
: 화덕헌 개인전 리뷰

해운대 달맞이언덕은 언덕이 아니고 산이다. 그것은 와우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 언덕(hill)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우리는 산(mountain)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와우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소가 누워있는 원만한 둔덕으로 이뤄진 산이라서 와우산(蝸牛山)이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홍익대학교 뒷산 이름도 와우산이다. 그곳에 만든 AID 아파트, 일명 와우아파트는 와르르 우르르 무너져 33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1970년에 벌어진 이 대형사고는 1970년대 개발의 시대가 만든 난개발의 상처로 깊이 남아있다. 시공단계의 부실한 기초공사가 원인이었던 이런 유형이 사고는 1990년대 성수대교 붕괴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개발시대가 얼마나 허술하게 외형과 속도에 맞춰 진행되었는지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마포의 와우산처럼 해운대의 와우산에도 같은 유형의 아파트가 있다.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운대를 방문했을 때, 와우산의 서북쪽의 경사진 땅에 아파트를 지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미국에서 빌린 돈으로 아파트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국제개발협력처(USAID: U.S.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Agency)에서 빌린 돈으로 지은 아파트이기 때문에 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다. 미국의 차관을 끌어다 지은 이 아파트는 지난 35년 동안 수많은 삶을 지탱해준 보금자리 역할을 한 부산 아파트의 원조격이다. 지난 2003년 이후 건물 안전도에 문제가 생기면서 철거가 시작되었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철거와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화덕헌의 이번 전시는 70년대라는 개발독재의 시대에 지어진 미국 차관 아파를 허문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화덕헌의 사진은 원조 아파트의 해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담은 기념사진이다. 해체는 생성을 위한 파괴이다. 그것은 한 시대를 접고 다른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이 작업은 한국 근대의 개발 프로젝트가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은 원조아파트 해체 기념사진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국면 전환의 과정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에는 머지않아 과거로 남을 현재를 담아두겠다는 생각, 즉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겠다는 다큐멘터리 정신이 들어있다.

화덕헌은 이 전시를 철거공사의 중계방송이자 예고편이라고 말한다. 현재 진행 중인 철거공사 장면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것이므로 중계방송이며, 앞으로 진행될 긴 공사기간을 생각하면 예고편이라는 얘기다. 그는 철거현장에서 주운 잡동사니들을 제시한다. 자잘한 생활 용품 속에는 삶의 기억이 묻어있다. 실물과 사진 사이에는 실재와 기표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사진을 전시하는 갤러리 공간으로 끌고 들어온 실물은 그것을 사진이라는 재현기제를 관통했을 때와는 또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실물을 전시장공간에 투척하는 행위는 사진에 비해서 훨씬 더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화덕헌이 자신의 전시를 단순히 기록에 대한 보고 형식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대화하는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화덕헌은 분주히 해체 장소 주변을 맴돌고 있다. 해체 전경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기도 하고 바짝 들이댄 카메라로 디테일을 포착하기도 한다. 아파트 벽을 부수고 들어간 포크레인의 거대한 삽날은 파괴와 개발의 논리로 가득한 우리시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고스란히 누워있는 아파트 측면에는 주공아파트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아이보리색 아파트 페인트와 균열 사이로 속살을 드러내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묵직한 볼륨과 매스의 느낌을 잘 보여준다. 4X6인치 크기의 작은 사진 624장을 이어 붙여서 만든 AID아파트전경 모습은 4미터에 가까운 396cmX246cm 크기의 대형 사진이다. 전경 사진을 잘게 나눠서 프린트를 한 후 이를 이어붙인 것은 비용 대비 효율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아파트의 해체라는 사건의 의미망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화덕헌의 원조아파트 해체기는 개발독재 시대에 대한 비판적 기록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朴正熙 대통령 각하께서 기계공업 육성에 정진하는 부산기계공업학교 교직원의 편의를 위해 1975년 1월에 하사 하셨음.” 작가가 현장에서 발견한 이 텍스트는 개발독재시대의 통치자가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를 드러낸다. 도시환경을 기록하고 그것을 기억 속에 존재하도록 하는 일이 화덕헌이 이 전시를 여는 이유이다. 그것은 중계방송이나 예고편 정도가 아니라 기나긴 역사 동안 부산의 20세기 후반을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잊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70년대 개발독재의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빡빡하게 규격에 짜맞춘 성냥곽 아파트 속에 갇혀있었는지를 망각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이상주의자들은 아파트를 새로운 세기의 문명으로 인간을 해방할 혁명적인 건축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있어 아파트는 팍팍한 주거공간이며 주거를 위한 공간을 넘어서 화폐를 발견하고 화폐를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있다. 삶의 애환을 담은 기념사진으로부터 자잘한 생활용품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채집한 현장의 오브제들에는 이름없이 사라져가는 시공간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공간을 기록함으로써 시간을 기록한다. 그가 남긴 것은 AID 아파트 해체 현장이라는 공간뿐만이 아니라 망각으로 빠져드는 한국 근대사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그것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대의 공론장에 투척하는 기억투쟁이기도 하다. 화덕헌은 원조 아파트 해체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있는 물질문명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그의 사진은 기록의 수준에서 비판으로 수준으로 이행하며 사진을 예술적 발언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갤러리 미고, 화덕헌 개인전 리뷰 : 월간 포토넷 기고문.

2009/10/17 09:12 2009/10/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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