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미술과 낮게 깔린 미술

critic & column | 2006/08/15 23:20


우뚝 선 미술과 낮게 깔린 미술
미술작품은 그 거처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용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역사적인 명작들은 미술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은 그러나 최초에는 특정한 장소에서 나름의 쓰임새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들이었다. 저 유명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이라는 전체 구조 속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회화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 종교화 등등 대부분의 작품들은 제작단계부터 어느 공간에 배치될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의 주제와 형태와 색채, 재료, 크기 등을 결정한다. 그러니까 모든 미술작품의 탄생은 특정한 공간에서의 구체적인 쓰임을 목적으로 제작된 물건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시기 이후의 미술에 있어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미술이 독립적인 영역과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미술이 자율적인 창작과 독자적인 향유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에 미술의 전제 조건이었던 장소의 맥락은 대부분 그 의미를 상실한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본격화한 모더니즘 예술은 회화 그 자체, 조각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서 다소간 차이는 있겠으나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념 아래서 매우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장소 개념과 상관없이 미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러한 특정 공간으로부터의 해방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작품이 공간 개념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술작품을 하나의 예술적인 물질로 이해하는 한 우리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질로서 예술작품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미술작품의 매개공간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이다. 전시장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약속된 공간이다. 미술관이 하나의 제도 공간으로 자리를 잡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체계적인 제도를 만들어 온 것이다. 미술작품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전시장 공간에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역사적인 진보이다. 전문적이고 전문적인 미술작품의 수집과 보존, 연구와 전시,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미술관이라는 제도가 있음으로 인해서 미술계는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술작품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이전의 미술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장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상공간에서 만나는 미술작품과 전시장공간에서 만나는 미술작품은 그 감상의 방식이나 감동의 크기 등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대중문화의 시대이다 보니 미술관이 시대에 뒤처지는 시각문화의 공룡 같은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이 미술관 바깥으로 다시 나온다면 어떨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공공미술이라고 불리는 제도 혹은 태도이다.
미술관 바깥의 미술은 다양한 형태로 시민들의 일상 공간 속에 자리 잡는다. 우선 서울 도심의 공공장소에 있는 미술작품들부터 살펴보자. 광화문 앞에는 해태상이 있다.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서 경복궁의 정문 앞에서 지킴이 역할을 하는 이 작품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돌조각이다. 이 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봐야하나? 공공장소에 있는 조각이니 공공미술이라고 해야할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예술작품과는 관람 포인트를 달리해야한다. 요즘 식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면 좀 곤란해진다는 얘기다. 돌조각의 형태미나 비례, 세부 표현 등을 따지고 들어 미학적인 평가 판단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조형적인 비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작품의 장소 특정성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다. 해태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이순신장군동상이다. 일본의 대조선침략전쟁에서 23전 23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낸 전쟁영웅 이순신. 그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군인출신의 정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화정치의 결과이다. 세종로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세종대왕동상이 들어서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박정희 정권에게 필요한 것은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쟁영웅을 내세우는 일이었다. 당시 일본의 최신 청동주물 기술을 전수받아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대통령이 직접 김세중 조각가의 작업장에 가서 막걸리를 사주면서 독려했을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국가적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국가적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장군이야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작품이 그곳에 놓여있는 맥락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특정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공공공간의 문화정치라는 맥락에서 말이다. 작품 자체로만 보면 탄탄한 조형성과 상징성을 가진 세종로의 이순신장군만한 작품도 드물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작품은 그 바깥의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순상장군 동상은 세종로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빠짐없이 제작, 설치되었다. 특히 각급 학교에 이순신장군 동상 하나 없는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천편일률적으로 한 인물을 가지고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문화는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삼는다. 다양성을 말살하는 이 획일적인 문화정치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순신뿐만 아니라 반공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이승복 또한 마찬가지다. 세종대왕동상 또한 같은 맥락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유관순누나 동상은 또 어떤가.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기념비적인 조형물이 이렇듯 몇몇 국가주의 프로젝트에서 기획된 애국심 일변도의 서사구조만을 가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의 시각예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과연 애국심 밖에 없는가 하는 점을 심각하게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뚝 솟아서 영웅주의를 웅변하는 기념비적인 조형물의 문화정치에 비해서 사람의 눈높이보다 더 낮은 곳에서 전혀 다른 감동을 전달하는 예술작품을 본 적이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케테 콜비츠의 조각 작품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만큼 전쟁의 상처를 깊이 담을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이 작품에 대해 초라해 보인다거나 비극의 처절함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논평들에 대해 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베를린 지역의 한 근대건축물 한 동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이 작품을 대하는 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 텅 빈 공간 속 한 가운데에 아들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었다. 건물 천정이 뻥 뚫린 상태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것이다. 바깥이었다면 이런 감동이 없거나 덜했을 것을 아무것도 없이 텅빈 건물 안에 모자상을 두고는 천정을 뚫어 눈비를 맞게 하다니 이건 정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도가 너무 심했다. 아무 장치도 없이 텅빈 공간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브론즈 조상이 있고 그 위에 빛을 떨어뜨리는 천정의 구멍. 그것은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눈과 비를 끌어들이는 장치였다. 그 천정의 구멍 하나로 인해 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숭고미란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겠는가.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직업상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드문 일이다. 아무튼 나는 콜비츠의 이 모자상을 언급하곤 한다. 모자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식상한 주제인가. 서구의 피에타 조상들만 해도 얼마나 애절하게 수천년동안 관람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겠는가.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 위에 있는 모자상은 또 얼마나 많은 힘겨운 이들에게 삶의 따뜻함을 전달했겠는가. 하지만 대다수의 모자상들이 종교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신파적 내러티브 자체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콜비츠의 모자상이 각별한 이유는 모자상의 신파적인 내러티브를 특정한 공간 속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군더더기 없는 조형물을 바닥에 깔아 두고 천정을 뚫어 빛과 눈비를 끌어들이는 탁월한 감각 때문이다. 광장에 우뚝 선 높은 좌대 위의 영웅적 인물상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이렇게 낮은 곳에 임한 인간적인 모습의 공공미술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열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본디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일까. 이러한 낮은 공공미술을 나는 인근 광장에서 또 한 차례 경험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정말 낮은 곳에 임하고 있었다. 그냥 광장에 내려와 있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상징물로 치자면 동독사회가 최고로 추앙했을 법한 아이콘을 그냥 광장 한가운데 낮은 곳에 세워놓았다는 점. 여느 도시의 우뚝 선 영웅들과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한국도 많이 변했다. 도시의 곳곳에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건축물미술장식품법이라는 법제도 때문에 어거지로 세운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획일적인 문화정치에 따라 동일한 작품이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으로 배치되는 일이 반복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육칠십년대식의 직접적인 이데올로기 주입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공간 가운데 우뚝 서서 주변을 지배하며 웅변하려드는 남근주의는 여전하다. 역사성이나 장소의 특수성과는 상관없이 알 수 없는 작가주의를 앞세워서 공공공간의 미술작품으로는 함량미달이라는 지적을 받는 경우도 많다. 서울에서 만나는 공공미술 가운데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만한 지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다. 새로 지은 서울역사 앞에 있는 박기원 작가의 작품 <자-넓이>이다. 형태는 매우 심플하다. 철판과 돌로 만든 직각자 형태의 기하학적인 구조물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외관상 얼마나 미적인 형태와 색채와 재질감을 가지고 감상자에게 미적인 감동을 전달하는가 하는 점이 감상 포인트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작품은 공공장소에 놓인 작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의미심장한 논점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기능을 겸하고 있는 스트리트 퍼니처다. 그런데 그 공간은 대체로 노숙자들의 전용공간이다. 나는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저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노숙자들이 저 작품을 잘 사용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왜 저들만이 저 작품을 독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동시에 가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고쳐먹었다. 서울역 안의 벤치들이 노숙자들이 드러눕지 못하도록 자리 사이사이에 팔걸이를 만들어 놓은 비인간적인 행태를 목격한 이후의 일이다. 그 작품이라도 있어서 역 앞에 드러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역사 안에는 물레방아 조형물도 있다. 물레방아와 케이티엑스를 결합한 그 조악한 조형물은 영상광고 전광판을 설치하기 위한 부속물로 기능한다. 물레방아라는 조형물이라면 차라리 군자교 옆의 동대문구 홍보 조형물이 더 낳다. 공공장소에 놓이는 예술작품의 공공성은 공중도덕의 공공성과는 다르다. 서울역사 앞 공공미술작품은 공중도덕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팔걸이가 있는 벤치와 달리 사회적 소수자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그래서 예술은 도덕과 다르다. 공공성을 옹호한다고 하는 공공장소의 미술작품이 공중도덕을 저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조물로 사용된다는 이 아이러니야말로 예술작품의 열린 가능성을 열어두는 또 다른 묘미가 아니겠는가.

김준기(미술비평)

도판
1.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광화문 앞 해태상
2. 김세중이 만든 세종로 네거리의 이순신장군동상
3. 독일 베를린에 있는 케테콜비츠의 모자상
4. 서울역사 앞의 박기원 작 공공조형물 <자-넓이>
5. 서울역사 내부에 있는 물레방아 조형물
2006/08/15 23:20 2006/08/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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