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예술 리뷰 :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

critic & column | 2010/01/28 06:12


용산예술 리뷰 :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

2009년 1월 20일.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극의 현장을 접했다. 그 후로 1년이 다 되어서야 민간인 희생자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미결과제를 남겨둔 것이었지만 협상 타결에 따라 고인들을 땅에 묻기까지 정치와 사회, 종교, 언론 등 각계의 주체들이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론의 장을 이어갔다. 이 글은 그 용산참사 공론장에 예술의 이름으로 함께 한 아름다운 실천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 주간지와 용산예술 자료집에 실었던 필자의 글을 간추려 몇몇 작품과 논점을 중심으로 고쳐 적은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용산현장을 찾아 현실을 체험하고 예술작품을 쏟아냈다. 미술가들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렸다. 사적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기획전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 대구, 울상, 광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한 도시의 특수한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로 확장하기 위한 공론장으로 작동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뒷 건물에 만든 레아미술관은 현장을 지키는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했다. 그것은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에 대한 상황 인식을 매개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용산참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현실의 정황을 헤아리게 하는 애도의 예술이었으며,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나약한 개인들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감성의 정치학이었다. 용산예술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용산참사 직후에 나온 이윤엽의 이 판화작품은 걸개 그림 뿐만 아니라 수백장의 판화와 티셔츠 프린트로도 널리 쓰였다. 하늘을 떠받히며 절규하는 손, 웅크리고 앉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이윤엽은 용산 현장의 절규를 담았다.

2010년 10월 9일의 장례식 날 쓰인 열정은 전진경의 붓그림 원화를 확대 프린트한 것이다. 수묵채색화의 독특한 기법을 잘 살린 이 그림은 간결하게 흐르는 먹선과 얼굴에만 색을 입혀 영정그림의 일반적인 도식과는 다른 감성을 보여주었다. 열사부활도는 이윤엽의 판화를 원작으로 한 대형 인쇄물로서 분노와 저항의 이미지를 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 팔짱을 낀 다섯 열사들이 환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애도의 감성학과 분노의 정치학을 동반한 거리의 영정과 만장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전유이다.

참사현장을 은유적인 작품으로 처리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발표한 작품도 있다. 상호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치의 문제를 명료한 시각언어로 보여준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이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옥상 망루의 화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불에 타 일그러진 망루를 찍었고, 그 일그러진 철판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상하좌우를 극단적인 흑백대비로 단순화했다. 그 결과 프레임 안쪽의 화면은 추상적인 선의 흐름이 지배하는 흑과 백 두 개의 면으로 나뉘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의 모습을 담은 역작이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현장을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현실인식을 현장실천으로 옮긴 행동주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정치와 사회의 비정한 맥락을 벗어나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영혼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우리시대 지식인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그것은 예술생산을 상품생산과 등치시키는 시장주의 편향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율결정에 따른 지식생산을 염원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들 용산의 예술가들은 공론장에 참여한 자율적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각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협업과 연대로서의 예술행동이다. 협업은 개인과 장르와 사회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물론 개별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예술가 주체의 사적인 체험을 표현한 시각표현물로서 공공성을 향한 절차와 방법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환류하는 방법자체가 상당히 차별화한 공공적인 것이었으므로 용산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의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예술실천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참여주체들은 상호이질적인 언어와 방법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맥락화 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 역시 예술가 자신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확인시켰다. 예술은 상징체계를 이용해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성찰적 태도로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나아가 그들은 참사의 근저에 깔린 우리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태도를 가졌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은 용산참사 현장을 둘러싼 지난 1년간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시각언어로서 참여하고 개입했다. 그들이 다룬 것은 죽음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생명의 희망이었다.

예술은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가? 용산참사 현장을 다룬 예술 작품들은 사회적 이슈의 현장과 만나 우리 시대의 고통을 기록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예술행동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우리 삶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며, 사회적 의제에 후행하는 작업실의 사유를 넘어 생동하는 현장에 함께 뛰어드는 예술적 소통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한 용산의 예술은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현장의 예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화폐를 발견하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동시대예술에 대해 낮은 깊은 목소리로 예술체제의 변동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0년 2월호 기고문

* 한겨레21과 용산참사현장미술자료집에 실은 글을 따다가 다시 씀.

2010/01/28 06:12 2010/01/2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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