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세상, 공공미술

critic & column | 2006/10/03 18:26


예술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세상, 공공미술

바야흐로 공공미술이 시대이다. 미술이 미술관 전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그 바깥의 공공장소에서도 시각적인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미술을 만나는 일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역사 시대 이래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벽화와 조각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건축물미술장식품법을 만들어 신축건물에 의무적으로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했다. 그 이후 무수히 많은 공공미술작품들이 도시 곳곳에 배치되었다. 서울시내에만 해도 3천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성과보다는 한계가 더 많았다. 장식품이라는 개념이 문제였다. 대다수의 작품들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장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적인 대상 그 자체로서도 그렇게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고, 미술계 안팎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제기되어 온 공공미술의 새로운 역할모델 논의가 결실을 맺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술가들의 창작 실천과 비평적 담론에 있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법안 상정이나 민간위원회 구성과 같은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특히 문화광관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아트인시티 2006>은 전국의 11개 지역에서 새로운 차원의 공공미술 사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는 이 사업은 최근에 부천시의 원종종합사회복지관에 이어서 군산시의 해망동에서 그 동안 준비해온 새로운 실험의 결실을 맺었다. 이들은 복지관의 놀이터를 예술적으로 꾸미고 인근의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는가 하면, 근대 역사가 남아있는 오래된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예술적 성찰의 장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밖에도 광주 진흥동, 부산의 수정동과 물만골, 광명의 철산동 같은 도심 속의 마을을 찾아 예술가와 주민이 마을 속의 예술을 만든다. 경기도 마석과 경남 합천의 초등학교를 찾아 가는가 하면, 대구성서공단이나 대전홈리스센터를 찾아 노동자나 노숙자와 공동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대학로 뒷산인 낙산 일대에서 주민벽화를 비롯한 대대적인 공공미술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주도의 법안과 시범사례 생산의 차원을 넘어서 지자체나 문화재단으로까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지역공동체와 결합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는 경기문화재단의 <열개의 이웃>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윤엽의 대추리역사관과 같은 작업은 공공성을 체제내적인 화해의 차원을 넘어서 갈등과 충돌의 양상으로 해석함으로써 공공미술을 예술적 성찰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도 대규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발표 했다. 이외에도 여러 지자체들이 문화콘텐츠 생산의 차원에서 공공미술 사업을 적극 검토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은 미술의 소통 체계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기존의 체계가 예술가와 시민을 창작자와 감상자로 완벽하게 분리해놓은 것이었다면, 새로운 공공미술 논의와 실험은 ‘창작과 향유’의 관점을 ‘매개와 사용’의 관점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미술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세상, 이제 우리에게도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준기 (공공미술추진위원회 팀장)

* 세계일보 2006.10.9 기고문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610091346000051
2006/10/03 18:26 2006/10/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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