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노동과 화폐의 교환

critic & column | 2009/02/28 15:30


예술노동과 화폐의 교환

미술시장의 권력화는 예술가가 아닌 기술자를 양산한다.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예술가의 일이 아니라 예술상품을 양산하는 기술자의 일이다. 대기업이 미술작품을 블랙머니 유통수단으로 삼고, 로비 용도로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실 아래서 9시뉴스의 사건사고 소식으로만 미술소식을 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민도는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이 멀고 험난하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예술로서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화사회의 기초가 없이 예술상품을 사고파는 일에 골몰해서는 건강한 예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을 사회화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화폐와의 교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자본주의 질서 아래서 예술노동을 화폐와 교환하는 방식을 짚어보면서 그 너머의 다른 질서를 생각해보는 이 짧은 글의 목표이다.

예술작품을 화폐와 바꾸는 교환방식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질서이다. 미술의 장은 물건과 화폐의 교환방식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예술작품이라는 물건을 전시장에 내다 걸어 놓고 온갖 미학적 수사를 동원해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다. 사적인 취미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개인이 돈을 지불하고 그 작품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구조가 오늘날 일반화된 미술시장의 흐름이다. 문화권력이 시장을 지배하는 방식이나 그 역으로 시장권력이 문화권력을 주도하는 현실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물건과 돈을 맞바꾸는 시장의 교환방식은 가치의 역전을 초래한다. 예술작품 본연의 사용가치는 투자를 빙자한 투기를 일삼는 교환가치에 의해 뒤집힌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전도된 사회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예술의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근대적 주체로서의 예술가는 교환가치의 주문에 응대하는 또 다른 기술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술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거품처럼 일었던 투기형태의 아트펀드들도 미술시장이 얼마나 천박한 발상에 의해 좌지우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술투자라는 말로 위장하면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행위는 건강한 시장의 흐름을 저해하는 독소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일반적인 물건들의 사용가치와는 다른 정보재로서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러한 투기심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제는 시장의 흐름이 비평적 안목과 역행하면서 독자적인 길로 일방독주할 때 발생한다. 물론 비평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시장과 비평의 상호 긴장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지난 몇 년간의 시장 활황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흐름으로 콜렉터들과 화랑의 기호와 취미를 충족시키며 궁극적으로는 미술투기를 부채질하는 쪽으로 흘렀다.
대형화랑이 경매회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자연발생적인 시장의 논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소수의 프론티어가 해외의 사례를 국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자본주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의 변형이 발생한 경우다. 몇몇 경매회사들 가운데 대형화랑이 참여한 곳은 그렇지 않은 다른 곳들과는 달리 화랑경영의 노하우를 경매회사 경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화랑과 경매사의 혼연일체가 불러오는 파행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특정 작가를 정해두고 경매를 통해서 가격을 올리는 이른바 작전세력의 작업이 1차 시장인 화랑거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매회사의 위작 논란도 신뢰도 하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변종과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술시장은 성역없이 넓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가치가 20대 작가와 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랑에게 발굴과 지원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화랑은 이윤창출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지 세금을 가지고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화랑들이 젊은 작가들을 대하는 방식은 중견이나 중진 작가들을 대할 때와 같이 매우 위험한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부 스타작가들의 그들만의 리그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그들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예술리그에서 ‘더욱 더 공고해지는 그들만의 권력’ 다시 확인하는 것 이외에 삶을 통찰하는 예술의 대사회적 책무 같은 것은 별로 언급할만한 것이 못된다.

예술노동의 가치를 교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문제삼아 볼 필요가 있다. 교환이전에 확인할 것은 예술작품이 사용가치를 가진 물건이라는 점이다. 예술작품을 접하는 유저는 그 작품의 의미를 사용한다.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물건을 매개로 화폐를 교환할 수 있다는 약속이 예술을 성립시키는 근간이다. 칸트이래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근대의 수많은 자들이 근대 미학을 만들면서 예술을 기술과 분리시키며 독자적인 영역으로 성힙하도록 도왔다. 그 가운데서 탄생한 근대적인 개념의 예술과 예술가 주체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교통과 통신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정보사회에서 여전히 회화 작품이나 조각 작품과 같은 물건으로서의 예술이 화폐를 매개로 생산과 소비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사사성에 입각한 예술상품의 사적 소유 구조만으로 예술노동을 사회화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사사성에 입각한 개인의 미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예술상품의 생산뿐이라면 방식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전근대적인 주문생산과 차별성이 없어진다. 만약 미술시장과 자본이 천박한 결탁으로 예술계를 황폐화하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그 너머의 대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예술의 쓸모에 대해 그토록 많은 이론과 실천을 경험해온 우리가 공공재로서의 예술이 감당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보다 앞서서 문화사회를 구축한 유럽의 예술생태계를 참조할 수 있다. 그들도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권력을 형성해온 역사가 뿌리깊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예술생태의 탄탄한 뿌리가 있다. 예술가로서 삶을 꾸릴 풍부한 인프라가 있다. 그 가운데 스타작가도 나오고 거리의 예술가도 나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 방치와는 다른 반대급부의 예를 살펴볼 수도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주문생산을 고집해왔다. 국가 권력이 통제하고 분배하는 예술생산과 소비가 이뤄졌다. 그 결과도 마찬가지로 상상력과 저항으로서의 메시지가 거세된 예술계의 황폐화였다. 자본주의 사회가 예술가들을 무직자 취급하며 방치했던 것과 달리 사회주의 사회는 예술가들을 집단 창작소나 여러 기관 단체에 배속시켜 그 공동체가 요청하는 예술생산을 하도록 구조화 했다. 요즘 우리식으로 말하면 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공공미술 사업에 복무하는 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방치와 사회주의 사회의 배속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자율성이냐 공공성이나 하는 문제로 소급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단의 차이를 변증법적인 조화로 재구조화하는 지혜이다.

예술의 자율성은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공공성과 공존한다. 예술이 예술로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로서의 예술을 정신적 가치를 지닌 기술 이상의 것으로 인식한 데서 비롯되었다. 근대기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주문생산으로부터 벗어나서 독자적인 발언을 하고자 했다.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을 벗겨버린 마네가 그랬고, 공화주의를 예찬한 진보주의자 베토벤이 그랬다. 궁중화가로서의 영화를 포기하고 들판으로 나섰던 오원 장승업도 근대적인 개념의 예술가 주체로 살기위해 몸부림쳤다. 나아가 예술생산을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소통으로 이어낼 생각을 해야 한다. 예술이 생활영역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장으로 성립했던 자율성의 관점에서 예술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 해야 한다. 그것이 예술과 사회를 단절의 상황이 아닌 통섭의 관점에서 유의미한 관계로 만드는 길이 아니겠는가.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경희대 대학원 신문 기고문.

2009/02/28 15:30 2009/02/28 15:30

trackback :: http://gimjungi.net/blog/trackback/692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