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론장이 무너지고 있다
critic & column | 2010/08/26 20:36
예술공론장이 무너지고 있다
공공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소유자와 예술가가 소유권과 저작인격권을 놓고 맞서고 있다. DMZ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예술가 이반이 도라산역에 설치한 공공미술 작품이 지난 5월 작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철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폭 2.5미터에 총연장 길이가 97미터에 달하는 14폭의 대형 벽화가 일순간 사라졌다. 70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실존을 투영한 필생의 역작이 작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공공영역, 즉 예술공론장을 파괴한 행위이다.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공공미술 작품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 벌어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가 남북출입관리소 소장 명의의 답변에 따르자면, 어둡다거나 외설적이라거나 민중화 같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밝은 화면, 건전한 서사, 그리고 주류권력의 시각에 위배된다는 판단에 따라 공공예술 작품을 철거한 이 사건은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서 예술공론장이 무너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작인격권을 구성하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번 일은 명백하게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이것은 단지 소유권과 저작권의 상호 충돌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단과 생태를 이야기하는 공공영역 자체에 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반의 작품은 사적인 체험이나 표현의 영역을 넘어 우리시대의 사유와 감성을 집약한 공론의 장이다. 이번 일은 “공공의 재원으로, 공공의 장소에, 공공의 의제를 다룬” 공공예술 작품을 파괴한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럴 필요가 있다면, 공공미술 작품을 철거할 때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작품과 장소의 관계에 관해 비평적인 논의를 거쳐야 하며, 시민사회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열린 토론의 장도 있어야 한다. 미국의 리차드 세라가 만든 광장을 가로지른 철판 작업이 광장에서의 보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철거된 사례가 있는데, 그 일은 매우 정교한 토론과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친 후에야 이루어졌다.
문화는 역사적 축적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분단상황에 대한 인식과 통일에 관해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문제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단과 통일을 다룬 예술 작품에 대해서 불과 수년의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작품의 일방 철수가 벌어진 것을 보면, 한국은 아직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사회임이 분명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일각의 판단에 의해 합리적인 논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예술작품을 철거하는 악습을 수없이 경험해 왔다. 전시장에 내걸었던 작품이 철거당하거나 압수당하곤 했던 80,90년대의 일은 과거지사라 하더라도 2000년대 이후에도 이런 일이 지속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3년에는 서울 을지로3가 지하철역에서 이동기와 강영민의 벽화가 지워졌다. 2007년에는 창원시에서 최정화의 작품이 철거당한 적도 있다. 공공장소와 예술적 표현의 충돌이 이처럼 일방적인 철거로 결말을 맺는 이 사회에 예술의 표현의 자유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반은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그 한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가이다. 예술가 이반은 20세기 한반도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동시대 한반도 민중의 고통이 민족모순이라는 본질과 유관한 것이라면, 그 본질의 현현을 이반이라는 한 예술가의 실존으로부터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본질의 현현으로서의 존재'라는 사유의 틀을 넘어 본질을 재구조화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행위자 주체로서의 실존'을 위해 투쟁해왔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반, 특히 분단의 상황을 예술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자로서의 예술가 이반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의 본질로부터 이탈하려는 실존의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분단작가로 불리는 예술가 이반은 개인사적인 삶의 고통을 딛고 분단의 어두움을 넘어 통일과 생태의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반은 실존적이며, 이반의 예술은 이 질곡의 20세기 한반도를 살아온 실존의 몸부림이다.
그는 이번 사건에 관한 장문의 글에서 밀란 쿤데라의 시, <시인이 된다는 것>의 일부를 인용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 행동의 끝까지 / 희망의 끝까지 / 열정의 끝까지 / 절망의 끝까지 /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 그전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 왜냐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는 자신의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화가가 된다는 것 역시 더욱 더 그러한 법이지”.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그림을 단 한 점도 못 그리더라도 이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끝까지 가보는 것’이 말하는 바, 필생의 역작이 파괴된 데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술작품의 파괴는 한 작가의 저작물이 훼손당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공론장에 대한 심난한 위협이다. 예술은 작품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맥락을 형성할 때 온전한 예술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