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론장으로서의 경희대 벽화
critic & column | 2009/04/11 12:59

예술공론장으로서의 경희대 벽화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벽에 그려진 그림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작품 제목은 <청년>이다. 일명 ‘팔뚝그림’이다. 경희대 내부에서는 ‘문리대 벽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학교 바깥에서는 ‘경희대 벽화’라고 부른다. 이 작품이 중요한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그림은 1980년대라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이며 문화유산이다. 그것은 경희대의 것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 전체의 것이기도 하다. 벽화는 벽과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그 벽이 사라지면 벽화도 사라진다. 그러나 때로는 벽화가 벽을 살리기도 한다. 유럽의 미술작품 순례 코스에 들어가는 그림 가운데 다수가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멕시코의 벽화는 세계인의 발걸음을 모으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벽화는 지속적으로 동시대성을 획득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유산이다. 경희대 벽화는 한국의 80년대 예술과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당시의 리얼리즘 미술 양식 가운데 걸개그림이라는 게 있다. 이것은 한국 전통의 괘불탱화에서 유래했다. 큰 법회가 있을 때 야외에 거대한 그림을 펼쳐 앞무대의 뒷배경으로 썼던 전통을 이어서 당시의 여러 대중집회의 논점을 그림으로 표현한 대형걸개를 그려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그 걸개그림들은 대부분 보존되지 않고 사라졌다. 경희대 벽화는 걸개그림의 양식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경희대 벽화는 상징투쟁의 장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벽화를 그릴 당시와 그린 후 20년에 걸치는 세월동안 이 작품을 둘러싸고 다양한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 생각은 대중적인 논의와 모금운동으로 이어졌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페인트 테러와 같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벽화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표상한다. 갈등과 합의과정을 거쳐온 이 벽화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학교들과 차별화하는 문화적 종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지성의 전당으로서의 명예를 획득한다.
벽화는 예술적인 공론영역을 형성한다. 예술작품으로 공공연한 논의의 장을 여는 예술공론장으로서의 벽화는 20세기 예술의 엘리티즘을 전복한 소중한 역사이다.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는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폐기한 채 개인의 사적인 취향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큰 틀에서 보자면 미술 내적인 본질의 문제에 집중한 것이다. 수천년 동안의 인류 역사 가운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진행된 모더니즘 미술의 환원주의적 시각은 매우 짧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맞아 예술의 패러다임은 현실 또는 실재와 접점을 형성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했다.
20년의 시간 거리를 가지고 있는 벽화라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문화유산이라는 관점에서 그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20년 전에 한국사회에서 통일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좌경이요 용공이었다면 지금은 정부부처에 통일부를 두고 통일을 중요한 국가의 정책으로 삼고 있는 것만 보아도 시각과 관점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의 가치는 선입견과 편견을 깬 저항정신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지난 시대의 가치를 동시대의 관점으로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물론 시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령 남성중심주의에 관한 비판으로 이 작품을 읽어볼 수도 있다. 청년의 아이콘으로 남성을 내세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 그림의 별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남성성의 상징인 팔뚝 근육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통일과 좋은 세상을 향한 염원을 가진 젊은이를 남성으로 표상한 당시의 남성중심주의 사고를 되짚어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해석의 지평을 넓혀볼 수도 있다.
그림의 내용이 과격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서사는 매우 간명하다. 노동자, 농민, 학생이 힘을 합쳐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시대도 이제 하나의 역사이다. 6월항쟁을 기념하면서 젊은이의 저항정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그림은 팍팍한 현실 앞에서 고뇌하는 21세기 청년들에게 저항정신의 회복을 권면하고 있다. 88만원 세대에게 있어 경희대 벽화가 역사적 유산 이상의 것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경희대 신문 <대학주보>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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