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자율결정과 공공성, 그리고 안창마을 프로젝트

critic & column | 2010/01/19 01:13


예술가의 자율결정과 공공성, 그리고 안창마을 프로젝트

안창마을 프로젝트가 세 번째 작업을 마쳤다. 2007년의 관주도 공공미술 <아트인시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첫 작업을 시작한 이후, 공식적인 공공기금 없이 두 번째, 세 번째까지 왔다. 그것은 서상호라는 한 예술가의 공공미술에 관한 열정과 헌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지난 3년간 만들어온 관계들이다. 그것은 공공미술 기획자와 예술가, 예술가와 예술가 지망생, 예술가와 주민 등 많은 주체들 사이에 맺어진 만남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씨앗을 만들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거이다. 이제 안창마을에 예술가들이 집단적으로 미술프로젝트를 벌이는 일은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이 일들을 주도했던 주체들이 일단의 결말을 지었기 때문이다. 많은 성과와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주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가치부여가 가능한 몇 가지 지점들을 토대로 우리의 삶과 예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2009년의 신작들은 잔잔하면서도 알차다. 허수빈의 LED조명 작품 '창문가로등'은 마을의 밤을 밝히는 창문이다. 샛길이 뻗어나가는 삼거리에 위치한 이 작품은 하늘에 떠있는 창문이다. 하늘에 떠있는, 하늘을 내다보는 창에서 따뜻한 빛이 새어나온다. 이러한 따스함이 이 마을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허수빈이라는 한 작가의 상징이 설치된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 마을에 있어 이 작가가 구축해온 상징체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 마을의 정서와 어떻게 부합하느냐 하는 데 있다. 시시때때로 색깔을 바꾸며 마을을 비추는 하늘 창의 서정이 마을의 밤하늘을 감싸는 훈훈한 장면은 잔잔하면서도 인상적인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다. 예술작품은 그 처소가 감상의 태도나 해석의 가능성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창마을에서 만나는 허수빈은 전시장에서 만나는 허수빈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전명희, 김은주, 임혜림이 참여한 골목 벽화는 시시하면서도 산뜻하다. 금이 간 담장 라인을 담쟁이 줄기로 끌어들여 주변에 가지와 잎을 그려 넣은 이 벽화는 소소하게 지나치는 풍경을 예술창작의 모티프로 끌어들인 즐거운 작품이다. 그 주변에 그려 넣은 스파이더맨 캐릭터 인형들도 인상적인데, 그것이 주민들의 정서나 삶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가 골목 한구석을 차지하는 것도 동일하게 회색 시멘트가 이어지는 벽면에 소소한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가 그곳 벽면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쉽지 않다는 점은 공공미술이 감당해야할 딜레마로 보인다. 예술의 이름으로 공공미술이 감당할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난제로 남아있다.

회색의 슬레이트 패널 지붕 아래 시멘트 미장으로 마감한 벽, 그리고 그 위에 베이지색 정도의 컬러링. 대체로 안창마을의 벽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 벽면들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 특유의 서사를 구축하는 것에 앞서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벽화 이미지가 그 벽면과 주변의 분위기와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데 있다. 권진무, 손수연, 정하랑이 그린 벽화는 소파와 옷장, 테이블과 창문 이미지로 구성돼 있다. 검은 선으로 윤곽을 두르고 단색으로 처리한 깔끔한 일러스트 풍의 그림이다. 특히 벽면으로부터 돌출해 있는 오브제에 흰색과 검은 선을 주어서 옷장 이미지를 만든 것에서 재치와 유머를 읽어낼 수 있다. 거리에 노출된 물건들에 선과 색의 변화를 주어 그 물건 자체의 이미지를 바꿀 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완만하게 꺾이는 건물 벽을 타고 세 개의 동그라미를 만든 오브제 설치작업도 있다. 오픈스페이스 배의 에듀케이터 이욱상씨가 마을 아이들과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써 함께한 이 작품은 장난감과 가재도구 등 일상의 사물들을 이용한 벽면 설치작업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물건들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벽면에 부착해서 원을 만든 작업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조형성이나 서사구조가 아니고 그 물건들에 담긴 사연이다. 이 작품을 가장 자주, 많이 사용(감상)하는 주체들은 당연히 마을 주민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벽면에 설치한 동그라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물건이 마을의 공공장소로 이동해 예술작품의 일부로 바뀌어 지속가능한 전시작품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그들로 하여금 개인의 영역과 공공의 영역에 대한 단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한 해의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3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공공미술을 커뮤니티 아트의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할 당위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커뮤니티 아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술가들 자신이 아니라 커뮤니티 그 자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와 동행하는 예술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 소통의 지향은 그러나 예술가의 열정과 헌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안창마을 프로젝트의 여러 참가자들은 뼈저리게 배웠을 것이다. 특히 참여 예술가들은 이 점에 대한 각별한 배움 그 자체를 깊은 성과로 간직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미술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한 생을 살아갈 전문가로서 확고한 소신을 심어주는 계기였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막연한 이상으로는 뛰어넘지 못할 현실의 벽을 실감하는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양자 모두에게 안창마을 프로젝트의 경험은 예술 안쪽에서만이 아닌 안팎의 시각으로 둘러본 소중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을사람들에게 남은 미술의 추억이다. 2007년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일군의 예술가들이 마을 곳곳에 예술 창작 행위를 하고 다닐 때, 낯선 기대를 안고 그것을 지켜보았을 그들이다. 그 몇 년 동안 이 마을은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 이듬해에도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이 여럿 다녀갔고, 여러 작품들이 새로 들어섰다. 올해도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했다.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간의 예술가와 학생들의 노고가 고맙기도 할 것이고 혹은 시덥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뭔가 대단히 크게 변한 것도 없다. 그렇게 그들의,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흘러간다. 무엇인가 거창하게 바뀔 것 같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쉽게 과거를 삭제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의 현실참여는 이래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과 현실 사이에 가로놓은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지난 백년 이상의 역사를 뒤집는 일이니 한 순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투쟁을 거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미래의 일이다. 그 미래를 일구어나가는 과정에서 안창마을 프로젝트라는 더없이 소중한 우리 체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배태한 씨앗으로 남았다. 주문생산으로부터 이탈한 예술가 주체, 자율성을 획득한 이후 각자의 자율 결정에 입각해서 생산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은 20세기의 추억을 지나 주문과 자율 사이의 애매한 경계 선상에 서 있다. 국가단위 공공자금의 수혈을 받지 않고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지속한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어쩌면 (아직은 그 주체가 누군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주문자를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2010년 1월 세째주 [한겨레21] 기고문
2010/01/19 01:13 2010/01/1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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