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예술이 있다 : 용사참사 현장예술 읽기

critic & column | 2010/01/18 11:37


여기 예술이 있다 : 용사참사 현장예술 읽기

1년 전 한겨울에, 우리는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예술가의 절규를 접했다. 예술작품을 통해 망루에서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의 절규를 가슴에 새겼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현실의 정황을 헤아리게 하는 애도의 예술이었으며,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나약한 개인들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감성의 정치학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려준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보다 적극적인 소통의 장으로 인도하는 현장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알리는 귀중한 자산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용산현장을 찾아 현실을 체험하고 예술작품을 쏟아냈다. 전시장에서 희생자들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를 열고, 전국의 각 도시로 돌며 순회전을 열었다. 현장에 미술문화공간을 차려 지속적으로 전시를 열었으며 집회장과 거리에 함께 나섰다. 참사 1주기를 얼마 앞두고 고인들을 묻어드리는 장례식 행렬에 이들의 예술작품이 함께 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예술체제의 변동을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도출에 동참한 행동주의 예술의 아름다운 과정을 거쳤으며, 예술공론장을 형성한 아름다운 예술을 결과했다. 이 글은 현장에 함께 한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용산참사 현장예술이 연대의 마음과 협업의 실천으로부터 나온 행동주의 예술이라는 점. 나아가 그것이 상징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예술의 공공성과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었는지를 언급해 볼 것이다. 사회체제의 변동에 따른 예술체제의 전환이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조금씩 구체화 하고 있다. 이 글은 작품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비평적 접근 보다는 용산참사 현장예술의 전반적인 활동이 지금의 미술체제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글은 <한겨레21> 기고문을 늘려서 고쳐 쓴 것이며, 작품 분석론에 중점을 둘 미술전문지 기고문 내용과 일부 중복될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1.

미술가들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렸다. 사적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기획전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 대구, 울상, 광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한 도시의 특수한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로 확장하기 위한 공론장으로 작동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한 도시의 문제를 전국적 의제로 채택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일반 모순으로 인식한 상호 연대의 표현이기도 했다. <망루전>은 순회전의 특성상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움직일 때마다 그 도시의 예술가들이 결합하면서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결합했고, 용상참사를 지역적 특수성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보편성의 문제로 인식하게 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뒷 건물에 만든 레아미술관은 현장을 지키는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했다. 예술가들은 유족과의 합의를 통해서 고 이상림 열사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를 미술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에 대한 상황 인식을 매개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용산참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평면과 입체,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했으며, 회의와 토론을 이어갔다. 레아미술관에서만 지난 1년동안 22회의 전시가 열렸다. 개인과 단체, 회화와 입체, 설치, 영상, 만화 등을 망라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그것은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장의 가치를 담은 상징을 만들고 현장을 망각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예술행동이었다.

현장을 지킨 수많은 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들 가운데 하나가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용산참사 직후에 나온 이윤엽의 이 작품은 걸개 그림 뿐만 아니라 수백장의 판화와 티셔츠 프린트로도 널리 쓰였다. 하늘을 떠받히며 절규하는 손, 웅크리고 앉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이윤엽은 용산 현장의 절규를 담았다. 이 작품들은 용산 현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걸개그림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판화, 티셔츠, 참여미술, 온라인 배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퍼졌다. 특히 그가 만든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문구는 굵직한 선의 맛이 제대로 담긴 시각언어와 만나 증폭하면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 하는 데 있어 예술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참사현장을 은유적인 시각언어로 처리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발표한 작품도 있다. 상호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치의 문제를 명료한 시각언어로 보여준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이다. 그는 2009년 1월 20일 새벽, 그 현장에 있었다. 그는 보도사진 기자의 전력을 가진 예술가이다. 참사 현장에서 옥상 망루의 화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레아미술관 옥상에서 불에 타 일그러진 망루를 찍었다. 그것은 일종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는 이 기록물로서의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일그러진 철판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상하좌우를 극단적인 흑백대비로 단순화했다. 그 결과 프레임 안쪽의 화면은 추상적인 선의 흐름이 지배하는 흑과 백 두 개의 면으로 나뉘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의 모습을 담은 역작이다.

2010년 10월 9일. 1년 가까이 뒤로 미룬 다섯 분의 장례식날을 치르기 위해 미술가들은 희생자들의 영정과 열사부활도, 만장 등을 제작했다. 대형 프린트로 각각의 차량 위에 설치된 열정은 전진경의 붓그림 원화를 확대 프린트한 것이다. 수묵채색화의 독특한 기법을 잘 살린 이 그림은 간결하게 흐르는 먹선과 얼굴에만 색을 입혀 영정그림의 일반적인 도식과는 다른 감성을 보여주었다. 열사부활도는 이윤엽의 판화를 원작으로 한 대형 인쇄물로서 분노와 저항의 이미지를 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 팔짱을 낀 다섯 열사들이 환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만장에는 장례식의 숙연함을 담은 문구들과 더불어 먹선으로 그린 인체와 글이 담긴 상형 만장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역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노제를 위해 용산까지 이동하는 동안 긴 행렬과 함께한 이들 시각 표현물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리에서 실질적인 쓰임새를 발휘하는 시각물은 일견 미술작품의 범주에서 비껴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쓰인 작품들은 디지털 프린트를 이용한 복제물이라는 점에서 예전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1990년 전후의 열사장례식 작품들이 짧은 기간에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나름의 어법을 전형적인 어법을 창출했던 것에 비해 이번 장례식의 경우, 원본 그림을 제작하고 그것을 확대인쇄로 처리함으로써 한결 밀도있는 시각적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2.

용산의 예술가들은 현장을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현실인식을 실천한 행동주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정치와 사회의 비정한 맥락을 벗어나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영혼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우리시대 지식인의 사명을 다한 실천가이다. 그것은 예술생산을 상품생산과 등치시키는 시장주의 편향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율결정에 따른 지식생산을 염원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들 용산의 예술가들은 공론장에 참여한 자율적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각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오늘날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공공자금을 가지고 공적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이 얼마나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되돌아 보는 차원에서도 용산의 예술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협업과 연대로서의 예술행동이다. 특히 협업은 용산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덕목이다. 용산참사 현장예술 활동은 대추리마을 ‘들사람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용산에서 다양한 작품을 제작, 발표하면서 지속적으로 현장에 참여한 이윤엽은 대추리마을에 살면서 작업을 했던 현장예술가이다. 동네 집수리를 시작으로 버려진 물건들 모아 마을박물관 만들기에까지 이른 것이 3년 전의 일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대추리 현장과 용산 현장을 동일 선상의 문제로 인식했다. 시인 송경동과 음악가 조약골, 미술가 이윤엽, 노순택, 전진경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 예술가들은 예술생산을 독자적인 생산 영역으로만 파악하지 않는다. 이들은 예술과 개인과 개인, 장르와 장르, 예술과 사회의 상호 협업이 자신의 예술생산을 얼마나 더 풍부하게 만드는지를 잘 알고 있다.

협업은 개인과 장르와 사회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물론 개별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예술가 주체의 사적인 체험을 표현한 시각표현물로서 공공성을 향한 절차와 방법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환류하는 방법자체가 상당히 차별화한 공공적인 것이었으므로 용산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의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예술실천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참여주체들은 상호이질적인 언어와 방법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맥락화 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 역시 예술가 자신들이었다는 점에 좀 더 신중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발견할 있는 미덕이 자율적 주체들의 창의적인 연대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과 협업하고 연대해온 용산 예술은 장르 분화의 한계를 넘어 탈장르와 혼합장르의 일로에 서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시인 송경동은 이라크전쟁, 한미FTA. 이랜드, 대추리, 기륭전자, 콜트-콜텍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온몸으로 그 현실과 마주해온 액티비스트이다. 그는 시를 써서 집회장에서 시낭송을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장르의 예술과 들과 연대해서 상징투쟁을 벌이는 데 있어 온몸을 바치는 헌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약골은 대추리 마을에서 지은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로 유명한 음악가이다. 그는 참사 후에 남일당 뒤 레아호프 자리를 사용한 레아미술관 1층을 지키며 현장을 지켰다.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은 물론 현장의 주민들과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대화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줄곧 레아미술관을 지켜온 전진경의 경우도 대추리 이래 용산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지키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장의 이슈를 중심으로 집결하여 참여하고 개입하는 예술가들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예술의 가치는 연대의 마음이다. 이른바 자족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예술가에게 있어 연대의 마음은 자칫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지기 십상인 그들에게 새로운 체험과 실천을 이끄는 원천이다. 특히 특정 의제를 다루는 현장예술의 경우 예술가의 활동 준거지를 설정하는 문제는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회적 이슈의 현장을 찾아 삶의 처소 자체를 옮기는 일은 예술가에서 부여된 특권인 자율성을 그야말로 제대로 행사하는 일이다. 예술가를 유목인에 비유한다면, 이렇듯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이탈한 삶을 위해 ‘자율’을 획득했을 때의 일이 아니겠는가.


3.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재발견하도록 해주었다. 예술은 가치의 경쟁이다.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전 영역은 서로 다른 가치를 놓고 선택하고 분별한다. 가치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 전 영역에 걸쳐서 선택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가치의 경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예술은 상징체계를 이용해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과 동행하고자하는 생각과 실천이 용산에 함께한 예술가들이 선택한 가치였다. 용산의 예술가들이 만든 상징체계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산자들이 죽음 너머 새로운 삶의 씨앗을 발견하도록 하는 생명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상징투쟁으로서의 용산예술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힘을 배경으로 하는 언론의 공론 유포와 대립했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소수자들의 생존권을 보호하지 않는 권력의 부조리함을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이다. 예술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주체들의 소통 영역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이란 사적인 영역과 공공의 영역 양자를 포괄한다. 예술가들의 세계는 사사성과 공공성 양자 모두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용산의 예술은 사사성에 입각한 예술가의 내밀한 언어에서 출발하여 공공성을 향한 사회적 발언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도 깊다. 따라서 용산의 예술은 공공성과 자율성의 경계선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점차 제도화하고 있는 공공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공공미술이며, 누구를 위한 공공미술인가? 물론 예술은 무엇이나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 그자체로서의 자기 완결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의 긍정적인 가치가 있었기에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주문 받는 바대로 생산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삶을 걸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공공미술 담론이 횡횡하는 시대에 역설적인 얘기지만, 요즘 시대 예술가들에게 절실한 것은 자율성이 아니겠는가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용산참사 현장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가의 자율성을  설려는 예술가들이 공공영역에 자신들을 스스로 파견했다. 그들은 스스로 공공영역의 주문을 생성하고 예술가 주체들이다. 자율적 예술생산자 주체들의 공공적인 주문 수주 행위는 공공성과 자율성을 둘러싼 불필요한 개념대립을 일소하는 실천적인 사례이다.

용산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생산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서 사용했다. 그들은 용산참사라는 충격적인 재앙 소식을 접하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섰다. 거리에서의 사진은 물론 판화와 걸개, 퍼포먼스 등의 방식으로 이 사건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는 데 앞장섰다. 도시의 테러리스트로 지목받아 죽음으로 내몰린 희생자들의 명예를 지키고 그들의 희생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어떻게 풀어야하는지에 관한 공론을 형성하는 데 시각예술언어로 함께했다. 사회적 약자로서 생존을 위해 망루로 올랐다가 공권력에 의해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의 문제가 용산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시대 모두의 아픔이라는 사실을 절규하는 언어로 표현했다.

예술가들의 사적인 체험은 각자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다. 그것은 감상의 대상자들로 하여금 사건과 상황의 인식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한다. 용산 예술도 이렇듯 일반적인 예술의 생산과 수용 메커니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과정과 방법들이 용산 예술을 비상한 예술행동으로 성립시킨다. 그들은 용산참사 현장의 리포터 역할을 자임했다. 거리로 나서는 것은 물론 여느 도시로 공론의 장을 확산했다. 나아가 희생자들의 가족과 용산 재개발 지구의 주민 및 입주자들, 용산 현장의 활동가 및 단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활동과 동행했다. 이러한 과정은 용산 예술을 새로운 합의 도출을 위한 행동주의 예술로 확장시켰다. 여기에는 당연히 예술가의 일방적인 생산 및 전달 체제가 아닌 상호작용이라는 과정이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했다. 현장의 관계자들과의 유기적인 대화와 협력이 없이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장미술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생산과 매개, 그리고 소통 또는 수용을 둘러싼 매우 주목할 만한 개념이 하나 더 있다. 이른바 ‘파견미술’이라는 개념이다. 서울민미협 대표로서 지난 1년동안 용산참사 현장예술과 함께 해온 전미영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리고 그것을 전국 6개 도시 순회전으로 잇고, 현장과 전시장을 분주히 오가면서 총 40여회의 프로젝트를 꾸린 용산참사 예술활동을 ‘파견미술’이라고 불렀다.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시장권력과 문화권력에 이끌려 또 다른 주문생산자로 전락한 후기근대의 시대에 파견미술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이야말로 탈근대적인 예술체제를 이끌 새로운 개념이자 실천이다. 용산에 자신들을 스스로 파견해서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절규한 현장의 예술가들이야말로 타락의 부패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예술을 향해 ‘여기 예술이 있다’라고 외치는 진정한 자율성의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용산에 함께 한 예술은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고 개입한 동시대의 예술적 실천으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고 기록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억투쟁은 동시대를 헤쳐 나가는 일일뿐만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일과도 깊게 관련이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지난 1년간 사회적 망각으로부터 용산 이슈를 지켜내는 데 매우 유효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새로운 기억투쟁이 있다. 제2의 용산이 서울 각지, 전국 도처, 아시아 곳곳, 아니 세계 전역에 산재해 있다. 예술적 상징은 지금 여기의 동시대성과 현장성을 바탕으로 그 너머 역사성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동시대에서 미래로, 서울에서 전세계로 시각을 확장해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의 해석의 지평을 넓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무능하고 참담하게 현실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자율결정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주문 체계에 귀속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름 아닌 시장의 주문이다.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이 시장체제로 귀결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귀결일지는 모르겠다. 이제 그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근대성에 입각한 자율적 예술가 주체들이 주문생산을 거부하고 지식인으로 거듭났듯이, 후기자본주의시대의 전환기를 맞은 탈근대적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체제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장 참여를 통해서 체험을 배가하고 예술의 실천적 가능성을 확인해온 한국현대미술의 역사가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으로 살아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글이 다 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덧붙일 말이 있다. 참사 1주년을 맞아서 발간되는 자료집은 용산참사 현장에 함께 한 예술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예술과 사회의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사회에서 예술행동을 통해 사회운동과 결합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기록하고 평가할만한 자료들은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자료집을 만들어 기록을 남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현장의 미학이 불멸의 명품을 향한 미학적 탐미와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철저한 아카이브를 통해서 현장예술의 가치를 되새길 기초 자료들을 챙겨두는 것은 너무나 절실한 일이다. 예술가로서의 삶보다 활동가 또는 운동가로서의 삶에 더 큰 무게를 둠으로써 예술적 성취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선배세대들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현장예술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현장의 예술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꾸준히 현장을 지킨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료집에 이 글을 보탠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용사참사 현장예술 자료집] 기고문.

2010/01/18 11:37 2010/01/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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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1/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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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피디 2010/01/26 09:17

    용산에서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라는 문구를 보았다는 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늘 강녕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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