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갔나, 현대미술과 내러티브 : 천성명 개인전 프리뷰
critic & column | 2007/02/20 17:56

천성명 : 그림자를 삼키다. 2007.2.21-3.11,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모더니즘 미술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았다가 20세기 말에 극적으로 구출된 내러티브. 이제는 시각예술가 그 누구에게나 어떠한 내러티브를 구사하느냐 하는 문제가 소통가능성의 핵심 쟁점이다. 천성명은 이 문제에 있어 한발 앞서 나가는 작가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서 먼저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그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한 남자가 몸이 묶인 채로 숲에서 깨어나서 몸에 상처가 날 정도로 길을 만들며 어디론가 움직여서 작은 연못에 도달해서 연못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자신의 형상이 점점 커져서 그 연못을 삼키려는 순간 물고기를 토해내고, 그 물고기가 연못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 형상은 사라지고 만다.‘그림자를 삼키다’라는 주제에 수렴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뭔가 한 눈에 쏙들어오지 않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시각예술가의 내러티브이다. 천성명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입체조각을 만들고, 설치작업을 하고, 사진이미지를 만들고 또 손수 글도 지었다.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닮은 천성명의 인체 조각은 특유의 몽환적이고 자폐적인 형상으로 인해서 그 자체로 매우 강렬하게 관객을 사로잡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다. 조각 위에 그림을 그리는 그의 독특한 감성은 공간으로 확장한다. 그가 만든 사람은 설치조각이라고 불리는 바, 인체조각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그를 둘러싼 주변의 정황과 관계들을 맺음으로써 연극무대 세트와 같이 하나의 장면으로 자리잡는다. 이처럼 천성명의 입체작업은 회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의 뒤섞임을 넘어서 공간의 문제로 확장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 개념에다가 시간을 더하고 있다. 이것은 ‘조각이란 시공간을 압축한 물질형식으로써의 입체조형물’이라는 정의를 넘어서는 일이다. 하여 그는 입체설치작가에서 종합예술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예의 익숙한 인체조각을 등장시켜 사건을 다룬다. 이전의 인체조각들이 몽환과 자폐의 상황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막연한 익명의 자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강렬한 캐릭터로서 등장한다. 소설가이자 연출가의 지위를 가진 천성명은 조각설치와 합성사진 이미지, 두 개의 버전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전시에 맞춘 인쇄물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각설치 장면을 재현한 안내서이고, 다른 하나는 인체 이미지들을 미니어처 배경에 합성해서 만든 사진 이미지들과 작가 자신이 지은 글을 더한 내러티브 북이다. 평론가가 소개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제 내러티브라는 것이 시각예술 본령에 깊숙이 개입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는 것을 전시장에서 관객의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주간동아 기고문



언뜻 보면 잔혹한 그림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같이 느껴지는군여
전시장 가보면 느낌이 오겠지요. 시각예술이란 나름의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