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기전 리뷰 : 뉴미디어의 현상학적 체험과 예술적 소통

critic & column | 2007/01/17 20:21


뉴미디어의 현상학적 체험과 예술적 소통

양만기 개인전, 2006.12.00 - 2007.1.00, 카이스갤러리

컴퓨터 장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테이블 위에 앵무새가 앉아있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앵무새와 같이 패권의 언술을 반복하는 미디어 환경에 개입한 관객이 전혀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내도록 함으로써 미디어와 개인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기계장치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며 앵무새도 기꺼이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기계장치 옆에 놓인 앵무새는 한낱 앵무새 같은 존재일 뿐이지만, 벽면에 동떨어져있는 앵무새는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자체로 권력의 긴 그림자를 만드는 ‘앵무새 같은 존재’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관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도 끊임없이 추가될 것이다. 모니터로 만들어진 나무 또한 증식하는 기계장치를 은유하고 있다. 캔버스위에 텍스트를 전사하고 그 위에 다시 페인팅을 가미한 후에 다시 이미지를 복제해서 전사한 후 투명 에폭시를 바른 캔버스 작품에는 기계복제와 수작업이 공존하고 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영상이미지들은 복합적인 매체 환경을 대변한다.

칠판 위에는 글씨를 썼다 지운 흔적이 남아있고 그 옆의 축선을 타고 유동하는 모니터에서는 글씨를 쓰고 지우는 행위를 기록한 영상이 흐르는 칠판 영상 작업도 있다. 칠판은 고정된 결과를 가지고 행위의 흔적을 드러내지만 모니터는 시간성을 담보로 행위 자체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80개의 초콜릿 모양 캔버스를 벽면에 걸어둔 <달콤한 전쟁>은 군데군데 초콜릿 속에 씨엔엔이 쏟아내는 과대포장 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80개의 픽셀로 압축된 부시의 얼굴이다. 관람객 그 누구도 이 단순한 색면들 속에서 부시의 얼굴을 읽어낼 수 없지만 작가는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압축된 부시얼굴의 색상 값을 각각의 초콜릿에 부여했다. 읽히지 않지만 숨어있는 의도인 셈이다. 우리는 가끔씩 이런 대목에서 예술가의 의도와 작품이라는 결과 사이의 괴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양만기의 경우 초콜릿 픽셀이 형상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작품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맥락 속에 포섭되는 특정한 형상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그 유의미성을 파악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제작은 강렬한 엘이디 영상이다. 반원의 대형 설치 작업은 전면에 등장하는 물체들을 끌어들여 그 형상을 거꾸로 보여준다. 이 작품의 묘미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속도와 방식의 변화에 있다. 관객 자신의 형상을 비춰주는 영상을 명확하게 자신의 형상으로 인지할 무렵 관객은 이미 형상보다는 매체 자체에 눈길을 주고 있다. 엘이디화면이 무언가 어슴프레하게 움직이는 형상을 잡아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작품에 근접한 관객은 작은 프레임 안에 박힌 세 개의 알지비 불빛에 눈길을 준다. 뉴미디어아트의 현상학적 체험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회화나 프린트 작품과는 판이하게 다른 차원에서 이 영상작품은 빛의 삼원색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는 디지털 부호이기도 하면서 세 가지 원색의 조합을 통해서 형상을 인식하게 하는 아날로그의 요소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엘씨디 화면은 망점 그자체가 색의 값을 가지고 있지만 엘이디 화면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병치혼합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 물질과 비물질의 공존이라는 매체 상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동시에 관객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내러티브를 결합함으로써 이 작품을 밋밋한 인터랙션 작품들의 식상함으로부터 구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백남준이 비디오를 아트로 끌어들인 후 그것을 설치 작업과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다소간 무리수를 두었던 것처럼, 오늘날 양만기에게서도 피해나갈 수 없는 미술의 덫이 있을 수 있다. 뉴미디어 자체를 박제화 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미술가들이 뉴미디어를 전시장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적 체험을 공유하는 공간, 혹은 미적 가치를 담은 예술상품을 교환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공간에서의 예술적 실천이란 언제나 이러저러한 위험성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마법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양만기의 작업이 예술작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에서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미디어와 내러티브, 가상과 실제, 물질과 비물질,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을 모색함으로써 미적 체험과 예술적 소통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비평, www.gimjungi.net)

* 아트인시티 2007년 2월호 기고문

2007/01/17 20:21 2007/01/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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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7/01/2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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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피디 2007/02/0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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