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 무정란과 창작스튜디오
critic & column | 2010/08/04 10:30
양계장 무정란과 창작스튜디오
닭은 길들여진 존재이다. 닭은 오랜 세월동안 인류와 함께 하며 가축으로 정착했다. 닭의 사육방식도 산업화에 따라 사뭇 달라졌다. 시골 마당과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의 모습은 이제 목가적 전원풍경을 대변하는 옛이야기다. 닭은 단기간 압축성장을 위해 빡빡한 우리, 즉 양계장 속에서 자란다. 이들은 생식 기능마저 원천 차단당한다. 따라서 그들이 쏟아내는 알은 유정란이 아니라 무정란이다. 현대예술을 여기에 빗대기도 한다. 야성을 상실한 예술상품 생산자들이 틀에 박힌 유사, 변종 예술을 ‘양계장 무정란’이라고 비판한다.
예술가가 각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내용과 형식을 가진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시장에서 요청하는 바, 또는 기성의 예술 트랜드에 충실한 작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특히 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시(residency, 임시거주) 프로그램들의 경우에 이러한 비판에 극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각 도시마다 앞을 다투어 창작공간을 만들고 있다. 10여년 전에는 문화부에서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후 지자체와 기업에서도 임시거주 작업실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보편적인 예술제도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예술가들이게 작업실 공간을 제공한다는 애초의 취지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1년이나 2년 단위로 작가가 교체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작업실 지원 프로그램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이 공간들은 예술가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 언어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데 보다 큰 의의가 있다. 문제는 그 만남이 예술가들끼리의 만남, 또는 소수의 미술제도 엘리트들만의 만남에 그친다는 데 있다. 사회 전체와의 깊은 만남이 아닌 예술계 표피의 만남이 지속되다보니 어느덧 양계장 무정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도 창작스튜디오의 진화과정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대안적인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들은 이미 새로운 미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나 서울의 금천창작공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거점이자, 지역의 커뮤니티 아트의 거점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도시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를 빈번하게 오가는 예술가들이 그 도시공동체에 활력을 높이고 있다. 예술가들의 왕래는 문화적 개방성의 척도이다. 바야흐로 미술관, 화랑, 대안공간과 함께 창작스튜디오가 새로운 미술 담론과 실천을 견인하는 시대이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