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미술의 탄생] 리뷰 : 주문의 변동과 미술, 그리고 시장미술

critic & column | 2010/03/22 22:20


[시장미술의 탄생] 리뷰
주문의 변동과 미술, 그리고 시장미술

‘글로벌 아트마켓의 성장과 예술의 몰락’. 이 책의 표지에 담긴 시장미술 비판이다. 얼핏 보아 선동적인 수사 같아 보이는 이 언변 속에 사실은 저자가 바라보는 당대 시각예술에 관한 깊은 문제의식이 베어있다. 저자는 미술시장에 관한 그 많은 언설들을 단숨에 넘어서는 제도비평의 용어로서 ‘시장미술’이라는 말을 던졌다. 그것은 확연히 문제적이다. 그는 한국의 그 어떤 저서들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술시장을 다루고 있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시장은 시각예술의 생산과 매개와 소비를 구성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가치이자 궁극의 목표이다. 시장체제 속에서 정교하게 얽혀있는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비평가로서 그는 매우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미술시장에 포획된 미술을 시장미술이라는 용어로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식보다 더 문제적인 대목이 있다. 미술시장이 탄생한 지 수백년이 지난 후에야 그 체제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미술이 탄생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중세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걷어낸 르네상스 예술이 세속주의(secularism) 작가로 불린 알베르티로부터 바로크 시대의 루벤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주문화가를 낳은 데에 이르기까지 미술시장은 이미 수백년 전부터 맹아적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도 수백년 전부터 서울 광통교 인근에 (향이나 비단과 함께)그림을 파는 가게가 등장했으며, 궁정화가들의 그림이 시장에 나돌았는데, 김홍도와 정선과 같은 인기작가의 그림은 집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구한말에 생긴 정두환서화포가 1930년대까지 성업을 했고, 해강 김규진은 고금서화관이라는 갤러리를 만들어 성업 하다가 평양에 기성서화관이라는 분점을 내기도 했다. 한성서화관은 도화서 출신의 안중식 조석진을 전속화가로 두기도 했다. 당대최고의 주문화가인 어용화사가 시장미술가인 화랑 전속화가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근대화에 뒤쳐진 한반도에서도 미술시장의 탄생은 전근대 또는 초기 근대 시대인 100년이 훨씬 넘은 일이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의 미술생산과 유통 체제가 본격화하거나 활성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장미술체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근대 이전의 미술,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 이전의 미술은 주문미술이었다.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주문미술의 시대를 넘어 시장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주문을 넘어서 자율적인 생산주체로서의 예술가 개념을 성립시킨 것은 신흥권력으로 떠오른 부르주아지의 ‘보이지 않는’ 주문체제, 즉 시장미술체제였다. 가령 인상주의 화가들이 파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반면 뉴욕에서 환영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 인식과 감성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그러한 차이를 반영한 것은 미술시장이었다. 뉴욕의 미술시장은 새로운 시대의 사유와 감성으로 새로운 미술을 선택했다.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한 예술가들의 자율성은 근대를 일군 새로운 지식생산으로 크게 공헌했다. 미술시장은 근대적인 미술 체제를 견인한 핵심적인 장치이다.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는 미술시장의 역사 그 자체이다. 상투적인 관점에서 시장미술의 탄생을 이야기하려면, 미술시장의 태동과 발전 과정 속에서 초기와 당대를 비교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술시장의 변화에 따라 예술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대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대목을 생략한 채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횡횡하고 있는 시장미술에 단도직입하여 ‘시장미술의 탄생’과 ‘예술의 몰락’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후기자본주의 시대인 동시대를 시장미술이 탄생한 시기라고 부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전지구화 시대의 아트마켓과 경매, 미디어 등 동시대의 다양한 지층들을 파헤치며 미술시장의 작동방식을 탐구한다. 이 가운데서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간접적인 주문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주문으로 바뀌었으며, 예술의 자율성은 타락의 나락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도달한다. 저자는 자율성에 기반 한 예술가들이 20세기를 관통하며 이룩한 모더니즘의 성좌를 예술이라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20세기 말 이후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아트마켓의 등장과 시장의 주문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시장미술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초기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시장을 통해서 보수적인 화단의 낡은 틀을 깨치고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쟁취한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이 훌륭한 예술가로 미술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반면,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시장에서 성가를 이루고 있는 예술가들은 필자의 용어대로 시장미술을 쏟아내는 타락한 예술가로 비판 받고 있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예술을 낳는다. 지금 당장 시장체제를 거부하거나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회구성체는 변동할 것이며, 예술체제 또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그의 성실하고 진지한 진단과 비판은 섣부른 예견보다 훨씬 더 큰 신뢰를 가져다준다. 이미 예술체제의 변동을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술작품을 통해서 화폐가치의 확대재생산을 발견하려고 하는 보이는 손의 노골적인 주문을 넘어서 예술생산을 공동체와 공공, 생태, 도시, 소수자 등의 가치와 결부해 ‘새로운 주문’의 단계로 견인하고자 하는 저변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저자의 당대비판이 미래에 관한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우려가 깊으면 깊을수록 새로운 예술체제의 도래가 가까워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래에 대해 확언하지 않는다. 다만 동시대 예술생태의 다양한 지층들을 섬세하게 들춰 진단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체제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따라서 이 책은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시장이 초래하는 노골적인 주문에 응대하는 시장미술을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체제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아트프라이스 2010년 4월호 기고문 : 심상용 저, [시장미술의 탄생] 리뷰

2010/03/22 22:20 2010/03/2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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