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순환, 신 니콜라이 순남과 구헌주의 경우
critic & column | 2009/08/10 10:38

신 니콜라이 순남(1928-2006). 연해주에서 태어나 1937년 아홉살 나이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 1940년에 타쉬킨트에 정착했다. 1949년에 타쉬켄트의 반코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화가활동을 했다. 20세기 한국인의 디아스포라를 온몸으로 받아낸 그의 삶에는 조실부모, 강제추방, 부인과 아들의 죽음 등 깊은 상처가 묻어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디아스포라 기획전 <아리랑 꽃씨>에 나온 이 그림 <회상>은 그가 예순 넘어 그린 것이다. 유럽 미술관 소설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은 그가 그려낸 그림들 가운데 가장 간결하면서도 깊은 그림이다. 모진 삶을 되돌아보는 그의 기억 속에는 암흑 속의 촛불 하나가 있다. 이주민의 고통과 상처를 안고 한 평생을 살아간 그의 삶이 이 한 장의 그림에 담겨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군 까레이스키가 말하는 삶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여기 우리에게 절망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신 니콜라이 순남이 회상하는 깊은 검은 색이 드리운 그의 삶에 비해,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의 삶은 그 얼마나 칙칙하고 희끄무리한 회색이던가! 회색 빛 현실 인식으로는 절망할 수 없다.
신 니콜라이 순남의 그림을 보면서 구헌주를 떠올렸다. 절망하지 않는 우리에게 한 젊은 예술가는 짙은 검은색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에게 깊은 어둠을 직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촛불을 켠 신 니콜라이 순남의 그림과 촛불을 빼앗긴 구헌주의 그림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20세기와 21세기의 간극을 넘어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두 예술가 사이에서 역사의 순환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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