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의 불꽃에서 물신을 포착하는 뜨거운 미디어 : 윤영화

critic & column | 2008/11/02 10:43


소비사회의 불꽃에서 물신을 포착하는 뜨거운 미디어

성속이체(聖俗二諦). 종교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 두 가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두 가지를 상호 대립의 국면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영혼과 육체 등의 이원론적인 구별을 넘어 변증법적 합일의 수준으로 이해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윤영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가늠하는 최전선의 화두였던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불꽃 - 레이싱 걸’ 연작들은 매우 도발적인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는 윤영화 내러티브의 결정판이다. 그의 최근작들 속에는 불꽃과 레이싱 걸 신체 사이의 간극을 무화함으로써, 성과 속이 합일 수준으로 공존하고 있는 윤영화의 세계관이 매우 예술적인 차원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터쇼의 레이싱 걸 이미지에서 소비문화의 물신을 끄집어내는 비판정신으로부터 출발해서 한 프레임 안에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쌍을 이루도록 가두어 둠으로써 키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치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윤영화의 미디어 전략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넘어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레이싱 걸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실재를 재발견함으로써 윤영화의 작업은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눈에 띄게 줄였다. 실재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최소화 하던 것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 이미지의 지시가능성을 재발견하고 그것의 서사적 국면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그는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상대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낸 실재의 섬세한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데에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재현에 있어 최소주의를 선택해서 존재의 사라짐을 보여줌으로써 존재의 드러냄을 시도하는 역설의 상황이 그의 목표였다. 그의 작업들에 대한 비평적 언급들이 회화적 사진, 사진적인 회화, 이미지의 해체, 실재를 넘어서는 존재 등의 명제에 주목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윤영화의 작업은 빛을 빨아들이는 카메라 렌즈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의도적인 조작이든 우연에 의한 것이든 간에, 실재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카메라 렌즈의 시선을 화가 주체의 시선과 뒤섞어서 이른바 그림 같은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그런 점에서 렌즈 베이스드 아트(lens based art)라는 맥락에서 윤영화의 작업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림 같은 사진일지 모르지만 윤영화의 작업은 엄연히 기계 조작의 결과로 탄생한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서 신체와 기계장치라는 두 가지 다른 경로를 관통한 이미지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A같은 B’라고 말하거나 ‘A와 B의 경계를 흐트러트렸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A와 B는 서로 다른 개체이다. 따라서 윤영화의 사진이 렌즈를 투과한 기계조작의 이미지라는 점, 나아가 그 사진 이미지가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좀 더 명쾌한 비평적 관점을 세우는 데 유익할 것이다.

불꽃과 레이싱걸 이미지를 포착해서 재배치한 최근작들은 그의 미디어 전술을 차가운 것에서 뜨거운 것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그림 같은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 그는 미디어 자체를 차갑게 만들었다. 자신이 채택한 사진 미디어가 현대미술 속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를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배가시키는 좌표 확인 작업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따라서 그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표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자체, 혹은 자신이 창조해낸 스타일 자체에 비중을 두고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가 미디어 바깥의 실재에 집중하고 그 실재의 면면들을 활용해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전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조는 이전의 작업들에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04년 작 <욕망의 변증법>(도판1)이나 <수퍼 파라다이스>(도판2) 같은 작품들은 성속합일을 이야기해왔던 자신의 서사와 고유의 스타일이 키치적인 전술 아래 잘 담겨져 있다. 따라서 그의 전환은 맥락 없는 분절이 아니라 키치를 다스릴 줄 아는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한 결과이다.

세 컷의 사진을 옆으로 나란히 이어붙인 대작 <Flame-Ray 神 Girl>은 파란 불꽃과 빨간 불꽃을 사이에 둔 레이싱 걸 이미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맥락의 <Flame - Racing Hera>는 다섯 개의 레이싱 걸 다리 사진과 다섯 개의 컬러풀한 불꽃 사진이 각각의 독자적인 프레임을 가진 채 나열된 작품이다. <Grid-Ray 神 Hera>는 위아래 두 컷의 이미지를 겹친 작품이다. 레이싱 걸의 다리와 붉은 불꽃의 결합으로 이뤄진 이 한 프레임의 이미지는 키치적인 소비문화와 미의 여신을 한 프레임 안에 가두어 역설적인 서사를 제시하고 있다. 윤영화 스타일의 카메라 워킹으로 인해 윤곽선이 흐트러진 이 이미지들은 그것이 불꽃인지 옷깃인지를 굳이 분간할 필요 없이 빛의 유영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화면 속 색채의 유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첫 시작일 뿐 그 뒤의 해석적 지평을 두루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불꽃과 레이싱 걸 사이의 의미 작용은 이미지의 유희를 넘어서는 세계 이해의 지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꽃은 윤영화가 추구해온 사진 이미지의 회화성을 드러내기에 매우 좋은 피사체이다. 그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네 가지 불꽃을 나란히 피우고 그 불꽃들을 겹쳐 보이도록 배치해서 카메라 렌즈 속으로 그 빛을 빨아들였다. 우리는 그의 불꽃 이미지들 가운데 몇 가지 색이 겹쳐 보이는 상황을 접하는데, 이것들은 컴퓨터합성이 아니라 현장에서 연출한 실재의 상황을 포착한 이미지들이다. 그의 사진들이 이렇듯 디지털 조작을 거치지 않은 날것이라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불꽃(flame) 사진을 둘러싼 프레임(frame) 또한 윤영화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진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액자를 끼움으로써 그는 레이싱 걸(Ray神 girl)의 키치적 맥락을 완성하고 있다. 나아가 그의 프레임은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배치의 미학을 완성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racing girl’을 ‘Ray 神 Girl’로 비틀어버렸을 때의 이 키치적 상황은 윤영화 스타일과 내러티브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레이 신 걸(Ray 神 Girl)’은 모터쇼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광고모델인 ‘레이싱 걸’이라는 말을 자신의 작업 개념에 맞게 조작한 언어유희이다. 그가 말하는 레이 신 걸(Ray 神 girl)은 빛을 의미하는 레이(ray)와 신(神), 그리고 여성을 말하는 걸(girl)의 합성어이다. 이 짧은 말 속에 윤영화 작업의 형식과 내용이 온전히 들어있다. 우선 그는 ‘레이(Ray)’라는 말 속에 자신의 작업 도구인 사진이 빛의 세계를 조율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신(神)’이라는 언어 속에는 성과 속, 종교와 사회 등의 갈등과 대결을 화해와 합일로 이끌고자 하는 자신의 화두를 내비치고 있다. ‘걸(girl)’은 빛과 신(Ray 神)을 인도하는 인격체이며 동시에 ‘Ray 神’을 레이싱(racing)으로 전환하여 근작의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단어이다.

모터쇼 현장에서 그는 불꽃을 발견해냈다. 현란한 조명아래서 유동하는 빛의 세계에 따라 소비사회의 축소판인 모터쇼 현장 공간을 유영하는 존재. 레이싱걸들이다. 자동차라는 물신을 대리하는 레이싱 걸들의 이미지를 그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윤영화는 레이싱 걸들을 통해서 자동차 물신의 현현을 발견했다. 현대 소비문화의 정점에 서 있는 자동차 문화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빠른 속도로 편안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탈 것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넘어 자신의 취향을 소비하면서 재구축하는 기호의 세계로 전환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물신(物神)’의 지위를 부여한다. 인격화한 자동차를 대리하는 신체가 있다. 레이싱 걸이다. 레이싱 걸은 자동차의 물신화를 대변하는 신체이다. 도색 잡지를 도배하는 레이싱 걸의 키치 이미지가 물신화한 소비문화를 대표하듯이 윤영화가 말하는 ‘Ray 神 Girl’ 속의 레이싱 걸 신체 이미지는 세속을 대리 표상한다. 불꽃과 레이싱 걸의 다리 이미지는 신을 가운데 두고 공존하고 있다.

윤영화의 근작들에서 보이는 모종의 변화는 미디어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쿨 미디어에서 핫 미디어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전까지의 윤영화가 사진과 회화 사이의 공통점과 차별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디어 자체를 이야기했다면, 지금부터의 윤영화는 자신의 스타일에 가장 잘 부합하는 내러티브를 찾아나서는 것을 제일의 전략적 목표로 삼는다. 불꽃을 포착한 사진들과 레이싱 걸들을 포착한 사진이 황금빛 액자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윤영화의 미디어 전략이 쿨 미디어가 아닌 핫미디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파란 불꽃 너머 저편의 빨간 불꽃을 발견하듯이 모터쇼 현장의 레이싱 걸들의 다리에서 상품화한 여성 신체라는 불꽃을 발견하는 순간 윤영화의 렌즈는 쿨 미디어의 덫을 풀고 핫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2008/11/02 10:43 2008/11/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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