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 활용방안 연구에 관해 몇 가지 덧붙이는 말
critic & column | 2007/04/20 08:26
발제자는 서울역사의 역사성과 더불어 건축사, 도시맥락, 장소성 등의 관점에서 그 가치들을 언급했다. 이러한 언급들을 발제자의 논의 순서에 따라서 간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역의 역사적 가치는 식민지배의 기억을 담고 있다. 발제자가 지적하였듯이 한반도에서의 철도건설은 ‘한반도 수탈과 대륙침략의 전진기지로서 활용될 목적’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중심에 서울역이 있다. 나아가 서울의 관문으로서 해방이후에도 숱한 역사적 서사와 시민사회의 일상성을 담보한 곳이기도 한다. 둘째, 건축사적인 관점에서도 서울역사는 철도역사라기보다는 궁전건축 양식을 변형한 것으로서 식민지배의 상징으로서 기능한 건축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비극적인 결과물인 동시에 한 시대를 대변하는 사료이기도 하다. 셋째, 서울역사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식민지배의 구상에 맞춰 재배치하는 데 있어서 한 축을 형성했을 뿐더러 해방 이후에도 그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온 결과 전국을 잇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넷째, 서울역사의 장소성은 식민지배와 근대화, 민주화를 견인하는 20세기 한국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는 서울역사를 통합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폭넓은 시선을 지니고 있다. 서울역사는 부정과 긍정의 이분법을 추월하는 상징적 가치를 담고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새로운 역사 건축과 백화점 공간의 연계 속에서 단절된 박제화 된 유물로 전락했다. 이러한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방안에 대한 발제자의 논의에 대해 몇 가지 항목에 대해 부분적으로 토론자로서 말을 보태고자 한다.
덕수궁미술관 이전 문제
2003년 신역사 개관 이후 아직 제대로 된 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서울역사 건물은 한국근대사박물관, 전통공예관, 현대미술관, 대중문화와 한류문화를 결합한 예술영화관, 복합공간, 관광센터 등의 방안이 논의되어 왔다. 이 가운데서도 문화재청과 문화부가 이견을 가지고 사안이 있는데, 덕수궁미술관을 서울역사로 이전하자는 논의가 그것이다. 공간이전 논의는 다소간 뒤틀린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덕수궁 내의 동관 석조전까지도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지만, 그 방안이 무화되면서 오히려 서울역사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는 형편이다. 단정적으로 말하건대, 서울역사는 덕수궁미술관의 이전 대상지로는 부적격하다. 그것은 건축구조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역이 폐쇄된 역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발제자의 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오르세 미술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공간이 협소하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접근성의 문제도 있고 특히 건축물이 들어서 물리적 장소의 문제가 심각하다. 매일매일 수도 없이 왕래하는 기차들 때문에 진동이 끊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은 역사 건축물로 미술관을 이전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진동과 미술품 보존은 상극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독일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은 사용하지 않는 철로 위에 남겨진 역사이지만 서울역사는 대한민국 철도교통의 심장부에 위치한 곳이며 앞으로 더욱 더 활발하게 사용될 곳이라는 데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덕수궁미술관을 이관하는 방안은 ‘적합하지 않은 건축구조와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존재’라는 표현에서 ‘불가능한 입지조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운영방안의 문제 : 공공성과 대중성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어떠한 내용의 사업을 벌이던 간에 서울 도심의 섬처럼 고립된 서울역사의 접근성 문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연일 수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곳이지만 정작 문화적 수용자 대중이랄 수 있는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향유를 갈망하는 대중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은 두 가지이다. 시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여 찾아가는 공간, 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방안이 하나이고, 다수의 대중이 이용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매니아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어느 곳이든 후자보다는 전자의 방안이 더 매력적이겠지만, 특히 서울역사 건물의 중요성으로 볼 때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콘텐츠를 가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팔릴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확보하고 그것을 토대로 문화마케팅을 벌이는 일은 발제자가 우려하고 있는 바대로 문화상품을 둘러싼 저급한 대중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공공성과 활용도가 상호 배치되는 지점이다. 공간의 공적인 가치를 지키자니 자칫 서대문형무소처럼 빈약한 내러티브와 저급한 장치들로 가득한 초현실적인 공간이 될 것 같고, 그렇다고 활성화를 위해서 오픈마인드를 해보니 서울시립미술관처럼 한국일보 대관전시관으로 추락하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빠질 수밖에 없는 고민거리이다. 서대문형무소의 저급한 계몽 콘텐츠나 서울시립미술관의 저열한 포퓰리즘에 입각한 야합 모두 문제이다. 두 경우 모두 운영주체가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지경이니 심각한 문제다. 일을 제대로 풀려면 독립기관화가 제도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이겠는데 예산확보 방안에서 걸리고, 책임운영기관으로 가자니 허구적인 과업지표생산에 골몰하면서 대중주의 문화상품을 양산할 것 같고 이래저래 문제만 남는다.
근대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근대문화재를 활용한 문화예술공간들 가운데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곳이 몇 군데나 될지를 꼽아보니 아직은 잘 모르겠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으로 쓰이고 있는 덕수궁 석조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대법원 건물, 서울시립미미술관 남서울분관 공간인 옛벨기에영사관 건물 등이 미술관으로 활용되는 근대문화재들이다. 대전시립미술관도 최근에 시내에 있는 오래된 건물을 레지던시 개념의 분관으로 새로 열었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역사교육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나 앞서 말한대로 대중적 접근성에 비해서 콘텐츠가 너무나 허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 또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문화유적으로 지목하고 수리 중인 권진규 작업실을 비롯해서 박종화, 이중섭, 장욱진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생가와 작업실 등이 문화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지천에 널린 것이 근대문화유적이요 예술적 콘텐츠들인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서 근대문화유적과 예술적 콘텐츠의 결합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유럽의 사례에서 진지하게 참고해볼 만한 것이 프랑스 파리의 로베르네집과 같은 스쾃 아틀리에이다. 비어있는 공공건축물을 활용해서 훌륭한 문화생산의 공간으로 만든 사례들이다.
보존과 활용이라는 측면은 상호 배치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관계에 놓인 문제이다. 잘 보존함으로써 잘 활용할 수 있고, 잘 활용하는 것이 곧 잘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박제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문화생산의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독일 베를린의 옛동독지역의 훔볼트대학 근처에서 만난 충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작지 않은 근대건축물 한 동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콜비츠 작품 전시관을 만났을 때 웬만한 미술작품에 이골이 난 나로서도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 텅빈 공간 속 한 가운데에 아들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덩그마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도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었다. 건물 천정이 뻥 뚫린 상태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것이다. 바깥이었다면 이런 감동이 없거나 덜했을 것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건물 안에 모자상을 두고는 천정을 뚫어 눈비를 맞게 하다니 이건 정말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도 유분수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장치도 없이 텅빈 공간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브론즈 조상이 있고 그 위에 빛을 떨어뜨리는 천정의 구멍. 그러고 보니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라기 보다는 눈비를 끌어들이는 장치였다. 그 천정의 구멍 하나로 인해 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숭고미란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콜비츠의 모자상이 각별한 이유는 모자상의 신파적인 내러티브를 극대화하는 장치를 매우 효율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단촐하리만치 군더더기 없는 조형물을 바닥에 깔아 두었다는 점과 천정을 뚫어 빛과 눈비를 끌여들이는 탁월한 감성학 때문이다. 광장에 우뚝선 높은 좌대 위의 영웅적 인물상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이렇게 낮은 곳에 임한 인간적인 모습의 공공미술 작품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건축문화재를 동시대의 예술적 언어로 활용한 좋은 사례일 것이다. 베를린 중앙역 인근의 부서진 종탑 또한 마찬가지이다. 2차세계대전 때 영국의 폭격으로 부서진 교회 종탑을 그대로 둔 것이다. 빌헬름대제 때 세운 것이라고 하니 복원을 하고도 남음직한데, 부서진 채 그대로 두고 있는 독일사람들의 마음은 전쟁의 참화를 잊지 말자는 성숙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근대문화박물관
발제자는 활용방안을 위해 서울역의 역사성, 장소성을 회복하고 계승 발전시키며, 서울역의 공공성과 문화적 가치를 구현하고, 체험과 문화 활동이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며, 보존과 활용을 조화하여 문화생산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이어서 복합문화예술공간 개념의 (가칭)서울역문화예술센터, 근현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근현대도시생활역사관, 근대미술관 등의 세 가지 방안으로 활용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토론자인 나는 이 가운데 각각의 장단점이 충분히 있으며 고려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두 번째 안에 대해 말을 보태고자 한다. 세 번째 안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바 있고 첫 번째 안에 대해서는 두 번째 안에 관한 언급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내용을 드러낼 것이다. 근대화 과정의 문화를 테마로한 박물관으로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지적된 ‘무겁고 박제화 된 역사박물관 형태로 설립되면 이용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동감하는 바 크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 때문에 근대문화박물관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그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10년 전인 1997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형태로 열렸던 <일상, 기억, 그리고 역사>라는 전시를 기억할 것이다. 20세기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저 역경과 고난의 민중사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라면 충분히 훌륭한 내용의 박물관, 흥미롭고 창의적인 박물관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서울역사가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는 점, 해방이후 근대화와 민주화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근대문화박물관이라는 개념이 다소 모호하다면 ’20세기한국민중생활사‘라는 보다 구체적인 개념정립을 통해서 확실하게 차별화 한 콘텐츠를 확보할 수도 있다.



“옛 서울역 미술관으로 부적절 시민 위한 복합문화공간 적격”
입력: 2007년 04월 23일 17:40:55
“버려진 서울역사를 일반인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자.”
지난해 한국철도공사에서 문화재청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방치되고 있는 옛 서울역사.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경향신문>
옛 서울역사(사적 283호)의 활용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 위해 지난 20일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근대문화재 문화공간 활용방안 심포지엄’에서는 ‘서울역사를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대종을 이뤘다. 이에 따라 서울역사를 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제안은 현실화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박은실 추계 예술대 교수는 ‘옛 서울역사의 문화시설 활용방안 및 콘텐츠와 디자인 전략’이라는 발표를 통해 세 가지 활용 방안을 밝혔다. ▲근현대역사와 대중문화예술이 결합하는 다원적 복합문화예술공간, 가칭 ‘서울역문화예술센터’ ▲근현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근현대도시역사관 ▲근대미술관이 그것이다.
박교수는 그러나 ‘덕수궁미술관 이전안’에 대해서는 공간의 협소와 소장품 확보를 들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박교수는 “플랫폼과 역사를 모두 활용한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달리 옛 서울역사는 공간적으로 협소해 미술관으로 적절치 않다”며 “하루 10만명이 넘는 유동인구가 역을 왕래하는 상황에서 특정 장르의 예술보다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생활문화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서울역의 역사성, 장소성의 회복과 과거-현재 계승 발전, 공공성과 문화성의 구현, 체험과 문화활동이 살아있는 공간, 일방적 문화 공급 전달 방식을 탈피한 적극적 소통 등 네 가지 방향에서 서울역사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원적 복합문화예술공간 활용안’에 힘을 실었다. 이 경우 운영은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미술평론가 김준기씨도 “서울역은 덕수궁미술관 이전 대상지로는 부적격”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역이 폐쇄된 역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며 “진동과 미술품 보존은 상극이어서 매일 수많은 기차들의 진동이 끊이지 않는 곳에 미술관을 이전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력히 반대했다. 김씨는 “세 가지 방안이 각각 장·단점이 있겠으나 복합문화공간으로 가게 되면 상업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며 돈이 되는 문화 콘텐츠로만 구성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심포지엄을 준비한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정책팀장은 “심포지엄에서는 ‘미술관안은 아니다’라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며 “박교수의 복합문화공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괄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어떤 개념으로 갈지는 좀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류팀장은 “서울역사는 재정자립도가 있는 공간, 시민들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서울역사를 활용하는 방안과 세부 운영계획을 담은 보고서를 7월 말까지 문화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함께한 서울역은 1925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공돼 80년 가까이 사용되다가 2003년 11월 폐쇄됐다. 서울역은 2006년 한국철도공사(구 철도청)에서 문화재청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방치돼 노숙자들의 숙소로 전락하고 쓰레기더미가 가득 쌓여있다. 심포지엄에서는 구 서울역사와 서대문 형무소 사이에 산재한 근현대 문화유산을 활용해 ‘서울역사-서대문형무소 문화벨트’를 조성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프랑스문화원 대외협력관을 역임한 김경희씨는 “북촌 한옥지역, 홍대 등 몇 개의 지역만으로 한국의 역사와 일상을 보여주기엔 미미하다”며 서울역사와 시청, 정동, 독립문 일대를 문화 벨트로 이어 역동적인 한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