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예술

critic & column | 2010/08/18 17:46


서로의 예술

다른 나라 사람에게 자기 나라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주는 것을 ‘상호주의’라고 한다. 그것은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태도를 가지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가치이다. 국가주의나 지역주의는 서로의 가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국가주의(nationalism)는 국가와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우선시하는 태도로서 개인이나 계급 등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가진다. 지역주의(regionalism) 또한 지역의 가치를 최우선시 한다. 이들 이념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넘어서려는 것이 상호주의이다.

‘서로 상(相)’과 ‘서로 호(互)’를 묶어쓰는 ‘상호(相互)’라는 말이 외교 문제를 넘어 예술 영역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문화적 합의나 관행을 넘어서는 예술언어의 국제적 소통은 제국주의 시대 이후 전지구를 단일한 코드로 통일했다. 이른바 문화제국주의 양상이다. 예술소통의 국제성은 이미 근대 초기부터 이뤄져왔다. 국가단위를 넘어서는 예술소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호국가적이라기 보다는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전지구적인 보편타당성을 인정받은 유럽의 예술 콘텐츠는 지역적 차이를 간과한 채 전지구에 걸쳐 군림해왔다.

이 때문에 예술 영역의 상호성이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바로 이 막힌 지점으로부터 ‘서로의 예술’이 태동한다. 제국주의를 국제주의로 전환하는 역발상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개인과 계급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 상호국가주의, 즉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도 이른바 국제주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앞서 말한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문화제국과 문화식민의 관계가 창궐하다. 따라서 국가 단위의 상호성을 넘어서는 지역 단위의 상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대한민국의 한 도시가 중국이나 유럽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상상한다거나, 또는 한 도시의 규모를 토대로 국가 단위의 상호성을 꿈꾸는 것은 허황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도시가 적절한 규모와 성격의 다른 도시를 카운터파트로 설정해서 상호성을 모색하는 게 적절하다.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도 여기서 나온다. 그것은 나라와 나라의 차이, 지역과 지역의 차이, 개인과 개인의 차이를 섬세하게 성찰해야 한다.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지역주의의 가치를 토대로 그것을 상호주의 관점에서 나누는 ‘서로의 예술’.  정보화시대, 전지구화시대, 문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새로운 좌표이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8/18 17:46 2010/08/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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