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순환을 성찰하는 예술노동

critic & column | 2009/04/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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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의 순환을 성찰하는 예술노동

도대체 관람의 대상물인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관람자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기나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감동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작동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때로는 화가의 그림이 새로운 지식 생산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품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예술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서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수천년간 축적된 인류의 감각과 시선을 지배해온 회화에 대해 심난하게 그 본질과 현상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회화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동시대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시각문화 환경 아래서 회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무목적성의 자율영역이라는 근대적 계몽의 서사로는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새롭게 등장했던 상황과도 판이 다르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뒤섞인 가치전도의 상황 속에서 화폐를 발견할 수 있는 심미적 물질로서의 회화라는 용처 외에 그 어떤 가능성이 있겠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해답 중의 하나가 여전히 ‘비판적 지식생산으로서의 회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회화에 삶을 건 젊은 예술가가 있다. 하성봉은 온몸으로 생태를 체험하고, 차가운 머리로 사유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성찰하며, 잘 익은 손으로 그리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붓을 든 예술가 주체 하성봉은 그림으로써 비판적 탐구에 몰입한다. 비판적 리얼리즘회화의 성찰적 국면을 통해서 우리는 하성봉이라는 예술가 주체의 사유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첨단의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화가 하성봉에게 있어 회화의 효용은 비판적 지식 생산의 회로로 통한다. 하성봉 회화의 비판의식은 생태주의 관점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생태의 사이클이 함유하고 있는 반성과 성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끌어들이는 생태는 대자연의 순환이기도 하거니와 도시의 본성이며 인간 삶의 면면이기도 하다. 그는 화가 주체로서의 자기 삶을 걸고 도시생태와 자연생태, 나아가 인간 삶의 생태적 순환을 깊이 들여다보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이다.

재현회화의 효용이 그 소명을 다한 시점 이후부터 현대미술은 회화를 비판의식의 출구로 재배치했다. 회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고드는 환원주의 태도가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의 본령을 이루었다면, 그 이후의 회화는 다시 실재와의 접점을 형성하면서 회화의 효용을 확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30여년 전부터 한국현대미술은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의 리얼리즘 회화는 형상의 문제와 결합하기도 했으며 계급의식이나 정치의식과 동행하기도 했다. 형상미술이나 민중미술과 같은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 이후의 미술은 보다 폭발적인 종다양성의 시대를 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앞 시대의 유산을 이어받은 비판적 리얼리즘 회화이다. 하성봉은 이와 같은 현대미술의 흐름과 동행하면서 자신을 성립시킨 화가이다. 리얼리스트의 자질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부터 나온다. 하성봉은 예술가 주체의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해서 토해내는 리얼리스트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성봉의 예술노동은 동시대의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비해 그 속도나 효율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쓸모도 없다. 우리가 하성봉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와 같이 비효율적인 예술행위를 하는 예술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는 정보와 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미디어시대를 지나 미디어가 새로운 주체를 구성해내는 제2미디어시대를 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시대이다. 이러한 미디어 시대의 예술들이 속도의 미학을 추종하면서 새로운 예술이 대세를 형성해나가고 있는 반면에 하성봉의 회화는 느림의 미학을 향해 역행하고 있다. 하성봉의 역행은 여느 화가들에 비해서도 현격해 보인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몇 개월을 바쳐야 하는 그의 노작을 접하노라면 그가 얼마나 속도와 효율로부터 거리가 먼 화가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낱낱의 점들이 모여서 형상을 이루고 길고 짧은 선들을 어이서 면을 만드는 하성봉의 붓질은 군집과 연쇄의 감성학을 구축한다. 어쩌면 우리는 하성봉 회화의 스타일이나 내러티브에 대한 감동만큼이나 그의 지난한 붓질 그 자체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성봉의 노작은 수화 김환기의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저렇게 많은 점들과 선들을 하나하나 찍어내고 그려내는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것으로 이어진다. 평면 위의 자리잡은 수많은 점들을 통해서 형태를 만들고 색채를 이뤄서 하나의 풍경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화가의 손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카메라 버튼 한 번과 컴퓨터 마우스 클린 한번으로도 처리할 수 있는 풍경의 값을 화가는 수천수만 번의 붓질을 통해서야 얻을 수 있다. 화면 전체를 선의 연속과 점의 응집으로 구성해내는 그의 느린 붓질은 풍경의 정보를 기억하는 카메라의 디지털 정보가 순식간에 토해내는 디지털 프린트의 무수한 색채 정보와 완연히 갈라선다. 디지털 시대의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 하성봉이 얻어내려고 하는 것은 수행성의 힘이다. 어찌 보면 21세기의 하성봉은 근대미학의 핵심과도 맞닿아있다. 요컨대 하성봉 그림의 매력은 붓을 든 화가 주체 하성봉의 그림 그리는 행위에 대한 존경과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울림이다.

모래밭과 갯벌, 바위, 그리고 잔잔한 바다와 저 멀리 섬들과 그 위의 하늘. 이것이 하성봉 근작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지난 몇 년간 그가 천착하고 있는 소재는 바닷가 풍경이다. 하성봉은 부산의 도시 풍경에서 출발해서 서해 바닷가 풍경으로 옮겨갔다. 땅과 물과 하늘이 화면을 삼분할하는 전형적인 가로그림으로 처리할 만도 한데 그는 좀처럼 그런 구도를 선택하지 않는다.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구도의 바다 풍경은 그의 관심사 밖이다. 그는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긴 가로선을 화면의 위쪽에 바짝 갖다 붙여놓고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땅을 위해 화면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 땅은 바닷물이 만들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바닷가 땅은 무념무상의 서정만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고요와 역동의 땅이며 풍요와 빈곤, 있음과 없음, 과거와 현재를 함께 품고 있는 살아있는 땅이다. 밀물과 썰물의 반복으로 인해서 생태의 순환 사이클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윤회의 땅이자 수많은 존재들이 목숨을 이어가는 생명의 땅이다.

하성봉의 그림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캔버스와 종이, 먹과 아크릴을 함께 쓰는가 하면, 대관산수의 근경, 중경, 원경을 섞어 쓰기도 하고, 필선의 연쇄로 화면을 구성하는가 하면 기호화한 점과 선과 면으로 형상을 구축하기도 한다. 꽉 찬 화면을 빈틈없이 메우는가 하면 여기저기 남겨진 공간을 한글 자모나 간략한 기호들로 채워넣기도 한다. 때로는 실재의 풍경을 옮기는 눈의 구도뿐만 아니라 생각의 크기와 방향에 다라 대상을 배치하는 마음의 구도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는 목판화의 칼맛을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선묘를 구사한다. 그것은 전통회화에서 보이는 필선의 맛과는 또 다른 붓질의 묘미이다. 그는 현란하게 꿈틀거리며 이어지는 곡선을 쓰기 보다는 가능한 한 최소단위로 분절된 직선을 쓴다. 그 작은 선들의 연속을 하나의 선이나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필선을 형태에 복무하는 요소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호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크고 작은 물길의 흔적으로 인해 실핏줄처럼 얽혀있는 생명의 주름들은 하성봉 회화의 핵심이다. 갯벌과 모래밭과 바위틈에 서려있는 그 시간의 궤적들은 하성봉이 그 지난한 노동을 통해서 캐내려고 하는 생태의 본질을 가장 진하게 담고 있다. 그는 인물을 화면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다만 물질과 생명이 뒤섞여 있는 생태의 모습을 담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풍경이 순수자연에 대한 동경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의 풍경에는 사람의 흔적이 있다. 자연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움직임이 곳곳에 묻어있는 풍경이다. 그는 인공의 흔적을 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행위나 사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하성봉의 풍경화는 자연 그 자체가 생성하는 움직임의 미학과 더불어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 존재를 포괄하는 생태적 풍경이다. 그는 물길 하나하나에 손길을 주고, 바위의 굴곡 하나하나와 낱낱의 자갈들하며 기름진 갯벌 흙의 자잘한 주름들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그려내면서 끊임없이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움직임의 흔적을 남긴 물질과 그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존재와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킨 생태의 거대한 순환을 말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하성봉 개인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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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14:38 2009/04/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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