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한 숨 : 이원석

artpd clip | 2005/10/28 08:28



이원석 작가가 나이 마흔을 앞두고 첫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원석은 개인의 사적인 체험에서 출발해 당대의 세계사적 문제를 관통하는 사회적 이슈를 제시한다. 몸통은 비대하나 팔다리는 한없이 빈약한 한 남성이 목욕탕에서 바닥에 떨어진 비누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힌 순간을 포착한 3미터 대작 <비대한 숨>은 끊임없는 욕망의 재생산으로 비대해진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뒤집어진 채 머리와 다리를 버둥거리는 거북이 <그러다 보면>은 세계화의 신화에 덫에 걸린 동시대의 지구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손가락으로 위아래 눈꺼풀을 벌린 인물상 <티>는 이렇듯 욕망과 허구로 가득 찬 세상을 들여다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이밖에도 <오늘도>, <두쪽>, <내탓이오>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원석 개인전의 전시장소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인사아트센터, 2005.11.16-11.22"



‘인간’의 사회심리학적 풍경들

이태호(미술비평/ 경희대 객원교수)

1.
느즈막히 가진 이원석의 첫 개인전은 ‘인간’과 그들이 처한 ‘상황’의 표현에 집중돼 있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그 성격상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최근의 풍속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작품 속의 ‘인간’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황’은 최근의 인간들이 사회적, 심리적, 혹은 풍속적 상황이다. 그들은 집이나 공중목욕탕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침내 눈의 티를 발견하는 땡땡이 무늬 팬츠의 사나이(<티>)인가 하면,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에서 서로 몸을 비비며 있는 일군의 사람들(<오늘도>)이다. 거기엔 놀랍도록 예리한 관찰을 통해 눈에 잡힌 유머와 풍자가 있다. 웃음이 나지만, 그러나 그 뒷맛은 씁쓸하거나 허망하다.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과 과장, 혹은 해학이 보이는 작품들이다.
둘째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무게를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작품 <두쪽>에서 벌거벗은 한 남자는 추의 반대쪽 끝에 매달린 한 덩이의 쇳조각과 균형을 이룬 채 ‘유영’하고 있다. 작품 <비대한 숨>은 근육이 아니라 지방으로 덮인, 거대하지만 무기력한, 호흡과 내분비계(땀, 등)만 기능하는, 생물적 존재와 물질적 존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듯한, 그러나 그 생각의 깊이와 능력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든 한 인간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그와 같은 존재의 두려움과 무거움, 혹은 잘 알 수 없음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동원하고 있다. 매달려 있음, 어두운 조명, 존재 아래의 어두운 물, 거기에 시나브로 떨어지는 땀과 같은 물과 그 파장 등이 그것들이다.
셋째는 사회심리학적으로 관찰한 삶의 풍경들이다. 말끔히 정장을 한 한 남자가 머리를 벽에 부딪고 있다(<내 탓이오>). 도시의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벽을 밀어부치듯 정면으로 몸을 기댄 채 그 행위를 반복하고, 그래서 거기에서 머리와 벽이 부딪칠 때마다 ‘쿵, 쿵…’ 소리가 난다. 그런가 하면, 작품 <그러다 보면>에선 뒤집힌 거북이가 머리와 발들을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 작가는 그 조각의 움직임과 그 소리를 위해 그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전동장치를 동원하고 있다. 머리를 부딪는 행위와 소리, 버둥대는 머리와 발들은 결코 관객에게 평화로운 기분과 정서적 쉼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서사시적인 은유(metaphor)를 보인다. 그것들은 불안하거나 안쓰럽고, 안타깝거나 혹은 불길하다. 그렇다. 이와 같은 불안하거나 불길함이 이 작품들이 내포하는 정조다. 작가는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을 결코 밝게 전망하지 않고 있다.

2.
이원석은 작품에 충분히 이야기와 표현을 담으려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색채, 소리, 전동모터를 통한 움직임 등을 적극적으로 동원한다. 이 점은 표현 내용과 더불어 작가가 근본적으로 지난 시대의 미학이었던 모더니즘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작가는 내용을 배제하고 새로운 형식에만 매달렸던 형식주의(formalism)와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내용을 담으려 하며, ‘풍속’과 ‘사회심리학적 관찰’의 작품을 통해 시대적 변동에 따른 삶과 세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작가를 단순한 시각적 흥미거리를 생산하는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채 세계의 변화를 추구하는 지식인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편 그의 작품은 구체적 현실에 벗어나 관념화되는 경향도 눈에 띤다. 전시에 나온 작품만을 두고 그 제작된 순서를 따라가보면, 작가는 작품의 주제가 가벼운 쪽에서 무거운 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이 ‘일상의 풍경’에서 ‘존재의 무게’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방향은 작가의 문제의식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보다 진지하고 깊어졌다는 믿음을 주는 반면, 그것들이 지나치게 관념화 될 때, 구체적 실제를 통한 (이른바 “실감난다”라고 할 때의) 감동의 감소를 결과하기도 한다.
전시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표현주의적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장인적 성실함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성실함’은 이 전시에서 우리가 받는 감동의 상당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미술사에서 지난 60년대의 ‘개념미술’ 이 미술의 ‘물질’과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제기한 이후 그것은 전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물질’과 ‘기술’에의 의존도가 높은 조소예술이 그와 같은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기회에 미니멀리즘의 영향이 막강함에 비해, ‘개념미술’적 성취가 유난히 허약한 우리 미술 전체를 반성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원석의 작품 <내 탓이오>는 한 남자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다. 남자는 반복해 ‘맨 벽에 해딩’을 하면서 쿵쿵 소리를 낸다. 집중해 듣고 있노라면 그 소리가 벽이 아니라 내 가슴을 치는 것 같다. 이원석은 <내 탓이오>라는 이 작품으로 그의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 소리는 전시장 안에서 관객의 귀와 가슴을 울릴 것이다. 전시장을 떠난 후에도 많은 관객들은 그 소리를 마음속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 소리를 기억할 수도 있다.
2005/10/28 08:28 2005/10/28 08:28

trackback :: http://gimjungi.net/blog/trackback/214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