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된 이미지의 배열체, 김범수

critic & column | 2005/11/04 09:01


분절된 이미지의 배열체, 김범수

예술이 물질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개념미술의 실험들은 그러나 아직까지 완벽하게 실현된 바 없는 미완의 실험인 것으로 보인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 오브제마저도 물신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20세기 미술제도의 거대한 힘이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소름끼치도록 놀라운 것이 미술 혹은 미술제도의 힘이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체제가 이어지는 한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예술의 물신화 현상에 대해 그리 놀라워하거나 두려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일 것 같다. 물질화 한 개념으로서의 예술작품 등에 관해 좀더 유연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우리는 뒤샹의 변기마저도 집어삼켰던 물신적 오브제로서의 예술작품 개념을 보다 긍정적인 게임의 지점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김범수의 작품을 논의해보는 데 있어서 물신으로서의 예술작품 개념을 끌어들여본 것은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고정된 시지각적 인지 대상으로서의 내러티브 구조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김범수는 분절된 이미지들의 연쇄인 영화필름을 이어 붙여 시각적 패턴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영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서사의 구조화 기능, 특히 시간의 연쇄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의 시간적 배열체를 단일한 프레임 내부에 고정된 공간적 배열체로 전환해내는 일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효과가 시간의 공간화이며, 연속적 내러티브를 압축한 (평면적) 시각예술 본연의 힘이며, 바로 이점이 김범수 작업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의 예술을 둘러싼 가장 큰 긍정의 지점은 확고부동한 시각적 장치로서의 요소들에서부터 나온다. 그가 만들어낸 평면과 입체 오브제들은 필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가 구조화 한 오브제로서의 가능성을 탈색하여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기능에 복무하도록 배열되어 있다. 김범수의 예술적 행위, 즉 필름을 잘라서 이어붙이는 행위는 필름 하나하나를 하나의 선적인 요소로 인지하도록 만들고, 색면들의 연쇄로 파악하게끔 한다.

김범수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들 가운데 내러티브의 담지체를 탈색하여 전혀 다른 맥락의 색면의 배열체로 만들어 낸다는 데서 오는 물성 변용의 신선함은 단연 앞서는 논점일 것이다. 김범수의 작업에 있어서 필름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이미지들은 하나의 색의 요소로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색면의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 물체나 인물들의 상황을 사진을 보듯이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좋을 만큼 필름 오브제는 본연의 내러티브 담지체로서의 물질적 특성을 상실한다. 이것은 오브제를 끌어들여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하도록 하는 앗상블라쥬의 전형적인 특성이며, 김범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면모이다.

다시 앞서 말한 물신 혹은 물질로서의 예술작품의 맥락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김범수의 세계에 관한 비평적 논점은 그에 대한 최상의 긍정의 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견고한 물질로서의 김범수의 오브제들에 있어서 개념성과 물질성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보는 문제이다. 하여 여기서 몇 가지 질문들을 나열함으로서 이 자리 토론의 논점 제안을 가늠하고자 한다. 김범수에게 있어서 영화필름은 색을 가진 셀로판지와 같은 기능을 하는가 아니면 모종의 차별성을 가지는가? 김범수 작업의 물성 변용은 개념미술적인 요소와 어떻게 만나는가? 시각예술가로서 영화가 가지는 예술적 특성들과 산업적 특성들을 고려하여 보다 전향적인 의미의 영화 구조에 대한 해체 작업에 접근할 가능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자면, 김범수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탈근대적 속성이 예술가로 하여금 무언가 보여주게끔 하는 것과 무언가 이야기하게끔 하는 것 사이에 또 다른 절충의 지점을 만들 수는 없는 건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과연 예술가, 특히 산업화로부터 도태당한 미술이라는 예술은 오늘날 어떠한 구조 속에서 이미지와 내러티브, 물질과 개념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는가? 김범수는 빛과 내러티브로 이루어진 영화 필름을 색과 선과 면으로서의 시각예술의 본질적인 요소들로 환원함으로써 현대미술에 있어서 개념과 물질 사이에 놓여있는 비평적 난제들에 대해 어떠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김준기(예술학)
2005/11/04 09:01 2005/11/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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