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과 비판을 촉구하는 불안의 시선 : 심점환론

critic & column | 2009/01/07 17:40


부정과 비판을 촉구하는 불안의 시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다. 심점환의 그림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한다. 부정과 비판의 태도로 불안의 시선을 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실재와 이미지의 안정적인 결합을 부정하고 이미지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그의 그림들은 안정을 희구하고 진실을 갈망하는 우리의 영혼을 할퀴고 물어뜯는다.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기까지 지난 10여년간 심점환이 보여준 그림들은 비판과 부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부정과 비판이 현실세계에 대한 관찰자의 냉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심점환 내러티브는 예술가 주체의 내면과 그 바깥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그의 회화는 심점환이라는 예술가 존재의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다. 예술가 심점환의 내부, 그러니까 그의 작품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원천적으로 불안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심점환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심점환이라는 예술가 주체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이 불안이라는 심리적 지형이야말로 그의 작업을 경영하는 지배적인 요소이며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다. 심점환은 예술가이다. 그것도 지독하게 상업적인 메커니즘과 타협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을 사회적 교환체계 속에 위치시키지 못하는 존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예술이라는 소외된 노동에 종사하는 심점환은 따라서 그 존재 자체가 불안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실존적 불안 이상의 것이다. 그는 사람을 대하는 부드러움이나 사려 깊음과는 달리 세상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다. 한 때 종교에 심취했던 그가 또 다른 세계관에 눈떴을 때,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부정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심점환과 그 현실을 부정하고 비판하고자하는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의 예술가 심점환 사이의 간극은 그의 불안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그의 부정과 비판은 인식론적 차원의 건조한 지식이 아니라 예술가 주체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투여한 감성적 차원의 자기 언어이다.

초기작과 근작에 이르는 변화과정을 추적하면서 심점환의 스타일과 내러티브를 형성한 과정을 기술한 후 그 속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불안의 시선을 읽어볼 차례다. 심점환은 부산의 형상미술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부산발 형상미술의 영향 속에서 성장한 작가이다. 그는 199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는 1980년대와는 또 다른 지형 위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형상미술의 경향이 민중미술이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전이되었던 1980년대 후반의 상황들, 그러니까 변혁의 에너지로 넘쳐나던 사회 현상들에 대해서 민감하고 즉발적인 대응을 했던 비판적 리얼리즘의 시대와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민중미술의 시대가 배출한 80년대 리얼리스트들이 작업의 목표를 작가 자신의 내면, 작업실 또는 전시장 바깥으로 돌리기까지 했던 것에 비해 2세대 리얼리스트인 심점환의 경우 전형적인 작업실 작가로서 같은 맥락의 비판적 리얼리즘을 구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앞 세대와는 또 다른 전략적 목표 설정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2000년에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형상미술, 그 이후 - 형상, 민중, 일상>은 이러한 정황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 전시의 기획자 강선학은 서문에서 부산미술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고 있는 형상미술 개념이 단일한 미술 개념으로 성립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어내려는 의도로 형상, 민중, 일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 범주의 작가들로 김성룡, 노원희, 박경인, 배동환, 방정아, 설종보, 심점환, 이혜주, 장원실, 진성훈, 한영수 등 11인을 꼽고 그들의 구작과 근작들을 출품하게 했다. 이들 참여작가들 가운데서도 특히 방정아, 심점환, 설종보, 진성훈 등 네 명의 작가를 민중미술의 무게를 덜어낸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꼽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선학이 진단한 심점환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권력관계 속에 놓은 인간 소외의 상황에 대해 ‘실재를 우회하는 그리기’로 응대하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은 구체적인 사건이나 정황들을 서사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방식의 1세대 리얼리스트들과는 다른 방식의 설정을 요청했다. 그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한 작업의 경향이 일상담론이다. 일상담론은 삶 속에 나타나는 소소한 정황들 가운데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미시적 관점의 서사구조를 표방한 새로운 흐름이다. 심점환은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자신의 일관된 작업 방향으로서 일상담론을 채택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2세대 리얼리스트이다. 그는 30대 후반이던 1990년대 후반에 일상적인 장면이나 상황 속에 초현실적인 설정을 가미한 형상회화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1997년에 누보갤러리에서 가진 첫 번째 개인전에서 인물과 식물과 곤충을 배치한 초현실적 분위기의 작품들을 다수 선보였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을 등장시킨 그림들도 개별적인 이미지들을 편집해서 배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심점환 스타일의 일단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인간과 식물, 그리고 곤충들이 주종을 이룬다. 현실 삶의 이런저런 정황 속에 놓인 인간의 모습은 그 주변의 형상들에 비해 한없이 왜소한 크기와 자세와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무기력하게 방치된 현대인의 소외 문제를 거대한 크기의 식물과 곤충들에 둘러싸인 나약한 인간상으로 포착하고 있다. 심점환은 이러한 문제의식이나 작업방식을 자연과 인공의 공존을 테마로 한 개인전을 통해서 명확하게 드러냈다. <심점환 개인전 : 불안한 풍경>(부산시청 전시실, 2001)의 출품작들은 실내와 풍경을 대비시키는 구도 속에 인간과 식물-곤충, 인공과 자연, 권력과 소외 등의 문제를 담았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도 심점환은 불안을 심어 놓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안정적인 상황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공존이라는 문제제기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서문을 쓴 이동석은 희망의 단초를 찾고자 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비관의 정서를 숨기지 못하는 심점환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드러내는 그림 그리기.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심점환은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잔혹하게 도살당한 물고기와 개를 화면 가득 배치한 <바다에 누워>와 <과정> 연작은 심점환 특유의 불안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2004년에 제작한 이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스타일과 내러티브를 구사하고 있다. 실내와 창밖의 풍경, 인간과 자연의 대비를 보여주었던 이전 작품이 이항대립적인 요소를 편집해서 배치하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고수한 반면에, 물고기와 개고기 연작들은 동일성의 반복이라는 구도를 도입하면서 전혀 다른 스타일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가지 다른 요소들의 불안한 공존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내러티브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전의 그림들이 이질적인 대상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었다면, 새로운 연작은 동일한 사물을 반복함으로써 이미지의 과잉이라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불안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불안의 시선으로 부정하고 비판하는 그의 전략적 목표가 일관성을 유지하는 한도 안에서, 그는 이전의 작품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작에서 그는 이미지 과잉 시대의 현대사회가 초래한 불안정한 세계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근작 회화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영화 속 인물일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 실명의 인물로 보이게 함으로써 시각문화의 단선적인 코드를 비틀어놓는다. 실재를 왜곡하는 이미지의 폭력적인 일방통행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배우 연작은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넘나드는 심점환 내러티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에 대한 이영준의 글 제목이 이미지의 귀환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점환의 그림은 ‘사회적 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이미지’라는 실재를 매우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부지불식간에 범하고 마는 실재와 이미지의 혼동 상황을 바라보는 심점환의 마음 속에는 부정과 비판을 동반한 불안의 시선이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부산의 발견 2008> 뮤지움 토크 발제문.

2009/01/07 17:40 2009/01/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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