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생의 육화 전략 : 발과 눈과 손의 아름다운 동행
critic & column | 2009/09/15 10:14
박능생의 육화 전략 : 발과 눈과 손의 아름다운 동행
거대한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서울 풍경은 박능생의 근작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야심작이다. 그의 도시 연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대전의 전경을 그린 파노라마 풍경이 있고, 여느 도시들에 대한 에스키스도 만들어 놨다. 이번 작업은 그의 긴 프로젝트를 규모나 방법의 면에서 본격화한 작품이다. 서울 풍경은 수묵으로 서울을 360의 파노라마 시각으로 전개한 대작이다. 양평의 팔당 근처에서 시작되는 한강의 유장한 흐름은 강동과 잠실, 남산, 마포를 거쳐 김포로 빠져 나가기까지 도도하게 이어진다. 화면 상단의 원경으로 흐르는 한강에 비해서 근경에서 중경, 원경에 이르기까지 가장 넓게 서울을 지배하는 풍경은 숲이다. 우리는 서울의 풍경을 도시문명의 전형인 집과 길로 가늠하는 데 익숙하다. 거리와 건축물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구성을 인공물이 지배하는 것으로 파악하도록 한다. 박능생은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다. 그는 서울의 도시문명을 둘러싼 자연의 존재를 드러낸다.
여기서 회화적 재현, 특히 풍경의 묘사에 있어서 화가의 포지션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난다. 박능생은 문명의 중심에서 서울을 바라보지 않는다. 가령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은 서울의 인공물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포인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박능생인 선택한 포인트는 북한산이다. 그것도 가장 높은 봉우리 어느 하나가 아니라 서울의 동북쪽에서 동남쪽과 서남, 서북쪽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주요 포인트를 분주히 오르내리며 우리가 평소에 발견하지 못하는 서울의 이면을 보여준다. 박능생의 풍경은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그가 만든 도시 풍경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매우 생경하게 만든다. 그는 건축물과 도록 등으로 꽉 찬 도시의 풍경을 산수풍경 너머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도시의 풍경이나 자연의 풍경에 대한 우리의 일상화 한 고정관념을 비틀어버린다.
이 그림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먹을 찍어 화면에 바른 도구가 모필이 아니라 아무데서나 구한 그 흔한 나뭇가지라는 점이다. 모필 특유의 정교한 터치를 살릴 수 없는 나무 막대 하나를 가지고 거대한 크기의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이 과정은 박능생이라는 화가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자 해답을 보여주는 일이다. 모필이라는 도구가 아니라 그의 손 그 자체가 회화를 실행하는 주체임을 증거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느 수묵화가들처럼 그에게도 필선의 덫이 짙게 드리워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한국화의 오랜 전통이 만들어낸 필선의 법은 이른바 준법으로 규격화 되었다.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 많은 동양/한국화 분야의 예술가들이 규격화한 필선의 법칙을 좇아 산수에 탐닉하는 것도 대체로 이러한 규격화한 규범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진부하고 상투적인 대상선정과 재현방법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도상의 반복재생산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박능생의 경우도 이러한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모필이 아닌 나뭇가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변화를 주는 일이었다. 물론 나뭇가지로 그림 그리는 일 또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틀을 깨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화면을 나뭇가지 하나로 완성해내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박능생은 모필의 이데올로기에 갇혀있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박능생의 대작 지두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모필이나 준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디움과 필법을 다루는 사람의 손에 더 깊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뭇가지 하나를 아무렇게나 분질러서 거친 필선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속하는 과정이 필선의 변화로 고스란히 전이하는 과정 자체가 매체 자체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화가의 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와 한국화의 용어 혼용은 19세기 이래 벌어진 문화제국주의 산물이려니와 그것을 21세기에까지 이르러서도 여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술에 관한 우리의 합의 수준이 여전히 갈길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난점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장르 물신화 현상 때문이다. 그 물신들 중의 하나가 모필이다. 종이와 먹과 더불어 동양한국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모필이다. 모필이라는 물질은 동양/한국화를 구성하는 매우 근본적인 요소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모필이라는 물질 그 자체를 동양한국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요소로 용인하는 자세는 상투적이고 박제화한 고정관념을 만든다. 박능생이 물신의 늪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바로 그 지점에 그의 육화 전략이 있다. 미디어의 물성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여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을 과거의 맥락으로 해석하면 진경 정신의 구현이다. 체험으로부터 새로운 예술이 나온다. 박능생의 육화 전략은 발과 눈과 손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그것은 관념산수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진경정신이다. 진경의 근간은 눈과 손뿐만이 아니라 발이다. 화가의 손은 그의 발을 전제한다. 손을 쓰려면 발품이 앞서야한다. 그가 오르내린 북한산의 봉우리들은 그에게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했다. 국립공원 북한산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미지의 포인트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익히 알려진 어느 어느 봉우리들을 박능생도 올랐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수많은 지점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단일한 화면 내에 정교하게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낱낱의 시점들을 하나의 화면에 재현해내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움직인 것은 박능생 회화를 상투적인 재현과는 다른 수행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그는 서울 풍경의 단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기 위해서 분주히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 박능생의 작업은 육화(肉化)한 회화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회화를 몸으로 그린 그림으로 이해하여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다매체 실험은 캔버스 작업으로 이어진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리는 번지점프 연작이 그것이다. 물론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새롭다거나 문제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의 손이 새로운 미디움을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는 데 있다. 토분을 써서 그린 난지창작스튜디오 인근의 풍경들도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자연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흙은 그 자체의 물성으로 인하여 문명비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종종 흙을 끌어들여 문명의 세계에 자연을 투척하는 데 사용하곤 했다. 박능생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은 흙의 사회학이나 흙의 경제학으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흙을 다루는 것은 곧 땅을 다루는 것이다. 흙은 사적 소유나 국가 경계와 같은 인류 문명의 잣대와는 달리 중립지대에 존재한다. 그러나 땅은 다르다. 소유가 있고 경계가 있는 것이 땅이다. 그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지점은 물질과 삶을 한 틀로 얽어내는 일이다.
박능생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대형 파노라마 도시 풍경은 회화적 매력 이상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의 근작 서울 풍경은 긴 프로젝트 가운데 앞부분에 해당한다.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도시의 풍경은 그가 나고 자란 땅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요즘에 들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전통회화의 장점을 몸으로 익혀왔다. 그러나 그 장점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는 고정된 삶의 틀과 물신화한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했다. 체제의 재생산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린 행보를 할 것인가. 예술가에게 주어진 새로움의 숙명이 그의 앞에 놓여있다. 박능생은 지금 그의 손과 발, 나아가 그의 눈이 자연과 문명, 고전과 동시대를 오가는 스펙트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넓고 깊어질 것이라는 데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럴 때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어떤 매체를 쓰고 있는가보다 어떤 서사를 구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시대에 따라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를 날리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시대의 새로운 메시지는 미디어의 이데올로기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