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는 큰 길, 인터시티

critic & column | 2009/10/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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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큰 길, 인터시티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넘어 도시와 도시의 관계로 다시 만나는 도시 네트워크의 시대이다. 국가간 경계를 허무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여파가 도시의 경계를 넘어 개인에게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전지구화 시대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성찰함으로써 국가는 물론 도시와 개인의 관계를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이 전시 <아트 인 부산 2009 : 인터시티>는 현대미술을 통해 도시의 구조와 그 속에 사는 개인의 의미를 성찰하는 동시에 도시 네트워크에 관한 인식과 감성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 합의를 모색하는 예술적 소통의 장이다. ‘인터시티’라는 주제는 도시의 상호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써 도시와 개인, 구조와 개체, 도시와 도시 사이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둔 용어이다. 도시를 하나의 구조로 파악하고, 나아가 그 속에 존재하는 개인을 유기적인 생태의 관점에서 성찰함으로써, 21세기 현재에 있어 도시의 의미와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구조로서의 도시‘와 ’행위자 주체로서의 개인', 그리고 '상호성에 입각한 네트워크' 등이 이 전시를 견인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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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구조로서의 도시

이 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도시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데 있어서 도시 자체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성을 찾아나서는 것은 물론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살펴볼 수 있다. 나아가 도시와 도시 사이의 제반 관계들을 상호성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관점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전시는 자율과 연대의 시각으로 도시의 상호성에 주목하는 프로젝트이다. 도시의 행위자와 네트워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 구조를 살피는 것은 가장 먼저 검토해야할 근본문제이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이자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조건이다. 도시는 거대한 물질 구조이면서 동시에 미세한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적 구조이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를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생태구조로 파악하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들의 도시 구조 성찰에는 낭만적인 기술(describing)과 날카로운 분석이 있으며 풍부한 해석이 공존한다.
근대와 탈근대, 육지와 해양, 식민과 탈식민 등 다양한 가치와 지표가 공존하고 있는 부산은 예술적 성찰의 여지가 매우 풍부한 도시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도시 정체성에 관한 진술과 해석은 과거와 현재, 거시와 미시, 관조와 응시를 두루 관통하고 있다. 나인주는 독특한 패널 부조 페인팅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부산의 구석구석을 흥미롭게 재해석한다. 지금은 사라진 나환자촌과 현존하는 산복도로 동네의 풍경을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처리한 송성진의 시각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구조적 특성을 흥미롭게 꿰뚫고 있다. 도시기록 프로젝트팀인 aBCD(Agents for Busan City Document)는 땅은 물론 바다와 하늘에서 찍은 사진으로 땅에 발을 디디고 선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부산을 스펙터클한 앵글로 보여준다. 서울과 부산 두 도시를 두 컷씩의 컬러 사진으로 담은 박홍순은 평범한 풍경이나 장면들을 컬러풀한 판타지의 세계로 재현한다.
강력한 국가권력의 작동은 도시나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예술적 발언을 촉발하기 마련이다. 중국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의 문제, 통합과 분열 등이 뒤얽힌 중국이라는 국가와 도시, 그리고 개인의 문제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왕지안웨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혁명과 진보 등의 문제에 있어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중국의 현실을 퍼포먼스 영상으로 드러낸다. 타이페이에서 베이징으로 이주한 펑흥치는 타이완과 중국의 미묘한 역관계를 암시하는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작업으로 거대한 권력으로서의 국가가 여전히 커다란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로육무이는 중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영웅적 인물들을 기념우표에 담아 편집한 프린트를 제시한다. 휘와이쿵은 레고블록을 이용해서 1989년의 천안문 광장을 재현한다. 이들 홍콩의 20대 작가들은 도시와 국가 사이에 선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 변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풍경은 도시의 피부만 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뼈와 살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매우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박은하는 두 개의 캔버스 페인팅을 붙이고 그 둘을 잇는 벽그림을 그림으로써 하나의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생장해나가는 도시의 구조를 은유한다. 오나카 코지는 도쿄 풍경사진은 파괴와 생성을 반복하는 변화무쌍한 도쿄의 도시 풍경을 보여준다. 카네무라 오사무가 보여주는 베이징, 상하이, 도쿄의 모습도 옛것과 새것의 교체를 통해 계속 변화하는 동아시아 도시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웽펜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거대한 구조로 변화해가는 첨단의 도시가 그 이면의 정신적 황폐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성찰한다. 배병우는 동아시아 서울의 창덕궁과 유럽의 알람브라 궁전을 담은 두 개의 사진으로 두 도시가 공유하는 뜻밖의 유사성을 들춰냄으로써 도시 구조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명상적 언어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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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 주체로서의 개인

도시라는 완고한 구조 속에서 꿈틀거리는 개인의 존재를 성찰하는 것은 도시를 역동적인 생태의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 전시의 참여 예술가들이 포착한 도시의 장면과 상황과 사건에는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 있다. 도시 속 개인들이다.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개인들이 움직이는 유동적 공간이다. 이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사회 구조 속 낱알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정교한 네트워크로 얽혀있는 거대도시 속의 행위자 주체인 개인을 성찰한다. 개인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거대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동조한 주체이지만 동시에 그 구조의 지배를 받는 객체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도시 속 개인은 도시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존재이며, 구조가 배태한 모순의 결과이기도 하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권능과 책무는 이러한 구조의 결정을 위반하며 종횡무진하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있다.
예술가에게 있어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서의 유동성은 가장 큰 자산이자 덕목이다. 다른 도시를 방문해 여행이나 임시 거주의 형태로 그 도시의 풍경과 삶을 성찰하는 예술가들의 존재는 창의적인 액터로서의 예술가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 작가 허윈창은 영국을 여행하는 퍼포먼스 사진을 통해서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교감을 만드는 예술적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마카오에서 부산을 찾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한 프랭크 레이는 부산과 베이징, 마카오를 찍은 사진으로 이들 도시의 구조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대비시켰다. 타이페이 작가 우다쿠엔은 일본에서 만난 유쾌한 퍼포먼서들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으로 역동적인 에너지를 가진 도시의 개인들에 주목한다. 첸칭야오는 멀티컬쳐가 공존하는 현대 도시의 다양한 상황을 퍼포먼스 사진으로 재현함으로써 도시간 문화혼융을 실천하는 액티비스트이다.
행위자 주체로서의 개인의 면면에는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공존한다. 이광기는 빠른 템포의 영상으로 도시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자동차들을 보여줌으로써 속도가 지배하는 도시 속에서 익명의 개인들이 결코 윤리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춰낸다. 페인팅을 가미한 종이박스 작업과 오사카와 후쿠오카 그리고 부산을 담은 영상 작업을 선보인 김성연은 군중과 개인, 흔들리는 도시의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통해서 표류하는 현대 도시인의 면면을 포착해 낸다. 코이에 마키코는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모습을 거대한 무리 속에 자리하는 대중의 일원으로 파악하고 그 개인의 모습을 ‘군중 속의 고독’에 빠진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다. 룩 칭은 홍콩의 거대한 백화점 공간에서 헬륨 풍선을 띄워놓고 안정적인 일상이 반복되는 공간에 유머를 던지는 퍼포먼스 영상을 보여준다.
개체와 군집의 관계는 개인과 사회, 도시인과 도시의 구조를 파악하는 핵심 개념이다. 오오키 치나미는 인간성의 실체를 개체와 군집의 차원에서 되묻는다. 그는 인간성을 묻는 방법으로 신체의 손상을 의미하는 피 묻은 밴드를 나열함으로써 날것의 신체성으로부터 인간 개인들의 실체를 탐문한다. 개체로서의 인간이 군집을 통해서 지구의 지도를 만들었다가 다시 해체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타카하시 케이스케는 현대사회에 있어 구조와 개인, 군집과 개체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순택은 폭력적인 파괴로부터 새로운 구조를 생성하는 서울과 거대하고 정교한 구조 속에 낱낱 개인을 담고 있는 평양의 모습을 통해서 구조화한 권력의 내면을 보여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이는 빡빡한 구조와 그 속에서 작가나마 차이를 드러내며 꼬물거리는 개인이 공존하는 도시에 관한 이들의 깊은 성찰이 매우 명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행위자 주체로서의 개인을 재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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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성에 입각한 도시 네트워크

예술가들은 만남을 매개하는 메신저들이다. 도시간의 네트워크는 가까운 이웃들을 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전시는 동아시의 각 도시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아시아 도시 네트워크 프로젝트'이다. 예술적 소통을 매개로 네트워킹을 모색하는 이 전시는 동아시아 현대미술 작가들을 통해서 낱개와 얼개, 개인과 사회, 개체와 군집, 개체와 구조 등의 관계 속에서 도시와 도시, 도시와 개인, 나아가 개인과 개인의 의미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찾아보는 장이다. 미래의 세계가 국가단위 정체성보다 도시단위의 정체성이 중요하게 부각할 것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 간 네트워킹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가해줄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미래를 향해 열린 가능성이다.
민족과 인종, 계급, 성별 등의 차이와 차별을 넘어서는 일은 도시 상호성의 출발점이다. 김인숙은 재일교포들의 거주공간을 통해서 거대한 힘으로서의 구조와 그 구조 속에서도 과거의 기억과 흔적을 이어나가고 있는 개별자로서의 재일교포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임영선은 울란바토르와 프놈팬, 부산 세 도시의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동아시아 도시들의 표면적 차이와 그 아래의 동질성을 끄집어낸다. 아시아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담은 박경주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국가단위의 정주개념을 넘어 이주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북한 출신의 화가 선무는 서울과 평양을 대비시키면서 주체탑과 십자가, 광화문과 북한 소녀들, 남북의 젊은이 등 분단의 현실을 넘어서는 네트워크를 꿈꾼다.
네트워크의 시대를 은유하는 명상적인 작품들도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김홍희는 몽골 고비사막을 포착한 사진 이미지를 인체를 은유하는 화면으로 제시하면서 그 가장자리에 촬영 위치의 인공위성 사진을 넣음으로써, 교통과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정보화시대의 예술적 표현에 관해 또다른 비전을 제시한다. 자연에서 신체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김홍희의 사유는 국가와 도시와 개인 사이의 네트워크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감성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리휘는 암흑 속에서 쏟아지는 레이저 빛을 이용해서 도시상호성의 시대를 시각화했다. 개인의 신체를 향해 뻗어나오는 촘촘한 빛의 다발이 은유하는 바대로 리휘의 문(gate)은 도시상호성 시대의 문명을 명상적인 시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전준호의 달러 지폐 애니메이션은 제국의 심장인 미국 백악관의 창을 지워버림으로써 국가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인터시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문명의 전환을 은유한다.
영화와 음악, 문학 등 예술인들과 다른 분야의 전문인들도 인터시티를 향한 예술 소통에 동참했다. 직업적인 미술인이 아니면서도  수준급의 사진 작품을 선보인 스페셜 게스트들의 사진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 김수우와 영화감독 김희진은 흑백의 자갈치 풍경과 동물이미지를 포착한 야경 사진으로 부산이라는 도시의 일상성과 상투성을 끄집어낸다. 가수 정태춘은 서울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서울의 풍경을 소비하는 방식을 전망하고 있다. 가수 박지윤과 방송인 이상벽은 자연의 모습에서 생명과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약사 이경희와 치과의사 이동호는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도시에서 접한 풍경과 사건들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나서 소통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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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는 신진과 중진의 시각이 동행하며, 다양한 매체가 공존한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사진과 영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도시상호성을 성찰하는 데 함께 했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활동하는 참여 작가들은 도시의 공간, 삶, 장소성, 역사성 등을 유기적인 생태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도시의 풍경과 사건을 다루는가하면, 도시의 구조와 그 속의 개인의 다양한 면면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공존한다. 나아가 거대도시의 배리를 파헤쳐봄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을 파악해보고 거대도시의 구조 속 행위자인 도시인을 유기적인 주체로 파악하고는 비판적 시각의 성찰을 모색하고 있다. 도시와 도시, 도시와 개인, 예술가와 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실질적인 네트워킹이다. 그것은 도시 상호성에 입각한 네트워킹으로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 도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교류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예술적 실천이다.
유럽에서 경제 블록화의 단계를 넘어 국가와 국가가 연대하는 국가연합 형식의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국가간의 긴밀한 네트워킹은 새로운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구속이다. 그것은 미국 중심의 패권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권적 질서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동아시아 국가연합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그것은 필경 지금의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질서 재편을 야기할 것이다. 인터시티는 21세기의 새로운 권력 질서 속에서 거대한 힘의 대결이 아니라 섬세한 네크워킹을 촉발하는 개념이다. 도시의 구조와 그 속의 개인을 성찰하는 일, 그리고 도시 간 상호연대의 길을 넓게 트는 일, 미래로 가는 더 큰 길, 인터시티의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김준기(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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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3 11:05 2009/10/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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