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담론이라는 거대서사, 홍성담
critic & column | 2010/05/28 21:25
홍성담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의 흐름을 대변하는 실천적인 예술가이다. 현실과 발언, 임술년 등 일련의 예술가 그룹들이 주도한 전시장미술운동 진영은 매체의 확장과 형상미술의 방법론을 가지고 당대의 현실을 다룬 비판적 리얼리즘 경향의 작가들이다. 반면에 광주자유미술인협회와 두렁과 같은 그룹들이 주도한 현장미술운동 진영은 걸개그림, 공동창작, 시민교육 등의 새로운 미술운동을 내세우며 당대의 현실 속으로 뛰어든 행동주의 경향의 작가들이다. 홍성담은 광주자유미술인협회의 리더였다. 그는 80년 광주항쟁의 현장에 붓을 들고 뛰어 들었으며, 이후에 목판화 연작으로 참혹한 살육의 현장과 시민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널리 알렸다. 80년대 후반에는 민미련을 결성해서 전국적인 현장미술운동을 주도했으며 8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다.
홍성담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예술가의 몸으로 치러낸 격동의 시대에 대한 대응은 냉철한 자기와의 투쟁과 혹독한 고통을 동반해야만 했다. 그는 투쟁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차분한 성찰의 시기를 보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그 성찰의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이다. 홍성담의 작품 경향을 분기하는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의 간극을 넘어선다. 그의 2000년대 이후의 근작들은 90년대 중반까지의 전투적인 리얼리즘 미술운동을 저항과 명상이라는 주제의식 아래 성찰적 자세로 승화한 결과물들이다. 2000년대 이후 그는 현장과 전시장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판적 성찰을 통해서 동아시아 담론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활동해왔다.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이후 10여년에 걸친 홍성담의 근작들을 모아 선보인 대규모 기획전이다. 전남도시사 공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으로 바꾼 상록전시관에서 열린 이 전시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예술가의 근작들을 돌아봄으로써 민주주의와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의미를 새긴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홍성담 개인전이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라는 역사의 주기 계산에 따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전시의 핵심은 성찰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가의 실천이 자기세계의 자장 안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사유와 실천의 결과라는 점을 홍성담이라는 예술가를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여 우리는 홍성담의 체험이 어떠한 실천을 매개했는지 그리고 그 실천은 어떤 경로로 또 다른 체험과 실천을 매개했는지를 차분하게 살펴봄으로써 그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 광주 오월은 한국사회를 민주주의 시대로 변환한 분수령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예술적 실천의 영역으로 이끌어냈던 홍성담은 1999년의 개인전 <탈옥> 이후 동아시아 담론을 다뤄왔다. 이 전시는 그의 2000년대 이후 근작들을 모아 흰 것과 검은 것, 빛과 물 등의 이원적 요소를 변증법적 통합의 차원에서 다뤘다. 두 가지 요소를 상호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제국주의 비판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관한 그의 메시지는 역사 성찰과 현실비판의 두 축이 함께하는 큰 이야기이다. 미소설화를 중얼거리는 이 시대에 거대서사를 펼치는 예술가 홍성담에게서 거장의 풍모가 드러나는 이유이다.
한 예술가에 관한 온전한 이해는 특정한 형식이나 도식으로 그 작가를 규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5월광주작가 홍성담’이라는 명명은 광주항쟁정신이나 홍성담이라는 예술가 모두에게 유익한 표현이 아니다. 특히 예술가가 역사 속의 한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당대의 실천 결과를 평생의 업적이나 업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가 스스로 퇴행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비상한 노력을 하지 않고는 벗어나기 힘든 굴레일 수 있다. 우리가 홍성담에게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행동주의자의 면면을 발견하는 것은 스스로 광주탈출을 감행하여 그 굴레를 벗었기 때문이다. 물론 홍성담 이외의 많은 예술가들이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성과 동시대성을 안고 부단한 자기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홍성담의 경우 스스로 그 상징성의 무게를 덜어놓음으로써 또 다른 경로의 사유와 실천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홍성담이 동아시아 담론을 표방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광주라는 도시, 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 안쪽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대한 열망을 근저에 깔고 동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들을 다뤄왔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 비판 연작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한국의 문제에서 동아시의 문제로 확산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제국주의 비판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뿐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비판은 한국과 미국, 나아가 중국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열렬한 갈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홍성담은 일본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특수성을 국가주의 비판이라는 보편성의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의 국가주의 비판은 아나키즘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아나키즘의 사유와 실천은 홍성담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 때 진보의 모든 것을 민족주의 담론과 등치시켰던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홍성담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왔다. 그것은 마치 일제강점기의 신채호가 아나키즘과 민족주의라는 상반된 가치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과도 유사하다. 그것은 20세기 초의 신채호가 처해있던 동아시아의 상황과 21초의 홍성담이 맞이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현실 사이에 흐르는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민족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치열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 모순을 넘어서려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운명일 것이다. 문제는 민족주의 담론이 민족국가의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유와 실천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데 있다. 신채호가 그랬던 것처럼 홍성담 또한 국가의 테두리는 넘어서는 평화체제를 꿈꾸고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중국, 나아가 대한민국 안에 도사리고 있는 국가주의의 위험성을 비판한다.
홍성담의 서사 구성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20세기의 문화식민 상황을 거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있어 수천년동안 이어온 신화의 그 넓고 깊은 이야기들은 삶 속에 녹아있는 흔적들은 있으되 큰 뿌리를 이루는 원형은 낯선 것이기만 하다. 그는 이 신화의 원형을 찾아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언어로 재구성했다. <신몽유도원도>나 <가화> 등의 대작들은 전통회화의 서사구성 방식을 차용해 삶과 죽음, 실재와 가상, 과거와 현재의 틀을 넘어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야스쿠니 연작은 동아시아 담론을 풀어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시나리오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그는 일본의 국가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야스쿠니를 통해서 상징투쟁을 벌여왔다. 그는 이 연작을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전지구적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일체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확산해왔다.
<야스쿠니의 미망-5>는 임신한 여성과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 수탈당한 일본 여성, 온갖 잡귀 등을 등장시켜 국가주의의 미망이 도사리고 있는 야스쿠니의 위험성을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간코쿠 야스쿠니-1>은 박정희 전두환, 삽, 경찰, 청화대, 용산 남일당 등의 상징들 동원해서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국가주의를 들춰내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는 탁경현>은 가미가제로 산화하기 전에 마지으로 아리랑을 불렀다는 조선인의 영혼이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 묶여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입체 설치 작품이다. 홍성담은 1993년 출옥 이후 매일 매일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다. 대작 페인팅이 아니라 소품 드로잉에 해당하는 이 작품들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의 예민한 촉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분단상황을 압축한 <평양소견>, 광주항쟁의 주역인 선배를 그린 <합수 윤한봉>, 국가주의의 그림자를 포착한 <태안반도>, 국가폭력의 실상이 드러난 <용산참사> 등에 관한 그의 단상들이 담겨있다.
10년여에 걸친 홍성담의 근작들은 87체제 이후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리얼리즘 예술가의 고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87년 이전의 리얼리스트들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서 현실 비판과 참여를 실천했다면, 이후의 예술가들에게 있어, 특히 홍성담에게 있어 보다 중요한 쟁점은 도시나 국가, 민족 등의 규정을 넘어서는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는 일이었다. 특히 민족주의가 진보적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점, 특히 홍성담의 경우 진영테제 속에서 민족주의 담론과 가까웠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2000년대 이후 근작들이 국가주의 비판을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 담론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지속되는 한 영원한 난제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분단으로부터 유래한 이 복잡다단한 모순을 관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국가, 자본, 개인, 생태, 문화 등의 문제들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담론을 지향하는 홍성담의 거대서사는 광주와 한반도의 특수성을 동아시아와 세계의 보편성으로 확산했다. 광주 문제가 민족, 국가, 동아시아, 세계의 문제로 확산하면서 특수와 보편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홍성담은 현실의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 관한 예술적 실천이라는 미시적 담론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원형과 평화체제라는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홍성담을 민족과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아나키스트로 재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