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적인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문화정치

critic & column | 2006/09/25 05:36


다문화의 도시공간으로 스며드는 탈근대적인 배치의 미학

믿음은 개인적인 차원의 가치관으로부터 가족에 대한 관념, 종교적 신념, 국가에 대한 신뢰, 계급적 위계에 대한 개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 속에서 축적된 생각의 덩어리이다. 따라서 믿음은 국가, 종교, 가족, 가부장, 계급 등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와 연관을 맺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호명은 개인을 굳건한 믿음을 가진 주체로 불러 세운다. 인간의 제도와 관행, 사유와 감성마저도 이데올로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 굳건한 믿음의 현상태이기 때문이다. 올해 최초의 행사를 개막한 2006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주제는 신념(信念)이라는 한자말과 병기된 ‘BELIEF(믿음)’이다. 이 전시는 믿음이라는 개념어를 인간 내면의 성찰적인 가치의 문제에서부터 교육을 통해서 재생산되는 사회의 관습이나 통념, 체계적으로 제도화한 종교적 신념에 이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싱가포르의 다문화 상황을 지탱하고 있는 다종교의 공존현상을 예술 프로젝트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싱가포르의 다문화 현상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종다양성이 인간의 믿음을 제도화한 종교의 발생학적인 배경을 매우 역설적으로 리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문화정치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비엔날레라는 시각예술축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비집고 자리를 잡아온 비엔날레가 고도의 문화정치의 형태로 아시아의 각국에서 새롭게 조직되고 있다. 우리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합된 대규모 상징투쟁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동시대 예술 담론의 현주소를 확인하곤 한다. 이러한 비엔날레 문화정치는 때로는 과시적인 공공성에 경도되어 실질적인 예술적 담론은 배제된 채 맹목적인 인터내셔널의 미망에 사로잡힌 공허한 허울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아가 그것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하는 ‘규모의 경제’ 논리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규모의 예술’을 강변하면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공식적인 예술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도양과 태평양의 중간, 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연결 지점에 위치한 도시의 지정학적인 특징에 맞게 개방적인 문화환경을 가진 인구 4백만의 도시국가 싱가포르도 국제 비엔날레를 만들었다. 세계화와 신생 경제강대국들의 출현 등 여러모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는 첨단의 자본주의 도시국가 싱가포르 역시 비엔날레를 통해서 문화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야심찬 프로젝트를 띄운 것이다. 수상이 직접 나서서 국가차원의 지지와 성원을 보낸 이 프로젝트는 전시팀과 자원봉사자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행정력을 발휘함으로써 매우 조직적인 문화정치의 포석을 실감하게 했다.
근래 들어 국제 비엔날레들은 예술적 실천에 대한 비평적 접근보다도 그것의 문화정치적 함의에 관심으로 가지고 노골적으로 국제적인 경쟁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엔날레를 통해서 예술작품을 확인한다기보다는 예술제도를 실감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문화지형 속에서 비엔날레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국제적인 문화정치 속에 담긴 제도적 역기능들 속에서라도 예술적 실천의 순기능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인데, 싱가포르비엔날레는 최근에 아시아지역에서 열린 여러 개의 대규모 미술행사들과 차별화 가능한 몇 가지 비평적인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38개국 95명 작가들이 참가해서 198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예술감독을 맡은 모리미술관 디렉터인 후미오 난조는 로저 맥도날드(일본), 샤르미니 페레이라(스리랑카/영국) 유진 탄(싱가포르) 등 아시아출신의 큐레이터들을 비롯해서 전 세계 35인의 네트워킹 큐레이터들과 협업했다. 아시아 출신 큐레이터들을 대거 배치한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번 프로젝트는 아시아 작가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 등에서 온 범아시아 작가들이 절반을 훨씬 웃도는 비율을 차지하게 함으로써 서방세계의 문화독점으로 일관하는 아시아의 국제 비엔날레들의 관행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차별화의 또다른 지점은 출품작들이 19개의 장소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은 전통적인 전시장보다는 일반 도시공간의 현장들(venues)이 많다. 종교공간, 공공기관, 비어있는 건물 등 전형적인 전시 공간이 아닌 곳들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전시현장들은 다종교 다문화 사회로서의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싱가포르 특유의 공존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배치는 전시 주제인 신념을 가시적인 형태로 구조화한 질료로서의 도시공간과 건축을 더욱 더 도드리지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비평적 이슈를 제공하고 있다. 주최 측은 도심 중앙부와 외곽에 골고루 위치한 현장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 현장들을 관람동선으로 연결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도시공간 속의 탈근대적인 배치
무엇보다도 시청 청사에서 전시가 열렸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실감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특유의 엄숙주의로 유명하다. 그것이 타율적인 통제이든 자발적인 절제이든 간에 매우 엄격한 규율로 가득 찬 도시의 시청 청사에서 전시된 29명의 출품작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리노베이션중인 청사의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은 매우 도발적이다. 청사 건물 외벽에 체계화된 신념의 형태인 기성의 고정 관념들을 힐난하는 제니 홀저의 텍스트들을 상영한 건 갤러리 공간에서 그를 만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생동감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엄격하다는 법정에서까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이 아무리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배심원들의 위엄이 서린 법정에서 벌어진 파격적인 시각 언어들은 잔잔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남아공의 알렉산더는 마치 싱가포르의 통제 정책을 우롱하기라도 하듯 원숭이들이 테이블 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싱가포르 호추니엔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맞춰 법정에서 해프닝을 벌이는 뮤직 비디오를 상영했으며, 전준호의 는 달러화의 도상을 차용해 한국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아메리카 제국의 배타적인 신앙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12월에 공식 개관을 앞두고 있는 국립박물관에서는 10여점의 대형작품들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전시공학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Bigert & Bergstrom의 동영상 인터뷰 <최후의 만찬>은 죄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제공한 요리사들을 담아서, 다빈치의 회화 도상을 사진으로 재현한 스기모또 히로시의 같은 제목의 작품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푸피아 차트차이는 심장과 성기를 꺼내든 화가를 그린 대형 초상으로, 모리 마리꼬는 실시간 조절장치의 LED를 내장한 유리 조형물로, 니콜라이는 레이저빔을 쏘는 초대형 구조물로 각각 비가시적인 형태의 신념을 포착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오래전에 병영으로 쓰였던 탕린캠프에서는 4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훨씬 더 날것에 가까운 강렬한 메시지들을 담은 영상, 설치,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출품했다.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종교, 인종, 세대 간의 충돌과 갈등을 표출한 이들 작품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영상 작업들이었다. 레바논의 로이 사마하는 강렬한 잡음과 스크래치를 이용한 비교적 정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언어적이면서도 현상학적인 관점의 단채널 비디오 작업을 선보였다. 중국의 탕마오홍은 도발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였고, 스위스의 듀오 그룹 콤앤콤은 퍼포먼스 비디오와 싱가포르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그린 수백장의 캐릭터 작업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신선한 참여형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거대 전시장들에 비해 훨씬 더 생동감 넘치는 예술적 소통 가능성을 가진 곳이 십여개의 군소 전시 현장들(venues)이다. 박물관 앞의 싱가포르경영대학, 건너편의 싱가포르미술관을 비롯한 여타의 전시장과 특히 이례적인 것은 신념이라는 주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종교사원에서의 전시이다. 이런 배치가 가능했던 것은 싱가포르라는 도시의 특성과 주제가 매우 큰 몫을 차지했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근간으로 하는 인간의 본성을 뭉뚱그린 것이 종교적 신념이다.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의 힘은 인간의 본성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길들인다. 싱가포르에는 이러한 종교 이데올로기가 매우 평등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의 도시 국가로 유명하다. 화교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아시아의 모든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다문화 현상이 지배적이다. 주류문화라고 할 것이 없이 이런저런 문화가 뒤섞여 있는 곳이다. 종교가 다양한 것 자연스러운 일이다.
종교로 인해 갈등을 겪는 인접 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작품 전시보다 더 앞서는 것은 수많은 종교공간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있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문화 자체이다. 가톨릭, 유대교, 인도에서 온 스리 크리스티난, 불교, 개신교,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독특한 제례가 열리는 종교사원에서 예술을 찾아보는 일 자체가 매우 극적인 현상으로 읽힌다.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믿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도시 자체의 정체성을 다시 둘러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여타의 비엔날레들보도 훨씬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체계적인 영역 분할을 미덕으로 여기는 근대 패러다임을 넘어서 예술영역과 생활영역의 탈분화를 촉구하는 이러한 배치야말로 탈근대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시의 특성에 맞는 좋은 주제와 장소 선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탁월한 문화현상들을 무대로 펼쳐지는 미술행위가 삶의 현장에서 머물며 스며들기보다는 일시적으로 과시적인 공공성을 보이려는 모더니즘 미술의 습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얼핏 보아 문화적 정체성이 애매한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다드와 후기식민주의로 포장된 전형적인 ‘글로벌 시티’인처럼 보이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싱가포르의 모습이야말로 진정 로컬하다. 식민지를 겪고 난 후에 싱가포르는 특정한 문화적 뿌리로부터 기원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다원화 되어 있다. 믿음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더욱 부각된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정체는 그래서 더욱 더 신랄하게 로컬한 문화전략을 제공한다. 그러나 전략적 배치에 비해서 전술적인 실천은 다소 미흡하다. 현장(venue) 속에서의 장소특정성(site specific)을 강조하고 있지만, 198명의 참여작가 가운데 단 10명의 싱가포르 작가들만이 참여했다는 점, 절반에 가까운 작품이 이미 다른 공간에서 선보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싱가포르라는 도시공간 속에서 실질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통해서 지역성을 표방하는 작업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도시 자체를 부각시키는 데는 일정정도 성공했지만, 도시 공간의 에너지를 예술적 창작과 향유를 통한 문화생산의 단계로 끌어올리려는 구체적인 장치가 부족했다. 현지에서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부 작가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자생적인 활동과는 무관한 국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행사가 아직 20세기 패러다임의 과시적인 국제미술 박람회 수준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대규모 신생국제미술행사를 위해 조직된 현장성이 아닌,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시민들을 통해서 포착된 지역성과 공공성을 생동하는 현장미술(insitu art)의 차원으로 포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단 싱가포르비엔날레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공간을 예술적 실천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면 도시공간과 시민을 상대로 일시적인 문화정치의 장을 벌이는 것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 탈근대적인 예술공론장을 형성하는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 싱가포르비엔날레의 획기적인 시도가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이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할 대목일 것이다.

김준기(미술비평, www.gimjungi.net)

월간미술 2006.11월호 기고문
2006/09/25 05:36 2006/09/25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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