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예술 개념에 뿌리를 둔 새로운 공공예술
critic & column | 2008/12/03 18:35
다원예술 개념에 뿌리를 둔 새로운 공공예술
I. 머리말
정책적 용어로부터 출발한 다원예술이라는 예술개념을 가지고 예술의 공공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공예술 공모 프로젝트가 태동했다. 이 글은 200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공공예술이라는 개념이 예술생태와 만나면서 어떤 성과를 남겼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고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비평적 논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물론 새로운 공공예술이라는 이름의 공모 프로젝트를 통해서 진행한 13건의 사례들만을 토대로 평가와 전망을 만드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제 막 태동하는 개념이자 영역인 공공예술의 새로움을 일거에 논의할 여건이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문화다원주의에 뿌리를 둔 공공적 다원예술 창작활동의 전모를 파악해서 그 흐름을 일별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은 2007년 한 해 동안 벌어진 프로젝트들 가운데서, 특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위원회가 벌인 새로운 공공예술 공모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공예술의 향배를 가늠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되, 향후의 새로운 비전을 위해서 필요한 이론적 조건들을 탐색해 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새로운 공공예술은 다원예술이라는 개념과 어떤 관계항 속에 놓이는가? 그렇다면 공공적 다원예술이라는 이름이 설정 가능한가?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관한 실천적 사례와 비평적 관점이 이제 막 태동하는 시점에서 나올 법한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새로운 공공예술에 관한 우리의 경험 축적이 매우 일천하다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가 예술 영역을 사회 구조의 한 부분으로 구조화 하는 과정에 있어서 장르별 전문화라는 근대적 기획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현실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한 가지 확인 할 것은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은 전문영역의 으로의 분화(分化) 과정을 거쳐 온 근대성 기반의 예술 개념을 넘어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탈근대성의 맥락에 놓인 초기 단계의 진행형 목표라는 점이다. 그 가운데서 일종이 프로모션 개념으로 고안된 공모 프로젝트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논의의 좌표이다. 따라서 이 논의는 예술의 공공성에 관한 새로운 성찰과 예술적 자율성 사이에 놓인 긴장관계를 통합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야말로 다원예술과 공공예술 양자의 공통분모라는 점을 전제로 출발한다.
II. 예술의 공공성을 향한 여섯 갈래의 길
탈장르와 혼합장르, 새로운 예술실험 등의 영역을 포괄하는 다원예술 분야가 예술의 공공성에 주목해서 신설한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 공모는 2007년에 첫 해를 맞았다. 첫 해에 공모과정을 거쳐 문예진흥기금을 활용해서 진행한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모두 열 세 건이다. 이들 열 세 개의 사례는 여섯 갈래의 길을 만들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들 갈래는 상호 중첩하며 긴밀히 연관된다. 어떻게 보면 가능한 한 많은 갈래들을 두로 충족시키는 것이 이상적인 프로젝트로 비칠 수 있겠지만,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면 특정 맥락에 충실해서 나름의 사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 점을 전제로 각 프로젝트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거나 나름의 장점을 보이고 있는 대목들에 주목해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의 논점으로 압축할 수 있다. 개발과 발전의 논리에서 소외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재생,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기반으로 하는 아카이브, 예술생산의 차원을 소통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예술교육, 주민 공동체와 협업하면서 특정 지역을 예술생산의 장소로 만드는 마을 만들기, 전문화한 공연장을 벗어나서 생활영역으로 파고드는 공연, 예술생산과 예술소비의 순환고리를 만드는 매개역할 등이 그것이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이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맥락에서 주목해볼만한 프로젝트들이다. 서울 영등포의 문래동에 자리잡은 경계없는예술센터에서 실시한 <경계 없는 예술 프로젝트@문래동-유랑극단의 시간여행>은 예술의 치유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공연예술의 장소, 장르, 국경 등을 넘어서는 데 있었다. 특히 슬럼화 한 도심에서 펼쳐지는 거리예술이라는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재시장을 중심으로 한 쇄락해가는 도시의 거리에서 다양한 공연예술이 펼쳐졌다. 이들의 활동은 일시적인 행사를 위해서 문래동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도시의 슬럼가를 찾아들면서 만들어진 예술가 공동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축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해를 넘기면서 보다 본격적인 예술가 공동체가 꾸려지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공연예술 뿐만 아니라 시각예술을 비롯한 여타 장르의 예술가들이 문래동 공동체를 생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 나아가 서울시의 문화정책 차원에서 대규모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이 그곳 문래동을 근거지로 기획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사례를 남겼다.
도시재생과 커뮤니티 아트의 차원에서 동시에 주목할 만한 플라잉시티의 작업도 있다. <메이드 인 청계천- 청계천 디자인 개발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청계천 일대의 도시생태를 연구하고 개입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플라잉 시티의 기획이다. 청계천은 도심 공동화 현상에 따라 정체되어 있다가 얼마 전부터 개발붐이 일어날 곳이다. 막강한 기술력과 정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산업구조를 갖추지 못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점차 쇄락해 가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디자인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재발견하고 산업단지로서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플라잉시티의 지속적인 화두인 도시생태 프로젝트로서 커뮤니티아트, 아카이브와 연구 등의 맥락에서 시사점을 주는 프로젝트이다. 예술 생산을 공동체의 문화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로 연결해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려는 시도로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연구와 기록에 기반한 아카이브 프로젝트들도 공공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귀항 : 군산내항의 역사적 생산자와 메모리얼 플레이스 만들기>는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진행한 ‘아트인시티 2006’의 공모프로젝트인 해망동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화국리라 팀이 군산에서 벌인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금강 하구의 쇄락한 마을인 해망동의 산비탈에 밀집한 마을을 재해석한 벽화, 설치, 아카이빙 작업을 토대로 군산 내항을 대상으로 공간작업, 표식작업, 노동요 복원, 아카이브 자료집 발간 등을 모색했다. 해당 지역의 번영회나 상조회와 협업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끌어들인 기획이 돋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와 공동체의 물리적 거리와 감성적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술 실천의 공공성과 지역성이라는 문제를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이중재 등의 예술가들이 참가한 <새대추리 프로젝트>는 2007년 초에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대추리 마을의 상처를 새로운 마을에 대한 희망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을 만들기 제안 프로젝트이다. 쫒겨난 주민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 모여 살고 있는 임시 거주지를 찾아 그곳 주민들과 대화하고 협업해서 새로운 마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곳을 평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마을로 만들 것을 제안하는 자료집을 발간했다. 사진과 드로잉, 컴퓨터 그래픽,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새로운 마을인 새대추리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근현대기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게 공동체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추리 마을의 전망을 예술적 차원에서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전승일의 <코리안 제노사이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영상기록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민간인학살 관련 단체와 협업하여 각종 진상규명운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자료를 가공해서 인터넷 매체를 비롯한 여러 통로로 공론화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예술이 기록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이 크게 새로울 것은 없으나 사회적 금기와 억압의 상황에 놓여있던 민간인학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사회적 공론장을 예술적 공론장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공공예술의 장소 특정성 편향을 넘어서 의제 특정성에 접근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관심사가 예술언어 그 자체의 고유한 스타일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상황에서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증폭시키는 예술적 공론장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례를 남겼다.
대안 교육의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는 프로젝트들은 그동안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놓여있던 영역을 새롭게 주목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주노동자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박경주의 <샐러드 프로젝트>는 다문화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적 소수자로 방치되어 있는 상황에 개입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성단체에서 행하고 있는 다문화 프로그램을 재검토하고, 문화예술 교육자나 활동가들과 협업을 하며, 이주노동자를 문화생산의 주체로 세우고,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놀이로서의 교육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연구와 분석, 워크숍, 프로그램 실행, 설문조사, 평가 등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문화활동가, 이주노동자, 미술치료사, 심리치료사, 인류학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기획이다.
예술가 이제의 <산따의 투유투미 프로젝트>는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 마석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기획자가 이주민 어린이 산따와 함께하는 예술동행 프로젝트이다. 마석은 서울 외곽의 남양주에 있는 가구단지로 유명한데 그곳 마을의 초등학교에는 이주민 어린이들이 다수 재학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소외된 아이가 자신을 새로운 문화생산의 주체로 자각할 수 있도록 예술가로서의 소통을 시도한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교육의 목표와 프로그램을 내세워 아이를 대상화하지 않고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술가와 지역공동체의 지속적인 만남과 협업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기획이다. 비물질적이며 비가시적인 소통으로 개인과 개인의 공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새로운 합의를 모색했다는 점에서도 신뢰를 주는 프로젝트다.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와 결합한 사례도 있다. 시민문화네트워크티팟의 <배내골 예술마을 조성사업>은 경남 양산시 배내골 마을에서 노촌마을의 공동체를 프로모션한 사업이다. 시골마을이 자생성을 가지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경제적 여건을 꼽는다. 그러나 농업이 차지하는 경제적 위치를 감안해 볼 때 오늘날의 농촌 마을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공동체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활력의 요소를 발견하는 일이다. 농촌 마을에 숨어있는 전근대적인 통합적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발굴하는 일이야말로 공동체의 전제조건이자 근대성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예술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해와 소통을 전제로 예술공원 조성, 예술가 단기거주, 마을잔치 등의 프로그램으로 예술가들과 마을 구성원들의 동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아트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대구공간문화센터의 <삼덕동마을 공동체 작업장 프로젝트 2007 문화>에서는 오랫동안 진행된 대구 삼덕동의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이 마을은 대구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일제시대부터 근현대 시기 한국 도시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두루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작업장을 정비하고 워크숍을 통해서 생활미술, 재활용미술, 공작작업, 마을잔치 등 입체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의 미덕은 그것이 다원예술 또는 공공예술이라는 예술적 차원의 정책 목표와 결합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자생성 강한 지역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는 데 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예술-생활 통합형 프로젝트가 새로운 공공예술 개념과 만나 보다 전향적인 차원에서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갔다는 점에서 매우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벌어진 공연 프로젝트들도 새로운 공공예술의 논점에 접근하는 실험을 모색했다. 작은 소리 열린 공간의 <A carnival-시공간의 몸 3>는 2006년에 세운상가 유휴공간에 설치한 전시물과 설치물 등의 공간을 더욱 활성화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이다. 음악과 타분야 예술의 협업을 시도하며, 현장의 지형과 시설물들을 활용한 접촉 빈도수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써 지난 수년간 작은 소리 열린 공간이 실험해왔던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적 실험을 확산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 프로젝트는 여느 공연기반의 기획들과 달리 음악이라는 시간예술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일회성의 한계를 최소화하고 지속가능한 소통으로서의 새로운 공공예술을 모색했다.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벽 in open space at 1830 project>는 퇴근 시간인 18시 30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공연을 벌이는 사업이다. 다양한 오브제를 동원하고, 일상공간을 공연공간으로 만들며, 관객의 참여를 끌어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다양한 실험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는 공연의 장소를 극장에서 공공장소로 옮겼다는 것 이외에는 새로운 공공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일시적인 장소에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의 공공성이란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프로젝트와 예술의 공공성을 등치시켰을 때의 한계나 오류 상황을 가져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매개 기능에 주목한 연구, 세미나 프로젝트도 있었다. 문화연대의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위한 예술행동 매개 프로젝트>는 예술행동의 전모를 이론적, 실천적 차원에서 점검해보는 연구, 토론, 기록 작업이다.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이 창의적인 수준에서 상호 공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이 프로젝트는 액티비즘 논의와 맞물려 있는데, 새로운 공공예술의 맥락을 비물질적인 공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진화한 형태의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공공예술 논의가 자칫 난삽한 사례생산 위주로 흘렀을 때의 위험성을 보완해주면서 담론 생성에 주목한 시각이 돋보였다. 예술행동이라는 개념은 지금가지 존재했던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비판 기능을 동시에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써 이미 존재했던 실천적 지형들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대안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다.
‘예술공간으로서의 거리'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거리극연구소의 <거리극 세미나 및 워크샵 >은 거리극의 역사와 현재를 점검하며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실천적 장으로서의 가능성을 찾는 담론생산 프로젝트이다. 거리극은 이미 1980년대 이래 공연예술의 대안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오랜 경험을 축적해왔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는 이러한 거리에서의 몸짓을 점점 낯선 상황으로 만들어왔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공공예술이라는 관점에서 거리극의 이론과 실재를 나누는 세미나와 워크숍을 엶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의 거리극 활성화는 모색한 기획이 돋보였다. 특히 공연분야에 있어서 공공성을 모색하기 위한 실천적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는 매우 시사적이다. 공공공간에서의 예술적 실천이 공간 예술 분야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예술 분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 결과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2008년 다원예술위원회의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 공모가 선정한 지원대상 프로젝트들도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공동체와 공통의 관심사를 개발하고 협업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2007년 프로젝트들과의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소수자 연대의 성격이 강한 도시 공동체에서 새로운 마을을 준비하고 있는 농촌 마을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공공예술가들이 협업하고자 하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라디오 방송국, 버스정류장 꾸미기, 마을 만들기, 영상 프로젝트, 창작 워크숍, 예술과 대안경제 연구 등 예술적 실천을 위한 방법론도 매우 다양하다. 이들 프로젝트들은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공통의 관심사로 설정하고 있다. 사회운동과 예술운동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어느 일방의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만 사유하던 이원론적인 실천방식을 넘어서는 것이 새로운 공공예술의 차별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실천은 예술행동의 관점에서도 유의미한 사례들을 남길 것이다.
III. 어떠한 새로움이며 무엇을 위한 공공성인가
새로운 공공예술은 어떠한 새로움을 지향하며, 무엇을 위해서 예술의 공공성을 언급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필자는 지난 2007년에 다원예술포럼에서 발표했던 원고 ‘다원예술분야 새장르 공공예술의 의미와 지향’을 재정리하는 차원에서 다음의 몇 대목을 언급하고자 한다. 애초에 ‘다원예술 새장르 공공예술 공모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다원예술 기반의 공공예술 사업은 다음과 같은 의도를 명기했다. 첫째, 탈장르실험, 장르혼융, 복합장르, 독립예술, 실험예술 등에 걸쳐있는 다원예술 분야의 지향을 공공예술의 맥락 속에서 재검토한다. 둘째,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예술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서 특정 장르 일변도의 공공성 논의를 다원예술의 맥락으로 확장한다. 셋째,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서 예술영역에 대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전략을 모색한다. 넷째, 근대적 맥락의 예술적 자율성과 탈근대적 맥락의 예술공론장 논의를 통합의 수준에서 재검토함으로써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다원예술 차원의 공공예술은 공공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예술 프로젝트, 문화적 소수자의 문화생산과 향유를 매개하는 예술 프로젝트, 특정 장소나 사안에 개입하는 행동주의 예술 프로젝트, 특정 공간을 활성화 하는 예술 프로젝트 등을 그 영역으로 설정했다. 새로운 공공예술이란 비물질적이며 비영구적인 예술실험을 지향하는 새로운 형식과 태도의 공공예술을 말한다. 그것은 사적으로 소유가능하지 않은 예술을 말하며, 그것은 예술행위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이나 절차에 있어서도 공히 해당한다. 나아가 이 개념은 예술을 심미적 수준의 창작과 향유의 과정만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으로까지 확장해서 사고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공공예술의 ‘새로운’이라는 용어는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벗어나서 과정 그 자체에 주목하며 상호작용, 효율성 등을 주요 개념으로 도입함으로써 성립한다. 또한 그것은 모더니즘 예술의 폐쇄적인 창작과 매개, 소통의 방식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공공예술 논의는 다음과 같은 공공성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공공성을 염두에 둔 예술은 공공장소에서의 예술, 공공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 공공기금으로 성립하는 예술 등으로 규명되고 있다. 공공의 요청과 예술가의 창의적 결합으로 성립하여 사회적 맥락과 참여민주주의의 성격을 가지는 공공예술은 특정한 장소의 역사성, 특수한 상황이나 의제, 특정한 커뮤니티 등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다. 새로운 공공공예술은 예술의 공공성을 예술의 자율성과 공존의 맥락에서 검토하는데, 이때 공공성과 자율성의 범주를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이라는 규정 범위로 한정한다. 실제 최근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들의 사례를 통해서 보건대 예술가의 자발성에서 출발한 창의력이 떨어지는 공공예술이 오히려 공공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티 논의는 새로운 공공예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포스트모더니티 논의는 모더니티의 체계적인 영역분할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탈분화 과정을 해명함으로써 미술의 실천적 영역과 창작 방식에 있어서 실재와 기표, 현실과 예술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에 당위성을 제공한다. 모더니즘 예술 이후의 예술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실험을 탈분화의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그것을 예술의 장 안과 밖에서 공히 실현가능하게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의 미학화 개념이나 매체, 스타일, 장르의 해체와 중복 등 예술 영역의 확장과 다원주의적 양상은 예술의 탈제도화나 사회적 실천들과의 통합 등과 같은 유연성을 제공한다. 예술의 영역을 제도화한 예술공간에서의 언어게임으로 한정했을 때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공공예술은 지극히 탈근대적인 기획이다.
수잔 레이시는 예술가의 행위 과정을 ‘경험, 분석, 보고, 행동’의 단계로 나누었는데, 그의 개념에서 유추한 공공적인 예술이란 ‘개인의 경험에 따른 주관성적 감성을 공감시키는 단계로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나아가 새로운 합의를 세워내는 과정’으로서 예술행위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공공영역(public sphere)에서의 예술적 실천은 공론장에서의 예술가의 지위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경험자로서의 예술가는 주관성의 공감을 목표로 한다. 분석가로서의 예술가는 정보의 공유를 결과한다. 보고자로서의 예술가는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행동가로서의 예술가는 새로운 합의를 도출한다. 주관성의 공감 단계에서 새로운 합의도출 단계에 이르기까지 예술가 주체의 지위는 경험자에서 행동가로 이행하면서 사적인 예술에서 공공적인 예술로 진화한다.
예술공론장 속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는 예술가이자, 예술가 집단의 조직가이며, 특정 상황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보고하는 이슈 파이터이자, 정치적 맥락 속에서 시민사회의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 내는 사회적 퍼포먼서이다. 새로운 공공예술은 ‘예술을 통한 공동체 건설, 사회적인 표현, 공공적인 안건을 만드는 새로운 미술가의 역할’ 등의 특성에서 드러나듯이, ‘주제의 문제나 장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활성화된 가치체계의 미학적 표현‘을 시도하는 참여적 성격이 강하다. 나아가 그것은 ‘다양한 관객들과 삶의 이슈를 소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을 의미하며, ’장소(site)의 역사적, 생태적, 사회적 측면에 대한 관심으로 관객과의 관계설정을 모색하는‘ 예술이다. 나아가 '의제(issue)'의 맥락에서도 특정성을 견지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새로운 공공예술은 장소 특정성과 의제 특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예술이다.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의 규모와 방법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해명 또한 개념 설정에 도움을 준다. 예술적 공공영역의 크기는 국가단위에서 유포하는 공공성이나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언론이 조작하는 여론 형태의 공론장과는 다른 규모와 방법을 가진다. 새로운 공공예술이 만들어내는 공공성은 예술적 실천이 기능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와 그에 걸맞은 방법을 모색한다. 나아가 그것은 예술적 실천으로 성립가능한 방법론을 찾아가되 그것을 동시대 사회의 규범이나 윤리에 입각한 공공성과 긴장관계 속에서 실행한다. 새로운 공공예술은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방식을 재구조화 하는 데 이바지한다. 예술노동이 결과하는 물질형식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성찰함으로써 예술작품이라는 물질과 화폐의 교환이라는 기성의 교환방식을 재검토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이때 예술창작을 위한 물적 토대로 작용하는 화폐가치가 자본의 자기증식 수단으로 전화하는 대목에 대해 창조적으로 개입하여 예술의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로 전도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예술노동이 사회적 공공적인 기제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환방식에 관한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VI. 맺음말
다원예술이라는 정책 목표 또는 예술 개념을 확장하는 데 있어 새로운 공공예술의 향배는 동반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장단기 전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단기 전망은 첫째, 다원예술 부문의 탈장르 및 혼합과 혼융의 예술실험에 있어 예술의 장 안과 밖을 넘나드는 새로운 사례를 창출하며, 둘째, 예술계에 대한 공적 자금의 투여를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며, 셋째, 공공영역과 예술의 결합과 분리, 상생과 갈등을 만들어냄으로써 생활세계와 예술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는 탈분화 예술의 역할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예술의 생산과 매개와 향유를 전일적인 가치체계 안에서 매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와 예술생태의 건강한 관계정립을 위한 대안을 창출할 것이며, 예술과 비예술, 제도와 비제도, 전문성과 아마추어리즘의 경계를 완화함으로써 새로운 예술 개념을 창출할 것이다. 나아가 예술이 자본의 비대화와 이에 대응하는 국가의 역할 사이에서 대안적 실천 영역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들은 다원예술이라는 정책 목표, 혹은 예술 개념에 풍부한 경험들을 제공했다. 무엇보다도 예술장르의 분화를 넘어서는 통합의 관점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예술과 비예술, 예술영역과 생활영역을 넘어서는 통합의 정치학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예술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구현하는 배치의 미학은 장소 특정성을 넘어 의제 특정성을 언급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예술운동과 사회운동의 창의적 결합을 모색하는 예술적 공론장의 실현은 액티비즘의 이슈와 만난다. 무엇보다도 시민사회 속에 예술공론장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만들어야 내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일보해야 한다. 상호 동떨어진 형태로 독자적인 예술형식에 대한 형식주의적 탐닉만으로는 생활영역 전반을 두루 관통하는 예술공론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합장르 또는 탈장르와 같은 다원예술의 전략적 목표와 동반하는 예술생산과 매개활동 그리고 창의적인 수용이 공존하는 상황이 새로운 공공예술이라는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 2007 문예연감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