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박선기 : 물질과 관념, 형상과 시선 너머
critic & column | 2005/08/29 10:52
물질과 관념, 형상과 시선 너머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물질 덩어리에서부터 시점에 따라 가변적인 사물의 존재를 파악하게 하는 개념적인 형상작업에 이르기까지 입체조형 작업들은 물질로서 존재하는 개념과 개념을 통해 물질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상호연관의 얼개를 이루고 있다. 김진영의 금속성 입체들과 박선기의 표백된 압착 입체들은 이러한 개념과 물질의 양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영의 결합 연작과 박선기의 시선놀이 연작은 개념과 물질, 개념과 물성, 물성작업과 재현작업 등의 다차원적인 이원구조 아래에서 물질과 관념, 형상과 시선 너머의 변증법적인 결합과 유희를 보여주고 있다.
관념의 물질적 존재를 증거하는 조각
김진영의 ‘결합’ 연작들은 나무와 돌과 같은 사물의 형상을 브론즈나 무쇠로 캐스팅해낸 조형작업을 원통이나 원뿔, 혹은 육면체와 같은 구조체와 이어 붙인 것이다. 이들 결합 연작은 사물의 이미지와 기하학적 구조물 간의 긴장을 기본 축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사물과 구조물의 결합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통합적 질서’를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김진영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하여 그 결과를 새로운 유기체로 만든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 사물과 구조물, 음과 양 등의 이분법적인 대립물을 결합로서 나무뿌리와 육면체, 골판지 박스와 나무뿌리, 엠디에프 판넬 덩어리와 구체 등의 서로 다른 개념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새롭게 묶어 주는 작업이다. 따라서 김진영의 결합은 개념으로서의 조형의지와 물질로서의 예술결과가 이원화 되지 않고 양자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정신과 물질의 이원구조에서 출발하는 김진영의 결합 개념은 양자를 동등하게 강조하기보다는 양자간의 본질적 작용에 주목하여 자신의 작업이 개념에 함몰되지 않고 물질적 존재로 현존하게 함으로써 세계인식의 방법으로서의 예술의 본질에 다가선다. 김진영이 추구하는 이원론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관념의 물질적 존재를 증거하는 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 모든 형상은 판재와 육면체, 원기둥, 원뿔, 구체 등과 같은 원형적인 구조체로 소급하는 것이며 한 걸음 나아가서 그 모든 구조체는 관념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김진영의 이번 출품작들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단단한 금속 덩어리로 현존하는 물성의 향연이다. 알루미늄이나 동, 무쇠 등과 같은 광물질의 물성을 이용해서 단단하고 견고한 구조체를 만들거나 나무등걸의 형상을 본떠서 그 존재론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재현이미지로 형상화 하는 일마저도 금속 자체의 물질적 특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을 떠낸 쇳덩어리의 밑부분을 드러내 보여주는 대목에서 김진영의 관심사는 보다 명확해진다. 그는 돌의 외형을 떠낸 가짜 돌을 보여주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캐스팅 작업을 위해 만든 거푸집의 결합 부분으로 흘러든 쇳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캐스팅 작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선들은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재현을 위해서 갈고 닦아서 없애야할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김진영은 오히려 이들 선을 통해서 쇳물로 떠낸 가짜 돌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마감을 치지 않은 밑부분을 안쪽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뒤집어 놓음으로써 자신의 캐스팅 작업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렇듯 마감 선을 남기거나 속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은 ‘이것은 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돌덩이 아랫부분에 마치 돌덩이의 다리와 같이 붙어 있는 게 있다. 거대한 돌판을 떠받치는 버팀돌과 같이 붙어 있는 이 다리는 쇳물 투입구의 흔적이다. 이 장치에 의해서 김진영의 캐스팅 작업은 돌 자체와 돌을 떠내는 작업과 그 결과로서의 쇳물이 굳어져 마치 돌처럼 보이는 가짜돌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 과정들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는다.
또 하나의 논점은 김진영의 결합 작업이 매스와 볼륨의 관계를 명확히 해준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 봐야할 것이 무쇠 덩어리이다. 가짜돌과 결합한 구조체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중량감을 주는 것이 무쇠 덩어리이다. 쇳덩어리와 쇠로 만든 가짜돌의 사이에서 양감과 궤감의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가짜돌의 볼륨과 대비되는 무쇠의 매스 그 자체가 조소예술의 근원인 형상과 물성의 결합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속은 텅 비어 있어도 겉은 단단한 입체구조물의 볼륨을 형성하면서 모종의 환영을 유발하는 양감의 기능은 대부분의 캐스팅 작업이 안고 있는 속성이다. 이에 반해 돌 그 자체 또는 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 중량감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물질 그 자체의 특성을 확인하게 하는 궤감은 양감에 비해 훨씬 원천적인 물성을 전달한다. 이렇듯 볼륨과 매스의 상호작용을 한 데 묶어 놓은 것이 김진영의 결합 작업의 일단이다.
반부조로 압착한 입체
박선기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물들 가운데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정감이 가는 사물들을 반부조식 입체로 압착한다. 계단, 필름, 책상과 의자, 돌로 만든 책과 의자, 책과 돋보기, 공구, 축음기, 과일들, 카메라, 트럼펫 등 우리 눈에 익숙하게 다가오는 사물들을 특유의 반부조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필연적으로 고정된 시점을 강요하면서도 그 시점을 의심하게 한다. 고정된 시점을 찾아 가는 관객들은 대체로 평면화 된 입체를 투시하는 관찰자의 정위치를 찾아 작품을 감상한다. 소실점들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가장 합리적인 시점을 찾아 안정된 감상 포인트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상적인 확인절차를 거치고 나서 이어지는 동선은 압착된 입방체의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점이 박선기의 작업을 대단히 흥미로운 시선놀이로 만드는 장치이다. 박선기의 작업은 입체조형 작업이 제시하는 견고한 공간과 물질에 대해 관객 스스로 의심하고 되묻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따라서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사물로서의 작품을 대하고 있는 관찰자의 상황을 숙고하게 한다.
관찰자의 시점을 고정시켜놓고 그 시점에 따라 평면 위에 사물을 배치하기 위해 고안된 원근법의 견고한 질서는 박선기의 압착입체의 출발점이자 그 틀을 넘어서는 비등점이다. 상하좌우 네 개의 소실점으로 이어지는 원근법을 구사하면서 동시에 그 원근법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조작된 입방체라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여타의 절차를 통해서 관찰자의 시점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박선기는 판재를 이용해 압착된 입방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소실점에 따른 드로잉법을 적용한다. 특히 대작의 경우는 실재로 동일한 크기의 면일지라도 가깝게 다가서있는 면과 먼 곳으로 물러나 있는 면에 미세한 차이를 둠으로써 회화적 원근법을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좌우로 늘어지는 소실점을 다스리는 수평축의 시선과 위아래 높낮이를 주도하는 수직축의 시선을 적절히 배합한 박선기의 시선은 반부조의 특성과 압착된 입체라는 조형 방법으로 인해 견고한 시점을 넘어서는 가변적인 시선의 유희를 제공하고 있다.
박선기의 시점놀이는 고정된 시점을 제시함으로써 가변적인 시선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것이 일반적인 부조 작품과 박선기의 반부조 입체 작품과의 차이점이다. 그는 나무를 썰고, 붙이고, 다듬고, 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출발은 드로잉이다. 나무 판재 위에 사물의 형상을 그려 넣는 것, 때로는 소실점을 염두에 두고 동일한 면의 크기를 조절해가면서 정교하고 미세한 형상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일반적인 조소작업의 근육질 게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 박선기는 사물을 재현했다. 그러나 그의 재현 작업은 사물을 변형한 것이며, 따라서 그의 목표는 재현 그 자체가 아니다. 사물을 변형하여 재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백색으로 표백된 사물들, 그것도 하나의 고정된 원근법적 시점의 질서에 의해 압착된 사물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세계는 고정된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탈피하는 자유로운 시선의 세계이다.
김준기(예술학)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물질 덩어리에서부터 시점에 따라 가변적인 사물의 존재를 파악하게 하는 개념적인 형상작업에 이르기까지 입체조형 작업들은 물질로서 존재하는 개념과 개념을 통해 물질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상호연관의 얼개를 이루고 있다. 김진영의 금속성 입체들과 박선기의 표백된 압착 입체들은 이러한 개념과 물질의 양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영의 결합 연작과 박선기의 시선놀이 연작은 개념과 물질, 개념과 물성, 물성작업과 재현작업 등의 다차원적인 이원구조 아래에서 물질과 관념, 형상과 시선 너머의 변증법적인 결합과 유희를 보여주고 있다.
관념의 물질적 존재를 증거하는 조각
김진영의 ‘결합’ 연작들은 나무와 돌과 같은 사물의 형상을 브론즈나 무쇠로 캐스팅해낸 조형작업을 원통이나 원뿔, 혹은 육면체와 같은 구조체와 이어 붙인 것이다. 이들 결합 연작은 사물의 이미지와 기하학적 구조물 간의 긴장을 기본 축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사물과 구조물의 결합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통합적 질서’를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김진영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하여 그 결과를 새로운 유기체로 만든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 사물과 구조물, 음과 양 등의 이분법적인 대립물을 결합로서 나무뿌리와 육면체, 골판지 박스와 나무뿌리, 엠디에프 판넬 덩어리와 구체 등의 서로 다른 개념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새롭게 묶어 주는 작업이다. 따라서 김진영의 결합은 개념으로서의 조형의지와 물질로서의 예술결과가 이원화 되지 않고 양자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정신과 물질의 이원구조에서 출발하는 김진영의 결합 개념은 양자를 동등하게 강조하기보다는 양자간의 본질적 작용에 주목하여 자신의 작업이 개념에 함몰되지 않고 물질적 존재로 현존하게 함으로써 세계인식의 방법으로서의 예술의 본질에 다가선다. 김진영이 추구하는 이원론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관념의 물질적 존재를 증거하는 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 모든 형상은 판재와 육면체, 원기둥, 원뿔, 구체 등과 같은 원형적인 구조체로 소급하는 것이며 한 걸음 나아가서 그 모든 구조체는 관념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김진영의 이번 출품작들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단단한 금속 덩어리로 현존하는 물성의 향연이다. 알루미늄이나 동, 무쇠 등과 같은 광물질의 물성을 이용해서 단단하고 견고한 구조체를 만들거나 나무등걸의 형상을 본떠서 그 존재론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재현이미지로 형상화 하는 일마저도 금속 자체의 물질적 특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을 떠낸 쇳덩어리의 밑부분을 드러내 보여주는 대목에서 김진영의 관심사는 보다 명확해진다. 그는 돌의 외형을 떠낸 가짜 돌을 보여주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캐스팅 작업을 위해 만든 거푸집의 결합 부분으로 흘러든 쇳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캐스팅 작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선들은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재현을 위해서 갈고 닦아서 없애야할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김진영은 오히려 이들 선을 통해서 쇳물로 떠낸 가짜 돌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마감을 치지 않은 밑부분을 안쪽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뒤집어 놓음으로써 자신의 캐스팅 작업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렇듯 마감 선을 남기거나 속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은 ‘이것은 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돌덩이 아랫부분에 마치 돌덩이의 다리와 같이 붙어 있는 게 있다. 거대한 돌판을 떠받치는 버팀돌과 같이 붙어 있는 이 다리는 쇳물 투입구의 흔적이다. 이 장치에 의해서 김진영의 캐스팅 작업은 돌 자체와 돌을 떠내는 작업과 그 결과로서의 쇳물이 굳어져 마치 돌처럼 보이는 가짜돌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 과정들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는다.
또 하나의 논점은 김진영의 결합 작업이 매스와 볼륨의 관계를 명확히 해준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 봐야할 것이 무쇠 덩어리이다. 가짜돌과 결합한 구조체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중량감을 주는 것이 무쇠 덩어리이다. 쇳덩어리와 쇠로 만든 가짜돌의 사이에서 양감과 궤감의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가짜돌의 볼륨과 대비되는 무쇠의 매스 그 자체가 조소예술의 근원인 형상과 물성의 결합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속은 텅 비어 있어도 겉은 단단한 입체구조물의 볼륨을 형성하면서 모종의 환영을 유발하는 양감의 기능은 대부분의 캐스팅 작업이 안고 있는 속성이다. 이에 반해 돌 그 자체 또는 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 중량감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물질 그 자체의 특성을 확인하게 하는 궤감은 양감에 비해 훨씬 원천적인 물성을 전달한다. 이렇듯 볼륨과 매스의 상호작용을 한 데 묶어 놓은 것이 김진영의 결합 작업의 일단이다.
반부조로 압착한 입체
박선기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물들 가운데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정감이 가는 사물들을 반부조식 입체로 압착한다. 계단, 필름, 책상과 의자, 돌로 만든 책과 의자, 책과 돋보기, 공구, 축음기, 과일들, 카메라, 트럼펫 등 우리 눈에 익숙하게 다가오는 사물들을 특유의 반부조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필연적으로 고정된 시점을 강요하면서도 그 시점을 의심하게 한다. 고정된 시점을 찾아 가는 관객들은 대체로 평면화 된 입체를 투시하는 관찰자의 정위치를 찾아 작품을 감상한다. 소실점들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가장 합리적인 시점을 찾아 안정된 감상 포인트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상적인 확인절차를 거치고 나서 이어지는 동선은 압착된 입방체의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점이 박선기의 작업을 대단히 흥미로운 시선놀이로 만드는 장치이다. 박선기의 작업은 입체조형 작업이 제시하는 견고한 공간과 물질에 대해 관객 스스로 의심하고 되묻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따라서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사물로서의 작품을 대하고 있는 관찰자의 상황을 숙고하게 한다.
관찰자의 시점을 고정시켜놓고 그 시점에 따라 평면 위에 사물을 배치하기 위해 고안된 원근법의 견고한 질서는 박선기의 압착입체의 출발점이자 그 틀을 넘어서는 비등점이다. 상하좌우 네 개의 소실점으로 이어지는 원근법을 구사하면서 동시에 그 원근법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조작된 입방체라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여타의 절차를 통해서 관찰자의 시점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박선기는 판재를 이용해 압착된 입방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소실점에 따른 드로잉법을 적용한다. 특히 대작의 경우는 실재로 동일한 크기의 면일지라도 가깝게 다가서있는 면과 먼 곳으로 물러나 있는 면에 미세한 차이를 둠으로써 회화적 원근법을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좌우로 늘어지는 소실점을 다스리는 수평축의 시선과 위아래 높낮이를 주도하는 수직축의 시선을 적절히 배합한 박선기의 시선은 반부조의 특성과 압착된 입체라는 조형 방법으로 인해 견고한 시점을 넘어서는 가변적인 시선의 유희를 제공하고 있다.
박선기의 시점놀이는 고정된 시점을 제시함으로써 가변적인 시선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것이 일반적인 부조 작품과 박선기의 반부조 입체 작품과의 차이점이다. 그는 나무를 썰고, 붙이고, 다듬고, 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출발은 드로잉이다. 나무 판재 위에 사물의 형상을 그려 넣는 것, 때로는 소실점을 염두에 두고 동일한 면의 크기를 조절해가면서 정교하고 미세한 형상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일반적인 조소작업의 근육질 게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 박선기는 사물을 재현했다. 그러나 그의 재현 작업은 사물을 변형한 것이며, 따라서 그의 목표는 재현 그 자체가 아니다. 사물을 변형하여 재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백색으로 표백된 사물들, 그것도 하나의 고정된 원근법적 시점의 질서에 의해 압착된 사물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세계는 고정된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탈피하는 자유로운 시선의 세계이다.
김준기(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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