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록밴드의 역사에 헌정하는 탈경계의 지식생산
critic & column | 2009/01/29 08:27

한국 록밴드의 역사에 헌정하는 탈경계의 지식생산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 용도폐기되는 잊혀진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삶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예술가 이기일. 그는 경북 의성의 마지막 성냥공장을 찾아 성냥아트를 시도했다. 담배곽으로 종이조각을 만들기도 하고, 김추자의 추억을 들춰보는가 하면 각목으로 로봇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면면을 성찰하게 하는 물질과 정신, 구조와 개인, 인식과 행위 등 전방위에 걸친 이기일의 탐색은 한국 록밴드의 역사를 아카이빙하는 데에 이르렀다. <괴짜들 : 군웅할거 한국 그룹사운드 1960-1980>는 80년대 한국 록음악의 중흥기를 맞이하기까지 70-80년대를 거치며 황무지를 개척했던 1세대 록밴드를 기리는 헌정 프로젝트이다. 이 기획을 통해서 이기일은 물질을 다스리는 조형예술가의 지위를 뛰어넘어 잊혀진 역사를 갈무리하는 예술지식인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이기일은 오브제 설치작업, 실물자료, 사진작업, 동영상 인터뷰, 공연, 연표 등 다양한 장치를 동원함으로써 잊혀진 역사를 복각해서 현재의 것으로 되살리고자 했다. 히식스가 1971년에 수상한 트로피 실물이 전시장에 우뚝 솟았다. 지하층에서 1층을 관통하는 목재 기념탑 위에 올려놓은 이 컵은 과거의 기억을 끌어들이는 기념비적인 오브제이다. 제3회 플레이보이컵 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히식스가 차지한 최고상 트로피를 높이 모신 작품이다. 60대 뮤지션들과의 인터뷰도 주목할 만하다. 사랑과 평화, 피닉스, 히식스, 바보스 등에서 활동했던 김홍탁, 서병후, 박광수, 이남이, 심형섭, 김기표, 조용남, 김선 등의 1세대 그룹사운드 뮤지션들이 풀어놓은 생생한 육성이 잊혀져가는 근현대의 역사를 되짚게 한다.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음악평론가 등의 증언으로 대중음악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수백장에 달하는 한국그룹사운드 앨범 자켓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홍대앞 카페 곱창전골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수백장의 LP음반 자켓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룹사운드 1세대들인 김치스, 히파이브, 히식스, 피닉스 등의 멤버들이 앨범자켓용으로 찍은 사진들도 대형 프린트로 다시 태어났다. 나팔바지에 색안경을 쓴 새마을 운동 시대 밴드뮤지션들의 사진은 60대에 접어든 뮤지션들 개개인에게 남아있는 청춘의 기억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서구 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의 음악뿐만이 아니라 비주얼 스타일까지 모방하면서 짝퉁 서구를 지향했던 콤플렉스와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던 몸부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집하고 가공한 그룹사운드 계보도 만들었다. 김홍탁, 박광수, 심형섭, 김선 등 60대 음악가들이 개막일에 맞춰 특별공연을 펼친 점 또한 되새겨 볼만 하다.
첨단의 디지털 음악이 화려한 사운드를 창출해내는 시대이다. 음원의 생산뿐만 아니라 그 음원을 전달하고 소비하는 방식 또한 동영상과 디지털, 케이블이나 인터넷과 같은 강력한 매개수단에 의해서 비약적인 수준으로 변화했다. 이런 시대에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보컬로 이루어진 록밴드의 아날로그 음악을 되돌아보는 이기일은 뉴미디어시대 예술생산과 소비에 관해 역설적인 성찰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미8군의 군화발에 묻어 들어왔다는 전후의 서구문화 가운데 대중음악 장르만큼 질곡의 세월을 거친 분야도 드물 것이다. 대학교육편재와 같은 안정적인 재생산 구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황무지와도 같은 음악현장에서 뒹굴며 결성과 해체를 거듭한 그룹사운드의 역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를 낳게 한 생생한 역사이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 이기일의 만들기 작업일 뿐만 아니라 기획자 이기일의 모으기 작업이며, 예술가 이기일과 기획자 이기일 사이를 오가는 탈경계의 예술행동이다. 60년대-80년대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기록한 이 프로젝트는 최종 결과물로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견인하고자 했던 근현대기 대중문화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기일의 작업은 전시 오픈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록밴드의 역사를 개척한 희대의 영웅들은 가요정화운동이나 대마초 파동, 음악시장의 변화 등에 따라 명멸해갔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록밴드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 시각예술 영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상업적 성공이나 당대적 흥행과 무관하더라도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들여다봄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지식 생산의 장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괴짜들 : 군웅할거 한국 그룹사운드 1960-1980> (토탈미술관) 리뷰, 아트인컬쳐 2009년 2월호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