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와 물신주의를 넘어서는 비엔날레 : 아트인컬쳐

critic & column | 2013/09/10 11:41


국제주의와 물신주의를 넘어서는 비엔날레

새로 생긴 격년제국제미술행사 평창비엔날레가 끝났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와 동해 앙바엑스포전시관에서 열린 이 프로젝트는 여름철 피서 성수기에 다수의 관객을 맞이할 계획이었으나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물론 여름철 피서와 전시 관람을 접목하겠다는 전략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피서와 전시 관람은 별개의 일인 것 같다. 관람객 문제는 비판의 초점이 됐다. 하지만 전시의 흥행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전문가 집단의 능력이나 타 비엔날레와의 차별화 전략, 예산과 행정력의 뒷받침, 지역성에 대한 고려 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첫 행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타의 문제들은 다음 행사에서 보완할 수 있겠지만,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관해서는 좀 더 심각하게 논의해볼 문제가 있겠다 싶어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번 행사의 장단점 몇 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 우선 아트뱅크라는 제도로 출품작 중 일부를 공공 컬렉션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한국의 비엔날레들이 그 많은 예산을 투여했으면서도 예술작품을 도시의 유형-무형의 자산으로 남겨놓데 무관심했다는 점에서 많이 아쉬웠는데, 평창은 시작부터 비엔날레와 컬렉션을 연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 작품들이 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가는 것뿐만이 아니고, 자연과 마을을 만나는 것이면 더 없이 좋겠다. 평창은 도시라고 부르기에 낯설 정도로 인공의 도시보다 거대한 자연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따라서 자연환경과 마을을 잇는 생태미술, 대지미술, 장소특정적미술, 커뮤니티아트 등의 키워드로 접근하면 엄청난 문화자산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시각은 사람들마다 좀 달랐다. 강원도의 예술생산이나 향유 조건으로 보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와 대중적인 접근 차원에서 의미있는 시도였다는 평가가 교차했다.


아직 도립미술관도 없을 정도로 척박한 강원도의 문화환경 속에서 어렵사리 대규모 국제미술행사를 만들었건만
, 격려와 찬사보다는 비난과 비판이 거셌다. 두어달 만에 뚝딱 만들어진 졸속행사 평창비엔날레. 세간에서 쏟아지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나는 약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했지만 연전부터 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 행사가 행정력과 예산 뒷받침을 받지 못해 난항을 겪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에 몸담고 일을 하다 보니 행사의 성립을 앞두고 어떤 식의 내홍이 있었을지 대략 짐작되는 바가 있다. 이 행사의 문제점에 대해서 두둔할 수는 없겠지만, 비판의 내용이 좀 더 넓은 시각을 견지할 수는 없는지에 대해서 보탤 말이 있다. 나의 관심은 이 행사의 행정적인 추진과정이나 전시의 외형만큼이나 비엔날레라는 행사 자체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점 자체에 있다.


지금 하나의 물신이 한국미술계를 떠돌고 있다
. 비엔날레라는 물신이다. 비엔날레라는 예술축제의 한 방식이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미술행사라는 형식 이상의 그 무엇으로 부풀려져 여기저기서 난립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는 길은 비엔날레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을 벗어나 특수한 국면을 창출해 내는 데 있다. 이른바 특성화 전략이다. 이미 비엔날레 과잉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있는데 굳이 평창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왜 썼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동시대 미술의 의제를 생성하는 국제적인, 다시 말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미술언어 게임의 장이었지만, 점점 도시정체성을 확인하거나 확대재생산하는 공론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평창비엔날레는 당연히 평창의 가치에 좀 더 구체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창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변하거나 대표할 리 없겠거니와, 오히려 그 반대로 철저하게 평창의 지역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국제주의와 물신화를 넘어 평창의 가치를 만드는 길이다.


물론 평창의 지역성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틀 안에 있긴 하지만
, 여타의 비엔날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보다 미시적인 단위의 도시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즉 국제성(The inter-national, 국가상호성)만이 아니라 도시정체성을 염두에 둔 도시상호성(Inter-city)을 전략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평창이라는 도시의 지역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특성을 살려 특성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평창의 지역성을 도시상호성의 관점에서 엮어 냄으로써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인 이념과 연결하려는 시각도 필요하다. 평창비엔날레를 탄생시킨 최초의 계기를 살리되 그것을 넘어서 지속가능성을 발견하는 지혜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나올 수 있다. 평창비엔날레가 국제주의의 미망과 비엔날레라는 물신을 넘어 평창의 가치를 끌어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아트인컬쳐 기고문 2013년 10월호

2013/09/10 11:41 2013/09/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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