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인체조각이라는 관념을 넘어서는 개념 : 이일호, 김영원
critic & column | 2005/10/30 18:50
구상인체조각이라는 관념을 넘어서는 개념
이일호 2005.9.7-9.16, 큐브스페이스, 김영원 2005,10.7-10.30, 성곡미술관
김준기(예술학)
특정 계보나 사조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고 독보의 길을 걸어온 중진 작가 이일호, 김영원의 개인전이 열렸다. 짧지 않은 공백 이후에 열린 전시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두 작가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단선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들은 사실적인 형태묘사를 바탕으로 인체를 다루어 왔다는 점에서 구상인체조각가로 분류되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최근작은 그러한 단선적인 평가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일호 개인전은 작은 규모의 전시공간에서 단촐하게 꾸린 것이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과거와 인류의 생태적 원류를 찾아 나섬으로써 에로틱 버전에 천착해온 자신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벗어나게 했으며, 개인의 사적인 체험을 우리사회의 집단적인 체험으로 증폭하는 계기로서의 예술의 파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실험정신이 돋보인 ‘작지만 큰 전시’였다. 김영원은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주제로 설치개념의 실험작업을 한 단계 더 진척시켰으며, 실체와 허상의 관계항을 설정하는 관념으로서의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와 허상의 관계항을 역전하는 장치로서 그림자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체구상조각’의 조형성 또는 물질성이라는 비평적 구속을 넘어서고 있다.
이와 벼룩을 기억하는 인어아저씨
조소작품 중심의 전시공간을 표방하면서 문을 연 큐브스페이스에서 이순(耳順)에 이른 중진 작가 이일호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는 온전한 구상 인체가 아니라 분절된 인체를 제시함으로써 초현실적인 상상의 덩어리와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거기에 남녀의 어울림을 잡아낸 에로틱한 테마를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일구어왔다. 어떻게 보면 성적욕망의 문제를 다룬 에로틱 버전은 이일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그의 전부로 이해되어왔다. 좀 더 넓게 보자면 그는 건강하고 탄탄한 구상인체 조형작업을 바탕으로 기하학적 구조체와 인체를 결합하거나 인체의 특정 부분을 늘어트리거나 구멍을 뚫어버리는 등 인체 자체를 구조화하는 반추상 인체 조형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것이 전시장에 알맞은 소품이든 대형 공공미술 작업이든 간에 공간을 휘감아도는 이일호 특유의 조형감각이야말로 공간과 매스, 근대와 탈근대, 조형과 개념을 넘나드는 실험정신과 예기로 가득 찬 것이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이러한 이일호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어주었다. 가장 눈에 띄게 이일호의 이면을 보여준 작품은 <이와 벼룩>이다. 폴리코트로 만들어서 채색을 한 벼룩 한 마리와 한지 부조로 떠낸 이 세 마리이다. 잔털들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롱다리 벼룩 한 마리 옆에 세 마리의 이를 붙여 놓은 이일호의 관심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는 데 있다. 해방 다음 해에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전쟁직후의 고통은 유년의 이일호에게 배고픔으로 다가왔다. 그의 유년에 대한 기억은 가난 그 자체이다. 유년기에 아버지를 여의인 탓으로 그의 어머니는 바느질 품삯 일을 했고, 그의 형은 어린 이일호를 극장에 맡기고 신문배달 일을 나가곤 했다고 한다. 이와 벼룩은 그러한 가난하고 힘겨운 과거의 삶을 일깨워주는 매개체로서 지금은 그 존재에 대해 무감해진 과거의 아이콘들이다. 망각의 아이콘을 끄집어냄으로써 그는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작가로서 한 삶을 꾸려온 자신에 대한 회고를 시도한다. 더불어 그는 한국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잊혀진 기억을 던져놓는다. 망각된 기억을 동시대의 삶의 지평에 투척하는 이일호의 이와 벼룩은 작가 자신의 기억인 동시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담긴 가난의 상처를 대변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은 물고기였다>는 특유의 상상력과 조형감각으로 만들어낸 조형설치작업이다. 구름과 나무 동물 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두 남자가 맞들고 서 있는 수족관 안에는 사지를 웅크리고 넙쭉 엎드려있는 ‘인어아저씨’가 있다. 사람 반 물고기 반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괴물스러운 존재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모습이며, 동시대 사람 모두의 일수도 있다. 인어아저씨를 통해서 이일호가 끄집어낸 과거에 대한 기억은 태고에 대한 기억으로까지 올라간다. 물고기로부터 진화한 인간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풍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가진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맛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바다에 대한 동경은 <해마>에서처럼 에로틱 버전이 가미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여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형상인식의 문제와 ‘바다 속에 사는 말’로서 인어를 대하는 듯한 신비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해마를 종이로 만들어서 마치 조명기구처럼 전시장 천정에 매달았다. <욕망의 근원적인 것들>은 머리카락과 손톱 등이 등장하는 오브제 설치 개념의 작품들로서 그가 이전에 추구했던 자웅일체 개념의 에로틱 버전 조형작업들과는 전혀 다른 발상의 작업들이다. 이렇듯 이와 벼룩을 기억하는 인어아저씨 이일호는 항상 진화하는 더듬이와 촉수를 가진 예술가이다. 따라서 스스로 ‘동시대의 중심으로부터 한 발 비껴서있다’고 말하는 그의 언설은 지나친 엄살인 듯하다.
교란과 착란으로서의 그림자 개념
그림자는 사물을 통과하지 못한 빛의 흔적이다. 그림자는 밝은 빛을 가리는 사물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주는 하나의 형태이다. 따라서 그림자는 그 자체로서의 형상적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실재하는 그 무엇의 잔여이자 흔적으로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 김영원은 이러한 그림자를 하나의 실체로 끌어들인다. 하여 그는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개념을 고안해서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의 주제로 삼았다. 일곱 쌍의 전신상 인체부조를 여럿 복제해서 전시장 전체를 가득 채워둔 대형 설치 작업 <바라보다>는 환조대신 부조를 선택한 김영원의 그림자 연작의 구조와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서, 여성인체의 뒷모습을 정교한 부조로 만들어서 한 쌍 씩 평면의 뒷면이 서로 마주보도록 세워둔 인체부조의 연쇄이다. 이 작품은 한 벽면을 거울로 만들고, 마주보는 인체부조의 연쇄라는 구조를 통해서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전시장 공간에 들어선 관객으로 하여금 실체와 허상, 물체와 그림자, 표면과 내면 등에 관한 명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것은 환조의 연쇄구조를 보여주었던 이전의 작업들에 비해 훨씬 더 복합적인 인지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구조는 온전하게 형태 내부의 굴곡을 묘사하고 있는 부조의 실체감(재현가능성)과 함께 부조의 이면, 즉 평면화 된 인체 실루엣으로서의 뒷면이 제시하고 있는 비어있음과 그림자의 교란과 착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조의 굴곡과 그 이면의 평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얻어지는 그림자의 수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업은 서있는 인체 부조의 발목 부분에서 바닥에 누운 인체부조를 이어붙이고 그 바닥의 인체부조를 가슴 부분에서 한 번 꺾어주는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들이다. 이 연작들은 서있는 인체, 바닥에 누운 인체, 꺾여있는 상체 등 세 개의 부분을 부조의 앞면과 뒷면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브론즈와 스테인리스 스틸의 각각 다른 재질감으로 복잡한 변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닥에 누워있는 볼륨을 상실한 평면의 인체 실루엣 위에 비쳐진 서있는 인체부조의 그림자는 ‘그림자 위에 비춰진 그림(형상)’의 묘한 느낌과 찰나의 성찰을 가져다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루엣으로 서있는 평면 인체 뒤로 길게 이어진 인체부조를 보노라면, ‘그림자의 그림자로서의 형상’이라는 역설을 연출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
김영원의 그림자 놀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착란과 교란을 확고하게 물질화 하여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물결위에 새기다>와 <바람결에 새기다> 연작이다. 이들 작품들은 누워있는 그림자 인체의 장딴지, 종아리, 무릎, 허벅지, 허리 등을 한 번씩 살짝 꺾어주었다.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개념을 한 번 더 비틀어서 그림자 평면이나 부조를 굴곡이 있는 면으로 만들어 둔 것이다. 분절된 신체의 경험에 익숙한 현대미술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그의 꺾어진 그림자의 그림자 개념은 한층 더 복잡한 개념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의미구조망을 근거로 요컨대, 김영원의 그림자는 실체의 흔적으로서의 그림자라는 관념(idea)이 아니리 실체와 흔적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개념(concept)으로서의 그림자인 셈이다. 마직막으로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김영원의 작업이 물질성이나 형상성에 몰입하거나 집착하는 일반적인 조소의 맥락에서 한 걸음 비껴서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시서문에서 김원방이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구상조각의 맥락을 이어낸 작가’라는 김영원에 대한 표피적 인식에서 벗어나, 조소예술에 있어서 포스트모던한 맥락을 한 발 앞서 전취한 작가로 새롭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일호 2005.9.7-9.16, 큐브스페이스, 김영원 2005,10.7-10.30, 성곡미술관
김준기(예술학)
특정 계보나 사조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고 독보의 길을 걸어온 중진 작가 이일호, 김영원의 개인전이 열렸다. 짧지 않은 공백 이후에 열린 전시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두 작가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단선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들은 사실적인 형태묘사를 바탕으로 인체를 다루어 왔다는 점에서 구상인체조각가로 분류되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최근작은 그러한 단선적인 평가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일호 개인전은 작은 규모의 전시공간에서 단촐하게 꾸린 것이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과거와 인류의 생태적 원류를 찾아 나섬으로써 에로틱 버전에 천착해온 자신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벗어나게 했으며, 개인의 사적인 체험을 우리사회의 집단적인 체험으로 증폭하는 계기로서의 예술의 파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실험정신이 돋보인 ‘작지만 큰 전시’였다. 김영원은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주제로 설치개념의 실험작업을 한 단계 더 진척시켰으며, 실체와 허상의 관계항을 설정하는 관념으로서의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와 허상의 관계항을 역전하는 장치로서 그림자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체구상조각’의 조형성 또는 물질성이라는 비평적 구속을 넘어서고 있다.
이와 벼룩을 기억하는 인어아저씨
조소작품 중심의 전시공간을 표방하면서 문을 연 큐브스페이스에서 이순(耳順)에 이른 중진 작가 이일호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는 온전한 구상 인체가 아니라 분절된 인체를 제시함으로써 초현실적인 상상의 덩어리와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거기에 남녀의 어울림을 잡아낸 에로틱한 테마를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일구어왔다. 어떻게 보면 성적욕망의 문제를 다룬 에로틱 버전은 이일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그의 전부로 이해되어왔다. 좀 더 넓게 보자면 그는 건강하고 탄탄한 구상인체 조형작업을 바탕으로 기하학적 구조체와 인체를 결합하거나 인체의 특정 부분을 늘어트리거나 구멍을 뚫어버리는 등 인체 자체를 구조화하는 반추상 인체 조형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것이 전시장에 알맞은 소품이든 대형 공공미술 작업이든 간에 공간을 휘감아도는 이일호 특유의 조형감각이야말로 공간과 매스, 근대와 탈근대, 조형과 개념을 넘나드는 실험정신과 예기로 가득 찬 것이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이러한 이일호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어주었다. 가장 눈에 띄게 이일호의 이면을 보여준 작품은 <이와 벼룩>이다. 폴리코트로 만들어서 채색을 한 벼룩 한 마리와 한지 부조로 떠낸 이 세 마리이다. 잔털들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롱다리 벼룩 한 마리 옆에 세 마리의 이를 붙여 놓은 이일호의 관심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는 데 있다. 해방 다음 해에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전쟁직후의 고통은 유년의 이일호에게 배고픔으로 다가왔다. 그의 유년에 대한 기억은 가난 그 자체이다. 유년기에 아버지를 여의인 탓으로 그의 어머니는 바느질 품삯 일을 했고, 그의 형은 어린 이일호를 극장에 맡기고 신문배달 일을 나가곤 했다고 한다. 이와 벼룩은 그러한 가난하고 힘겨운 과거의 삶을 일깨워주는 매개체로서 지금은 그 존재에 대해 무감해진 과거의 아이콘들이다. 망각의 아이콘을 끄집어냄으로써 그는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작가로서 한 삶을 꾸려온 자신에 대한 회고를 시도한다. 더불어 그는 한국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잊혀진 기억을 던져놓는다. 망각된 기억을 동시대의 삶의 지평에 투척하는 이일호의 이와 벼룩은 작가 자신의 기억인 동시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담긴 가난의 상처를 대변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은 물고기였다>는 특유의 상상력과 조형감각으로 만들어낸 조형설치작업이다. 구름과 나무 동물 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두 남자가 맞들고 서 있는 수족관 안에는 사지를 웅크리고 넙쭉 엎드려있는 ‘인어아저씨’가 있다. 사람 반 물고기 반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괴물스러운 존재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모습이며, 동시대 사람 모두의 일수도 있다. 인어아저씨를 통해서 이일호가 끄집어낸 과거에 대한 기억은 태고에 대한 기억으로까지 올라간다. 물고기로부터 진화한 인간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풍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가진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맛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바다에 대한 동경은 <해마>에서처럼 에로틱 버전이 가미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여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형상인식의 문제와 ‘바다 속에 사는 말’로서 인어를 대하는 듯한 신비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해마를 종이로 만들어서 마치 조명기구처럼 전시장 천정에 매달았다. <욕망의 근원적인 것들>은 머리카락과 손톱 등이 등장하는 오브제 설치 개념의 작품들로서 그가 이전에 추구했던 자웅일체 개념의 에로틱 버전 조형작업들과는 전혀 다른 발상의 작업들이다. 이렇듯 이와 벼룩을 기억하는 인어아저씨 이일호는 항상 진화하는 더듬이와 촉수를 가진 예술가이다. 따라서 스스로 ‘동시대의 중심으로부터 한 발 비껴서있다’고 말하는 그의 언설은 지나친 엄살인 듯하다.
교란과 착란으로서의 그림자 개념
그림자는 사물을 통과하지 못한 빛의 흔적이다. 그림자는 밝은 빛을 가리는 사물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주는 하나의 형태이다. 따라서 그림자는 그 자체로서의 형상적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실재하는 그 무엇의 잔여이자 흔적으로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 김영원은 이러한 그림자를 하나의 실체로 끌어들인다. 하여 그는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개념을 고안해서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의 주제로 삼았다. 일곱 쌍의 전신상 인체부조를 여럿 복제해서 전시장 전체를 가득 채워둔 대형 설치 작업 <바라보다>는 환조대신 부조를 선택한 김영원의 그림자 연작의 구조와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서, 여성인체의 뒷모습을 정교한 부조로 만들어서 한 쌍 씩 평면의 뒷면이 서로 마주보도록 세워둔 인체부조의 연쇄이다. 이 작품은 한 벽면을 거울로 만들고, 마주보는 인체부조의 연쇄라는 구조를 통해서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전시장 공간에 들어선 관객으로 하여금 실체와 허상, 물체와 그림자, 표면과 내면 등에 관한 명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것은 환조의 연쇄구조를 보여주었던 이전의 작업들에 비해 훨씬 더 복합적인 인지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구조는 온전하게 형태 내부의 굴곡을 묘사하고 있는 부조의 실체감(재현가능성)과 함께 부조의 이면, 즉 평면화 된 인체 실루엣으로서의 뒷면이 제시하고 있는 비어있음과 그림자의 교란과 착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조의 굴곡과 그 이면의 평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얻어지는 그림자의 수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업은 서있는 인체 부조의 발목 부분에서 바닥에 누운 인체부조를 이어붙이고 그 바닥의 인체부조를 가슴 부분에서 한 번 꺾어주는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들이다. 이 연작들은 서있는 인체, 바닥에 누운 인체, 꺾여있는 상체 등 세 개의 부분을 부조의 앞면과 뒷면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브론즈와 스테인리스 스틸의 각각 다른 재질감으로 복잡한 변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닥에 누워있는 볼륨을 상실한 평면의 인체 실루엣 위에 비쳐진 서있는 인체부조의 그림자는 ‘그림자 위에 비춰진 그림(형상)’의 묘한 느낌과 찰나의 성찰을 가져다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루엣으로 서있는 평면 인체 뒤로 길게 이어진 인체부조를 보노라면, ‘그림자의 그림자로서의 형상’이라는 역설을 연출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
김영원의 그림자 놀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착란과 교란을 확고하게 물질화 하여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물결위에 새기다>와 <바람결에 새기다> 연작이다. 이들 작품들은 누워있는 그림자 인체의 장딴지, 종아리, 무릎, 허벅지, 허리 등을 한 번씩 살짝 꺾어주었다.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개념을 한 번 더 비틀어서 그림자 평면이나 부조를 굴곡이 있는 면으로 만들어 둔 것이다. 분절된 신체의 경험에 익숙한 현대미술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그의 꺾어진 그림자의 그림자 개념은 한층 더 복잡한 개념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의미구조망을 근거로 요컨대, 김영원의 그림자는 실체의 흔적으로서의 그림자라는 관념(idea)이 아니리 실체와 흔적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개념(concept)으로서의 그림자인 셈이다. 마직막으로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김영원의 작업이 물질성이나 형상성에 몰입하거나 집착하는 일반적인 조소의 맥락에서 한 걸음 비껴서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시서문에서 김원방이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구상조각의 맥락을 이어낸 작가’라는 김영원에 대한 표피적 인식에서 벗어나, 조소예술에 있어서 포스트모던한 맥락을 한 발 앞서 전취한 작가로 새롭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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