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의 문화정치와 태극기를 넘어서는 상상력

critic & column | 2005/08/29 19:47





광복 60년의 문화정치와 태극기를 넘어서는 상상력

광복 60년을 맞은 올해 2005년 여름. 식민지상황에서 벗어난 햇수가 59년이었던 작년의 8.15와 60년이 된 올해의 8.15가 무엇이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하여튼 무언가 특별한 계기를 만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국가 단위의 거대한 기념행사에서부터 작은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광복 60년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넘처났고, 8월의 무더위 속에서 집단주의 이데올로기가 문화정치의 진한 양념 속에 묻어나왔다.

미디어와 권력의 문화정치
8.15 전야에 방송 된 KBS의 다큐멘터리 “광복 60년 특집 다큐, 감동의 순간 60選”은 ‘광복 60년을 맞아, 1945년 식민지의 폐허 속에서 2005년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현대사 중 우리를 웃고 울린 감동의 순간’을 모은 다큐멘터리였다. KBS는 80년대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나 미니 다큐 ‘인생극장’ 등을 소개하면서 그들 스스로 기획했던 방송이벤트들에 대해 스스로 감탄하며 찬미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아쉽게도 이 다큐는 영화와 드라마, 스포츠 등이 토해내는 엔터테인먼트 60년사에 그치고 말았다. 감동의 순간 60선은 대체로 스포츠산업과 문화산업에 포섭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60년사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해방 이후 60년을 가늠하는 감동의 원천을 국가주의 신화와 맹목적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미디어 정치에 귀속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일색의 빈곤한 컨텐츠로 한국 현대사의 감동을 정리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 정치의 파괴력을 실감했던 그날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후덥지근한 한여름밤이었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빈곤은 서울시청의 태극기 이벤트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가운데에 대형 태극기 한 장을 걸어두고 건물의 나머지 벽면을 3600개의 태극기로 뒤덮은 서울시청의 태극기 이벤트는 광복 60주년을 맞은 서울시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눈높이는 너무 낮게 잡은 것이었다. 서울시민들에게 내보일만한 것이 태극기이미지 밖에 없었는가? 너무 쉽게 아무생각 없이 간 것은 아닌가? 1919년 3.1운동에서 1945년의 해방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태극기 아이콘은 침탈당한 국가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절실한 그리움이었다. 그 이후 현대사 속에서 태극기는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아이콘이었다. 국가권력에 대항해 민주화를 부르짖던 80년대에 거리에서 만난 태극기. 2000년대 광화문 거리에서 만나는 태극기. 시청앞 광장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등장하는 극우주의자들의 태극기. 이 모든 태극기들이 진정 해방의 의미를 되새기기 보다는 애국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상징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그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과연 우리 아트영역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심난하게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와 아트의 갈림길에 서서
광복60년을 기념하는 아트 영역의 다양한 이벤트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베를린에서 DMZ까지’라는 제목으로 열린 기획전이었다. 분단의 상징물인 대북 선전용 스피커와 방음벽 등이 아트의 오브제로 등장하고, 베를린 장벽 조각에다가 그림을 그린 서구 거장들의 장벽 아트 수십 점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단지 그곳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만 그랬을 뿐이었다. 식민지 해방을 반전평화의 시대정신으로 연결하며 분단독일의 통일을 기념하는 예술가들의 발언은 여전히 생활영역이 아닌 예술영역 속에 갇힌 소수 교양있는 대중의 예술감상의 대상일 뿐이었다. ‘분단 현실을 딛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자’라는 이 전시의 메시지는 서울시청의 물량주의 태극기 이벤트에 비해 시민의 호응을 얻는 데 있어 매우 소극적이었다. 예술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던가? 아직은 한국사회에서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을 나눌만한 문화적 코드가 부족하다고 푸념하며 ‘서울시민의 민도가 낮은 것’이라고 남 탓을 하고 앉아있자니 한숨이 앞선다. 8.15를 태극기 아이콘으로 집약한 서울시청의 강렬한 이벤트를 생각하면 더욱 더 부아가 치민다.
그래도 아트는 여기저기서 크고 작게 이어진다.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열린 ‘해방 60년과 미군 주둔 60년’을 기념하는 전시 “60-60”전에서 만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국가 단위의 거대한 이벤트들이 망각하고 있는 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했다. 류현희, 박희정, 유한달, 정수, 홍남기 등과 같은 20대 작가들과 30대의 이은미, 박영균이 함께 만든 이 전시는 작은 목소리로라도 외마디 진실을 향한 발언을 이어가는 예술의 운명을 안고 있었다.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유한달 작가의 개념적인 텍스트 작업은 광복 60년의 이면에 존재하는 미군주둔 60년의 현실을 명확히 꿰뚫고 있었다. “위 사람은 평소 행실이 불량하였으나 세계 1등 시민으로서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유수호의 성실한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하찮은 살인 강간 폭행죄에 대하여 면죄부를 수여함". 광복 60년을 맞이한 2005년 여름,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 젊은 작가의 ‘주한미군 면죄부’ 작업에 대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이벤트와 아트의 갈림길에 서서 우리사회의 주류들에게 태극기를 넘어서는 상상력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짬도 없이 광복 60년을 읊조렸던 서울 하늘 한여름밤의 열기는 서늘한 가을바람으로 바뀌고 있다.

김준기(예술학)
2005/08/29 19:47 2005/08/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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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gim 2005/08/29 20:34

    위 이미지의 내력은 이렇습니다.
    유한달, 면죄부, 2005. (해방 60년과 미군 주둔 60년을 기념하는 전시 “60-60”전 출품작)

  2. BlogIcon gim 2005/08/31 02:42

    짧은 글의 경제학을 생각하며 약간 줄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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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60년의 문화정치와 예술적 상상력

    광복 60년을 맞은 2005년 여름. 식민지상황에서 벗어난 지 59년이었던 작년의 8.15와 60년이 된 올해의 8.15가 무엇이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무언가 특별한 계기를 만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국가 단위의 거대한 기념행사에서부터 작은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광복60년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넘쳐났고, 8월의 무더위 속에서 집단주의 이데올로기가 문화정치의 진한 양념 속에 묻어 나왔다.

    미디어와 권력의 문화정치
    8.15 전야에 방송 된 KBS의 다큐멘터리 “광복 60년 특집 다큐, 감동의 순간 60選”은 ‘1945년 식민지의 폐허 속에서 2005년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현대사 중 우리를 웃고 울린 감동의 순간’을 모은 것이다. KBS는 80년대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나 미니 다큐 ‘인생극장’ 등을 소개하면서 그들 스스로 기획했던 방송이벤트들에 대해 스스로 감탄하며 찬미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아쉽게도 이 다큐는 영화와 드라마, 스포츠 등이 토해내는 엔터테인먼트 60년사에 그치고 말았다. 해방 이후 60년을 가늠하는 감동의 원천을 국가주의 신화와 맹목적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미디어 정치에 귀속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이다. 빈곤한 컨텐츠로 한국 현대사의 감동을 정리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 정치의 파괴력을 실감했던 그 날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후덥지근한 한여름밤이었다.
    서울시청의 태극기 이벤트는 올여름 관급 이벤트의 최고봉이었다. 시청건물 가운데에 대형 태극기 한 장을 걸어두고 건물의 나머지 벽면을 3600개의 태극기로 뒤덮은 서울시의 태극기 이벤트는 서울시 공동체 구성원들의 눈높이를 너무 낮게 잡은 것이었다. 시민들에게 내보일만한 것이 태극기 말고 뭐 다른 것은 없었는가? 1919년 3.1운동에서 1945년의 해방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태극기 아이콘은 침탈당한 국가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절실한 그리움이었다. 그 이후 현대사 속에서 태극기는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아이콘이었다. 국가권력에 대항해 민주화를 부르짖던 80년대에 거리에서 만난 태극기. 2000년대 광화문 거리에서 만나는 태극기.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등장하는 극우주의자들의 태극기. 이 모든 태극기들은 애국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문화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그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새로운 감성을 이끌어낼 예술적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태극기를 넘어서는 예술적 상상력이 아쉽다.

    이벤트와 아트의 갈림길에 서서
    광복60년을 기념하는 아트 영역의 다양한 이벤트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베를린에서 DMZ까지’(서울올림픽미술관)라는 제목의 기획전이었다. 분단의 상징물인 대북 선전용 스피커와 방음벽 등이 아트의 오브제로 등장했다. 베를린 장벽 조각에다가 그림을 그린 서구 거장들의 장벽 아트 수십 점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단지 그곳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만 그랬을 뿐이었다. 식민지 해방을 반전평화의 시대정신으로 연결하며 분단독일의 통일을 기념하는 예술가들의 발언은 여전히 생활영역이 아닌 예술영역 속에 갇힌 소수 교양있는 대중의 예술감상의 대상일 뿐이었다. 분단 현실을 딛고 평화와 통일을 노래했던 이 전시의 메시지는 여타의 물량주의 이벤트들과 비교해 봤을 때 시민의 호응을 얻는 데 있어 매우 소극적이었다. 예술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던가? 아직은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을 나눌만한 문화적 코드가 부재한 것인가?
    그래도 아트는 여기저기서 크고 작게 이어졌다.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조용히 열린 ‘해방 60년과 미군 주둔 60년’을 기념하는 전시 “60-60”전을 통해서 대다수 8.15 이벤트들이 망각하고 있는 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했다. 류현희, 박영균, 박희정, 유한달, 이은미, 정수, 홍남기 등 7인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작은 목소리로라도 외마디 진실을 향한 발언을 이어가는 예술의 숙명을 잊지 않고 있었다.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유한달 작가의 텍스트 작업은 광복 60년의 이면에 존재하는 미군주둔 60년의 현실을 명확히 꿰뚫었다. “위 사람은 평소 행실이 불량하였으나 세계 1등 시민으로서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유수호의 성실한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하찮은 살인 강간 폭행죄에 대하여 면죄부를 수여함." 이벤트와 아트의 갈림길에 서서 다시 생각해본다. 광복 60년을 맞이한 2005년 여름, 거대 이벤트들에 포섭된 우리는 한 젊은 작가의 ‘주한미군 면죄부’ 작업에 대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짬도 없이 광복60년을 읊조렸던 서울 하늘 한여름밤의 열기는 서늘한 가을바람으로 바뀌고 있다.

    김준기(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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