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현실 사이의 일시적인 회화 : 김성수 리뷰

critic & column | 2007/02/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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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현실 사이의 일시적인 회화

김성수 : 에페메르, 2007.2.1-2.28, 사루비아다방

‘덧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전시제목 ‘에페메르’는 솜씨 좋은 화가의 회화 작품을 고정된 프레임 안에 붙박아 놓는 대신에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캔버스 프레임을 벗어난 회화작업을 하거나 그 작업을 파괴해서 분산시켜버리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김성수는 ‘일시적인 회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전시장 벽에 석고보드로 화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그린 그림들을 전시 후에 철거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흩어진 그림들이 언제 다시 모일 날이 있을지는 수 십 년 후의 일이다. 우리가 김성수의 이번 전시에서 만난 것은 회화적 기표들뿐만 아니라 회화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일회용 회화. 그것은 회화의 연속성을 벗어나겠다는 것으로써, 이것마저도 일시적인 것이겠지만, 예술적 성찰과 사유를 매개하는 물질형식으로서의 회화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처럼 독자적으로 활개를 치고 다님으로써 교환가치의 화신으로 변모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를 거스르는 개념이다.


도시풍경 연작 가운데 하나인 <neon city> 연작은 도시의 네온사인을 통해서 한국의 매우 독창적인 시각문화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강렬한 원색의 평면 위에 화려한 색채로 도시의 욕망을 지시하는 텍스트들을 담아낸다. 이렇게 매력적인 회화 작품이 일시적인 회화의 개념에 따라 전시 후에 사라진다. 이 회화적 질료의 사라짐은 새벽을 맞아 쓸쓸히 사라지는 도시의 밤을 은유한다. 기둥 사이의 벽면을 가득채운 대작 <metalica>는 도시를 구성하는 철골구조의 강렬한 느낌을 음영으로 처리해 실루엣을 재구성해낸 작업이다. 강남의 코엑스 빌딩 내부에서 바라본 이 철골구조는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을 구분한다. 이 차가운 구조 속에서 김성수는 현대도시를 추상해낸다. 철골구조의 실루엣은 도시의 구조처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그 사이 유리창 너머는 안과 밖, 존재와 비존재를 가르며 거대한 구조로서의 도시를 회화적으로 재현한다.


김성수의 작업에는 관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있다. 그의 회화 속에는 도시나 현대인이라는 회화적 재현의 대상이 존재하지만 그 대상은 구체적인 장소나 인물을 지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표와 기의의 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예술적 기표와 기의 사이에 비워두거나 단절시키고, 채워두거나 연결시켜야 하는 지점들을 적절히 구사하는 현명한 예술가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의 도시와 인물이 다소간 관념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작업에서 실재가 부재하다거나 기표와 실재가 분화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기표와 기의 사이의 적절한 관계설정에 성공하고 있는 만큼 기표와 실재 사이의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관념과 현실 사이에서의 간극을 좁혀나가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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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미술 2007년 3월호 기고문
2007/02/24 10:45 2007/02/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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