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원년의 해, 공공성과 자율성의 공존을 생각한다

critic & column | 2007/06/25 22:28


공공미술 원년의 해, 공공성과 자율성의 공존을 생각한다

김준기 (미술비평, 경희대 겸임교수)

2006년은 한국 미술계에 공공미술이라는 이념이 현실제도로 정착하기 위한 양적 팽창을 본격화한 해로 기록할 수 있다. 물론 양적 팽창에 따른 질적 성장은 차후의 과제로 남겨두었지만, 다양한 방식의 공공미술 실천은 2006년을 공공미술 원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할 만큼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양적인 팽창에 그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1960년대의 민족역사기록화 프로젝트에 이어 1970년대에는 대대적인 기념조형물 사업으로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을 시작한 한국에서 20세기 모더니즘 패러다임의 공공미술을 넘어서고자 하는 새로운 실험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198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건축물미술장식품법 또한 1000억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여전히 공공미술의 주요한 관심사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공공미술법으로 개정하기 위해 국회에 법안이 계류중인 상태이지만 한 해를 지내면서 어떠한 진전도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미술계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 공공미술에 관한 이해부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2006년 한 해를 양분한 미술계의 두 가지 중요한 이슈가 공공미술과 미술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술시장은 미술의 창작을 자본주의적인 상품교환체제로 귀속시키면서 작품의 정신적 가치보다는 자본의 자기증식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피해나갈 수 없다. 그러한 미술시장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것은 미술계로서는 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적 가치 이외의 예술적 가치를 성찰할만한 사유의 장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공미술은 시장질서의 힘과는 다른 축에서 미술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옹호하는 가치이자 태도이며 방법이다. 그것은 미술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관한 20세기 모더니즘의 질서에 관한 근본적인 재구조화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공공미술의 관점은 특히 기존의 공공미술,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건축물미술장식품 개념으로 행해졌던 편협한 공공미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했다.

한편 이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미술의 진정성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공공미술추진위원회의 아트인시티 프로젝트를 통해서 드러난 바, 공공미술의 한계효용 같은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공공미술이 허락받는 미술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근대성의 발현으로 정초한 근대적 개념의 예술의 자율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과연 우리가 예술적 자율성의 개념을 전면 부정한 상태에서 그 어떠한 의미를 생성해낼 수 있는가. 공공미술은 예술의 공공성을 옹호하는 가치이자 동시에 예술의 자율성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한 가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2006년 한 해를 지나면서 미술계 전체에서 고르게 비평적으로 주목받은 프로젝트나 작품 창작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어떤 식으로든 모더니즘 이전 시대와는 다른 방식의 예술과 사회, 예술과 실제의 결합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공미술을 제대로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체험하고 학습했다는 것은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 미술계에 남겨진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공공미술의 신기원,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

문화부가 주최하고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는 2006년을 한국에 있어서 실질적인 공공미술 원년의 해라고 부르게 할 만큼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10개의 공모와 1개의 기획 사업으로 구성된 이 사업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공공미술이라는 영역을 통해서 소외된 지역, 그 지역의 주민들, 생활공간 등에 일종의 시각적 활력을 불어넣는 데 있었다. 공모사업 중에서는 원종동 프로젝트, 철산동 프로젝트, 마석 프로젝트, 대전 홈리스 프로젝트, 해망동 프로젝트, 중흥동 프로젝트, 성서공단 프로젝트, 숭산 프로젝트, 물만골 프로젝트, 수정동 프로젝트가 열렸다. 기획사업으로 꾸려진 ‘낙산 프로젝트’는 이태호 예술감독의 기획으로 진행된 사업으로 아트인시티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대학로와 낙산공원, 서울성곽 사이에 위치한 이화동을 대상으로 했다. 대학로, 낙산공원, 서울성곽 등을 매개할 수 있지만 이곳들이 늘 서로 소통이 없는 섬처럼 존재하므로 이들을 연결하고 매개할 수 있는 공공미술을 통해서 도시 대안적인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 다양한 작품을 설치한 이 프로젝트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미술 답사장소로 자리잡았다.

공모사업의 각 프로젝트는 우선 사업대상을 공모, 선정하고 이어서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서 기획자를 선정하는 순으로 꾸려졌다.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박영균이 예술감독을 맡은 ‘원종동 프로젝트’는 부천시 원종종합사회복지관이 부천 도심에서 워낙 외곽에 위치해있고 이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전반적인 문화적 낙후로 인해 결국 제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를 개선하고자 한 프로젝트로써, 낡고 썩은 놀이기구들을 각 재료전문가가 작가의 디자인을 가지고 교체하고 장식한 사업이다. ‘철산동 프로젝트’(안현숙)는 광명시 동쪽 아파트지역에서 넝쿨도서관이 있는, 동쪽지역 맨 마지막으로 남은 낙후된 지역이다. 이곳은 아직 골목길이 남아 있으며, 머잖아 3-5년 이내에 재개발계획이 잡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를 앞두고 동네의 추억과 일상, 서민들 기억의 흔적들을 담고자 하는 것으로서 동네이미지 매뉴얼 북을 만드는 작업이다. ‘마석 프로젝트’(양철모)는 마석가구단지 내 구성원 중, 가장 소외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은 바로 이주노동자와 녹촌분교 어린이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도시이주로 인해 점차 비어있는 공간이 되어가는 그야말로 소외되어 가는 공간이 이 프로젝트로 인해 오히려 내부적인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매개로서 작용했다.

‘대전홈리스 프로젝트’(정세학)는 노숙자들이 밝은 분위기에서 살 수 있게끔 ‘지역지원센터’와 ‘파랑새둥지’를 가정적이고 밝고 온화한 분위기로 만든 작업이다. 두 곳은 워낙 좁고 어두워 노숙자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각 9개 방마다 밝고 온화한 느낌이 들도록 작가들을 각 방에 연결하고 노숙자들이 이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여 공간을 꾸몄다. ‘해망동 프로젝트’(하영호)는 비록 항구로서의 기능은 상실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풍부한 근현대적 유산들을 품고 있는 해망동에서, 바다와 월명공원을 끼고 있고 자연적인 산비탈 마을이 갖는 적산가옥과 자생적인 계단 그리고 미로형 골목이 존재하는 그 곳의 공간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빈집을 통한 지역사 아카이브관, 예술가의 작업실, 해망굴에서의 지속적인 문화공연, 굴다방을 중심으로 하여 예술가의 아지트 등 문화예술의 개입을 통해서 지역재생을 시도했다. ‘중흥동 프로젝트’(박성현)는 재개발 지연으로 인해 생활환경이 황폐화되어 중흥동의 시민들이 갖게 된 정신적 삭막함과 박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다. 삶의 기능적인 측면과 정신적으로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의 조성을 위해 골목길과 텃밭을 거점으로 벌인 이 프로젝트는 전국의 모든 사업들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성서공단 프로젝트’(이명훈)는 예술가와 노동자의 거리감을 ‘노동’이라는 코드로 풀어가며,예술가, 혹은 작가 개념을 예술노동자로 대체했다. 예술노동자와 근로 창작네트워크는 창의적 작업이 단독적인 워크가 아닌 상호협력에 의한 네트워크이며, 이 같은 관점에서 예술의 창작 역시 이러한 창작 네트워크와 다름없음을 보여주었다. ‘숭산 프로젝트’(박지현)는 놀이 및 체육시설물의 확충이 절실한 숭산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삼아 이를 공공미술과 결합하여 안전이 검증된 놀이 시설물을 개발하고 이를 제작하고 설치했다. 작가의 작업으로서도 단순한 설치예술이 아니며 어린이 놀이공간에서 활용되는 실용예술이자, 지역주민들과 어린이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자리잡았다. ‘물만골 프로젝트’(백종옥, 하석원)는 생태 및 생활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물만골에 필요한 문화적, 예술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놀이터나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그 마을을 ‘소통’적 공간으로 자리하게 하고 마을 내의 공공적 성격을 지닌 장소 10여 곳을 선정하여 마을지도, 현판, 이정표, 벽화작업 등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살렸다. ‘수정동 프로젝트’(서상호)는 문화적 접촉이 희박한 부산의 수정동 일대 지역을 찾아가 공공미술을 펼쳐 열악한 주거지역에 보다 미적인 감수성을 더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종합복지관과 그 주변 수정동 마을의 주민들을 새로운 미적 체험과 소통으로 이끌었다.


미술과 커뮤니티의 새로운 만남, 열 개의 이웃

GRAF(경기지역미술페스티벌)는 경기문화재단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시각예술 분야의 기획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이 2006년 주제를 ‘열 개의 이웃’으로 잡으면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였다. ‘열 개의 이웃’은 공모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나 현상에 예술가가 개입하고 실천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지향하는 퍼블릭 엑세스 정신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취지에 응한 수십 건의 응모작 가운데 10개의 사업이 선정되었고, 경기지역 열 곳에서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열 개의 이웃’은 공모에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대신 ‘예술가와 지역사회와의 소통’이라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나 현상에 예술가가 개입할 것, 이 과정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병행할 것, 오픈 스튜디오 혹은 전시회 등 지역민과 함께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열 개의 이웃’은 각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이러한 요구들이 수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면서 이를 추동해 나갔다. 이러한 시도는 현재 미술계에서 드러나고 있는 공공미술의 개념에 대한 혼선을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판단되며, ‘예술가와 지역 주민과의 소통’과 ‘과정’이라는 본질적인 화두에 집중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소통’과 ‘과정’에 집중하고 결과물을 통해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공공미술’에 대한 다양한 논점들이 각 작업들을 통해 드러나게 하였으며, 이 논점들을 작가와 비평가의 결합, 그리고 이를 다시 모니터링하는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드러내고 공론화하였다. 이 사업은 개별사업비를 400만원 이하로 정하고 이에 따라 작은 규모 안에서 미술의 사회적 소통가능성을 소박하게 모색할 것을 함께 요구하기도 한다.

‘의무를 넘어서’(박영균 작가 / 박응주 비평가)는 부천지역 대안학교인 산어린이 학교의 학부모인 작가 박영균의 영상작업으로서 이 영상물은 우리시대 획일화된 교육을 거부하고 다른 길을 걸어간 대안학교 구성원에 대한 헌정으로서 기록된다. 나아가 대안교육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대안학교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Imagine-무원빌딩’(홍현숙/전민정)은 지역의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무상으로 내준 건물주에 대한 보답으로 이 건물 입주상인들의 디자인 스케치를 받아 간판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로서 건물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기 보다 그저 세입자에 불과했던 작가와 입주상인간의 관계가 입주‘공동체’로서 재정의 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보체사람들의 시간여행’(전원길/박우진)은 안성 보체리라는 농촌마을에 나타나는 세대 간 격차를 미술을 통해 극복하자는 목적으로 교육프로그램으로서 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보체초교 4학년 학생들이 마을 어르신들에게서 마을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함께 마을지도를 그리는 등의 행사들을 통해서 세대 간의 격차를 극복하고 그들 모두가 농촌 공동체의 일원임을 상기시키는 작업이었다. ‘화성지역 예술가 작업실 지도 그리기’(신원재/정경미)는 화성에서 조각작업을 하는 작가들, 그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가이드북과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화성지역 작가들은 서로 네트워킹할 뿐 아니라, 오픈 스튜디오를 열기도 한다. 그 첫 번째는 신원재 작가의 작업실이었다.

열개의 이웃이 아트인시티와 비교해서 공공미술의 예술적 자율성을 살린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것은 다음과 같이 평택 대추리의 예술활동 3건을 공모를 통해 선정하고 진행했다는 점이다. ‘대추리 희망그리기’(이윤엽/박계리)는 마을의 빈집을 수리해 주민들이 모은 사진과 떠난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모아 기념관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이는 곧 사라질 마을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작업으로 그 의의를 마련했다. '황새울 사진관’(노순택/류병학)은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마을 주민들,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사진관을 운영한 노순택 작가가 이를 사진첩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 갖도록 한 프로젝트이다. 그 속에는 평범한 시민에서 어떻게 투사가 되어 가는지를 담았다. 황새울 사진첩에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고단한 투쟁의 일상이 담겨져 있다. ‘공공일기’(김지혜/ 전용석)는 주민과 작가가 함께 그리고 만든 것으로서 5월 4일 행정대집행 후 실제로는 일상적 기능이 마비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생각과 상처를 담아내고자 한 치유프로젝트이다.

‘여행가방가수 프로젝트’(조은지/김장언)는 퍼포먼스 프로젝트로서 일산시내 소비공간인 라페스타의 한 맥주집에 출연중인 필리핀 여가수와의 소통을 통해 문화다양성의 이면을 파헤친 프로젝트이다. 필리핀 여가수 카렌과 바네사가 일당받고 놀러가는 프로젝트로 진행되었고 이 결과를 작가는 동영상과 사운드로 제작하여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였다. ‘상상의 공간-마을공터’(이수영/박수진)는 예술적 상상력을 펼친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고양시 행신동과 토당동의 공터 두 곳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로서 작가는 두 곳에 대한 접근방식을 달리하여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보였다. ‘하남시 5일장’ (이원정/이병희)은 최소한의 공공적 행위인 담배꽁초줍기를 함으로써 공공미술에 대해 개입한다. 이것은 공공미술이 일상생활과 충돌하는 지점을 포착한 것으로 작가의 신선한 문제제기와 유쾌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며, 그에게 쏟아진 시장상인들의 이야기는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 건축물미술장식품법


건축물미술장식품은 1980년대 후반 이래 한국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건축주가 준조세 개념으로 새롭게 건물을 지을 때 준조세 개념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한 규정을 근거로 시행되고 있는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이다. 그것은 환경조형물을 설치함으로써 주거환경이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표식으로서 지역적 특성을 높이고, 더불어 입주민들의 미적인 정서를 함양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 사례로써 대한주택공사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주거공간이 기능적인 측면에만 그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환경의 질적인 향상 고려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문화예술진흥법 제11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및 동시행령, 제24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제24조의2(미술장식의 설치절차.방법), 제24조의3(미술장식심의위원회), 제25조(미술장식의 철거, 훼손시의 조치) 등과 같은 근거를 토대로 공개공모절차를 거쳐서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건축물미술장식품법에 근거를 둔 이들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모더니즘 개념의 미술제도와 창작이념에 따라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밝히고 있는 사업의 목표와 방법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그 절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는 공공장소인 이상 여기에 설치되는 작품은 공공성과 사회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더불어 그 예술적 가치와 창의력 역시 돋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설치장소의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는 주변 조경계획을 포함해 조정할 수 있다. 물론 옥외환경이므로 장기간 견딜 수 있는 충분한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심사에 있어서 구조적인 안정성이 충분히 검토되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안전성과 관련하여 전문가의 검토서를 첨부하기도 해야 한다. 작품의 선정은 대한주택공사에서 구성한 미술장식품 심사위원회에서 평가하고, 이로써 작품을 선정하고 지자체에 심의를 신청하여 승인되는 절차에 이르면 그것이 이제 최종 당선작품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심사위원은 작품심사 시에 당사에서 위촉하고 그 명단은 공개되지 않는다. 당선작가에게는 작품의 제작 및 설치에 대한 시공권한이 부여되며, 이에 작가는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내용에 따라 작품관련 모형. 사진. 도면. 배치도 등을 신청서에 첨부하여 제출하면 된다.

이상과 같이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은 이전에 비해서 절차상의 투명성이라는 부분에서 상당히 개선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예술성과 공공성을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익명으로 공모가 진행되는 약점을 노려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작품을 여기저기 당선시켜 설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보완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문제는 이들 작품들이 공모심사를 통해서 당선된 작품이라는 데 있다. 공모심사를 통과한 작품에 대해서 취소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실질적인 집행은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공모심사 단계에서 원천적으로 이러한 문제의 소지를 제거해야 한다. 그 방법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선 자체 내 미술장식품 전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기존에 당선 및 설치된 작품에 대한 상세한 명세를 만들어서 공모심사 과정에서 비교분석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모심사를 실행하기 전에 전국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여 유사한 작품이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공모심사위원회에 보고하여 판단하게 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직 설치되지 않은 작품들에 대해서도 공모심사에서 선정되는 즉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작품관련 정보를 등재해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다른 지역의 심사에서도 이들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유사한 작품을 여러 군데 출품해서 복수 당선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창작활동은 등한시한 채 전문적으로 장식품 프로젝트에만 매달리는 사이비 작가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도 커다란 문제점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라도 실행상의 내규 개념이 시급하다. 작품의 창의성을 의심받을 만한 수준 이하의 일을 두 눈 뻔히 뜨고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제에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할 텐데, 우선 이 제도의 근본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건축물미술장식품법안의 취지는 좋은 작품을 세우는 일, 예술가를 지원하는 두 가지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가 좋은 작품을 세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법률 아래서도 시행 방법에 따라서 얼마든지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다.

그 한 방법이 지명공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국적인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진정성있는 작가풀을 확보하고 그들이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또는 아트디렉터를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선정 제작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의 사례를 보자면, 예술감독이 작가를 선정하고 작가에게는 소정의 작가보상금을 지급하며, 작품의 제작 실비와 관련해서는 실무진이 콘트롤함으로써 투명한 작품 선정 및 제작, 설치, 감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술장식품 프로젝트도 이렇듯 아트 프로젝트 개념으로 소화하면 비용대비 효율을 높이면서 좋은 작품을 설치할 수 있다. 오늘날 공공미술은 작가중심에서 상호소통 가능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 법제도 또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현행의 진행 방식은 그 어느 단체나 기구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 투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곧 스스로 발목을 잡는 부메랑 같은 것이다. 투명성을 살리려다가 오히려 수준 낮은 유사작품만 나열되고 실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는 찾아보기 드문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2006년 한 해를 지나면서 1000억 시장으로 성장했다는 비공식 통계가 나올 정도로 왕성하게 실행되고 있는 이 제도가 보다 실질적인 예술공론장의 계기를 만들도록 제도와 비평적 개념을 활성화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프로젝트들 이외에도 다양한 공공미술 실험들이 이어졌다. 안양의 스톤앤워터 박찬응 관장을 중심으로 진행된 <석수시장프로젝트>는 예술적 실험과 공공성이 지역공동체 속에서의 예술적 실천이라는 맥락 속에서 조화롭게 진행된 사례로 손꼽힌다. 임옥상미술연구소가 진행한 <2006 예술사랑 문화나눔 프로젝트>도 소외지역과 함께하는 공공미술 사업을 펼쳤다. 2005년에 진행된 사례이긴 하지만 이경복이 총괄기획과 진행을 한 <3백만원 프로젝트 : 미술로 등긁기>는 예술의 사회적 쓸모를 묻고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미술가가 자신의 거점을 중심으로 어떻게 작업의 공간과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 매우 신선한 논점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서 2006년에 <3백만원프로젝트 비평세미나>를 열어서 공공미술 논의를 확장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포럼에서도 공공미술법안의 진행과정과 새로운 공공미술 논의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으며, 그 외에도 언론과 학계 등에서 공공미술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이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언급해두어야 할 것은 미군기지가 확장이전함으로써 삶의 터전을 세 번째 빼앗긴 대추리에서 지속되어온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것이다. 2004년 이래 가수이자 예술운동가인 정태춘을 비롯해서 수많은 음악인, 문학인, 미술인 등의 예술가들이 대추리를 방문하여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으며 그림을 그리고 입체작품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으며, 동네박물관을 만들며 평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마을의 흐름과 동행했다. 국가 단위에서 유포하는 공공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대추리의 예술활동은 남한사회의 합법적인 공권력에 부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성의 맥락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대추리예술활동은 대추리 주민과 함께 공공영역을 형성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공공미술의 활성화를 공언하고 있는 오늘날 깊이 새겨보아야할 대목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술적 자율성, 실험정신과 모험과 도전을 배제한 예술행위는 공공근로방식의 미술창작으로 성립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공공미술로 자리잡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공적 기금으로, 공적 장소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예술활동을 해야한다는 공공미술의 정의에 공공성과 예술적 자율성의 공존이라는 비평적 논점을 추가하기 위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006 문예연감 공공미술 부문 기고문

2007/06/25 22:28 2007/06/2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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