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개혁 입법 논의에 관한 리포트

critic & column | 2010/02/25 00:18


공공미술 개혁 입법 논의에 관한 리포트

제도라는 사회적 합의는 인식이나 관행에 후행한다. 한국사회는 1980년대 후반 이래 건축물미술장식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지난 20여년간 실행해 왔다. 도시미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과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유지해온 이 제도가 이제 대대적인 변화의 기로에 섰다. 사실 이 제도에 대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안팎의 목소리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변화를 개혁 드라이브로 실행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야했다. 변화에 관한 열망은 법제도의 정비를 통해서 실효를 발휘한다. 몇 년 전 이 제도와 관련하여 개혁입법을 만들고 국회에서 논의를 거쳤으나 계류 상태로 머물다가 세월만 흘려보내고 말았지만 공공미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은 이미 대세를 이루었다. 문제는 그것을 법제도의 개정과 시행에까지 이르도록 사회적 합의로 구체화 하는 실질적인 개혁의 구상과 실천력이다. 지금 공공미술 제도개선을 위한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다.

조만간 공공미술 제도개선을 위한 법 개정이 구체적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자료조사와 연구용역 등을 거쳐 새로운 법안을 손질하고 있다. 논의 중인 개정안은 몇 년 전의 논의 수준과 유사하다. 가장 큰 의미는 공공미술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건축물미술장식품이라는 용어를 공공미술작품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기존의 개념에 따르면 미술작품은 건축물의 환경을 시각적으로 환기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장식품이었다. 물론 미술작품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랜드마크 기능을 한다거나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천편일률적인 장식품 개념이 무개념 장식품들을 양산함으로써 유의미한 예술적 소통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시각예술의 존재 기반을 스스로 배반한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의 실패로 귀착했다. 미학적 파산에 이른 공공공해물이라는 안팎의 비판은 공공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규정을 달리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법개정의 가장 큰 의미는 공공미술개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선택적 기금제이다. 그동안 이 제도는 건축비용의 0.7%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건축물을 장식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이른바 퍼센트법에 의존해왔다. 개정안도 여전히 건축주가 비용을 출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 법안과의 차이점은 기금 출연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건축주가 건물 앞에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일정정도의 금액을 공공미술 기금으로 출연하는 것이다. 기존의 0.7% 규정을 기금으로 출연하면 0.5%로 낮추는 방법으로 기금출연을 유도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요율을 낮춰서 간접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함으로써 기금 출연 비율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 작품 설치와 기금 출연 사이의 요율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 더 논의를 해야하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공공미술 시장 규모의 축소를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을 공공성에 입각한 예술과 사회의 접점 형성이 아니라 이윤창출을 위한 채널로 생각하는 시장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는 공공미술 기금관리 주체의 문제이다. 몇 년 전의 거센 제도 개혁 반대 논의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당시의 반대 논리 가운데 하나가 공공미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러한 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서 공공미술 기금을 관리하게 한다는 계획은 이번 논의에서 빠졌다. 대신에 예술위원회에서 공공미술 기금을 관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기금 관리를 위해 별도의 조직을 만들 경우, 권력의 독점문제, 조직 관리의 효율성 문제, 지역별 위원회 구성의 인적 한계 등 여러 문제들을 지적 받았던 이 사항은 예술위원회의 기금관리로 잠정 합의를 이룬 상태이다. 이 경우 불필요한 논란 없이도 기금을 관리 운용할 수 있고, 프로세스 아트와 같은 새로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져 실질적인 제도개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의 공공미술도 여전히 난제이다. 예술의 공공성이냐 개인의 사유재산권이냐 하는 해묵은 문제도 있다. 건축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을 가진 몇몇 주체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공공미술제도의 도입과 실행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간 1천억을 밑도는 공공미술 시장을 두고 이렇게 논란이 큰 것은 그만큼 제도 실행에 관련한 주체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문제는 공공기제로서의 공공미술제도를 놓고 어떤 방식으로 합의를 도출하느냐 하는 데 있다. 사실상의 민간 영역인 민간건축을 놓고 공공성과 사유재산권 논의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귀결일 수 있다. 공공미술의 핵심은 민간건축부문이 아니라 공공건축부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경우 0.7%의 요율을 1%로 상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아쉬운 것은 공공건축 부문의 규정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학교와 병원 등을 비롯한 공공건축 부문이 공공미술을 실행하는 핵심 시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공공부문의 제도시행의 대상을 좀더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것이다.

남은 문제들도 많다. 공공미술 기획대행자 등록 의무화 조항이 위헌소지를 지적받아 개정안에서 빠진 점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개인이나 단체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인데, 그 정황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만성적인 부정과 비리가 횡횡하는 관행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수수료율을 규정하는 논의도 빠졌다. 시장 자율성에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존의 이른바 꺾기 관행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브로커들의 터무니없는 브로킹을 막을 수 없다면 제도 개혁은 하나마나이다. 절차적 투명성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법개정은 무용지물이다. 법 개정 후에 시행령을 만들어서 섬세하게 세부 지침을 만드는 일들이 많이 남았다. 몇 년 전의 개혁 논의가 무산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 시절에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던가! 좀 더 세월이 필요한 일이었던가! 새로운 합의 도출이란 얼마나 지난한 일이던가! 이제라도 하나씩 쟁점들을 챙기고 중론을 모아서 좋은 제도와 관행을 만들도록 안팎의 지혜를 모을 때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0년 3월호 기고문

2010/02/25 00:18 2010/02/2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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