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1   다음 

아마벨에 관한 단상

public art/art works | 2007/08/19 11:5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며칠전 모 일간지와 한 연구소에서 서울시내 공공미술 작품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 한 점을 추천해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서울역 앞 박기원의 작품도 있고, 흥국생명 앞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소나무에 둘러쌓인 스텔라 작품이 더 크게 떠올랐다. 한국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하는 역사적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짧게 몇자 써본 아마벨에 대한 단상과 넷상에서 퍼온 사진 두장을 올린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공공미술 작품은 포스코 빌딩의 아마벨이라고 생각한다. 프랭크 스텔라의 이 작품은 건물 앞에 세우는 공공미술 작품이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거나 기하학적인 추상의 형태를 띄는 것과는 달리 일그러진 금속 덩어리들을 뭉쳐놓은 작품이다. 세간에서는 이 작품을 두고 흉물이라고 부르는데, 현대미술은 이미 형식상의 미와 추의 개념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공공미술 작품은 건축물을 장식하는 부속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대정신과 장소성과 역사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텔라는 20세기 물질문명이 남긴 금속 덩어리를 도시 한가운데 투척함으로써 우리시대가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철거논란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지만 언젠가 이 작품은 한 시대를 증거하는 훌륭한 공공미술 작품으로 재평가 받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08/19 11:55 2007/08/19 11:55

진화하는 공공미술, 낙산 프로젝트

public art/art works | 2007/04/27 03:26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가을에 개막한 낙산프로젝트. 낙산 끝자락 마을의 굴다리 옹벽에 놓인 스티로폼 화분들 위로 고니 두 마리가 날아앉았다. 유리공예 조형물 사이로 새싹이 자라 오르고, 그 아래 화분에서 야채들이 피어오르더니 어느새 흑백의 고니 한쌍이 날개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낙산프로젝트는 진화하는 공공미술이다.
2007/04/27 03:26 2007/04/27 03:26

케이티엑스와 물레방아, 용산역 버전

public art/art works | 2007/03/19 15: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역에서 만났던 '케이티엑스와 물레방아의 만남'을 용산역에서도 만났다. 그곳에서도 역시나 주인공은 물레방아나 케이티엑스 따위가 아니라 저 빛나는 광고용 전광판이다.

주변의 저 어수선한 광고 이미지들과 안내 텍스트들 속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저 광고판!!!

저 훌륭한 광고판을 머리에 이고 오늘도 물레방아는 잘도 돌아간다. ... 아, 참!!!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저 훌륭한 케이티엑스도 "미래를 향하여" 졸라 잘도 달려간다.

2007/03/19 15:56 2007/03/19 15:56

변강쇠 아저씨와 괴산청결고추

public art/art works | 2005/08/03 23:41








2005/08/03 23:41 2005/08/03 23:41

촛불의 기억이 사라진 그 자리

public art/art works | 2005/06/19 21:17



촛불의 기억이 사라진 그 자리.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옆, 효순이 미선이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가 철거된 자리이다. 어렴풋하게 시멘트 자국이 남아있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저편에 서서 광장을 호령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다시 바라보곤 한다. 23전 23승의 불패신화를 이룩한 민족의 영웅 이순신. 그를 기리는 마음을 물질화한 박정희의 전략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코드를 재생산하고 있다.

작은 도시의 평범한 여중생 두명이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사건을 계기로 촛불을 둘고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기억하려는 시도는 종로구청의 불법시설물 철거라는 법집행 행위앞에 무기력하게 사라져버렸다. 공공장소에서 아트를 실행하고자하는 마음을 묶어내는 사회적 합의와 절차 과정을 거치는 방법론이 아직 우리에게 갖춰져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주평화 촛불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효순 미선의 영혼으로 피어난 100만의 자주평화 촛불을 되새기며... 2003년 6월 13일 효순미선 1주기와 광화문 촛불행진 200일째를 맞아 10만 준비위원의 힘으로 기념비를 세우다. 613 효순미선 1주기 추모대회 국민준비위원회"

촛불의 바다로 미대관을 집어삼켰던 한국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공공장소와 영역에서 예술은 아직 제 할일을 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자리에 촛불을 밝혔던 수많은 이들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공공미술품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땅에서 진보적인 미술실천과 담론생산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수사를 절반쯤은 거짓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할 생각이다.


2005/06/19 21:17 2005/06/19 21:17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미술 : 콜비츠의 모자상

public art/art works | 2005/06/07 17:36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만큼 전쟁의 상처를 깊이 담을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이 작품에 대해 초라해보인다거나 비극의 처절함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논평들에 대해 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라...

옛동백림지역의 한 근대건축물 한동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이 작품을 대하는 순간 나는 이 작품을 대하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 텅빈 공간 속 한 가운데에 아들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덩그마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도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었다. 건물 천정이 뻥뚫린 상태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것이다. 바깥이었다면 이런 감동이 없거나 덜했을 것을 아무것도 없이 텅빈 건물 안에 모자상을 두고는 천정을 뚫어 눈비를 맞게 하다니 이건 정말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도 유분수지 너무 심했다.

아무 장치도 없이 텅빈 공간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브론즈 조상이 있고 그 위에 빛을 떨어뜨리는 천정의 구멍. 그러고 보니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라기 보다는 눈비를 끌어들이는 장치였다. 그 천정의 구멍 하나로 인해 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수퍼울트라매가톤급 신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숭고미란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직업상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드문 일이다. 아무튼 나는 콜비츠의 이 모자상을 언급하곤 한다. 모자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식상한 주제인가. 서구의 피에타 조상들만 해도 얼마나 애절하게 수천년동안 관람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겠는가.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 위에 있는 모자상은 또 얼마나 많은 힘겨운 이들에게 삶의 따뜻함을 전달했겠는가. 하지만 대다수의 모자상들이 종교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신파적 내러티브 자체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콜비츠의 모자상이 각별한 이유는 모자상의 신파적인 내러티브를 근대화하는 장치를 매우 효율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단촐하리만치 군더더기 없는 조형물을 바닥에 깔아 두었다는 점과 천정을 뚫어 빛과 눈비를 끌여들이는 탁월한 감성학 때문이다. 광장에 우뚝선 높은 좌대 위의 영웅적 인물상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이렇게 낮은 곳에 임한 인간적인 모습의 공공미술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열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본디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일까.
2005/06/07 17:36 2005/06/07 17:36

낮은 데로 임하소서 : 동백림 광장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public art/art works | 2005/06/07 15:30



낮은 데로 임하소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백림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서베를린 지역에 사는 성민화 작가 집에서 동베를린 지역으로 가는 2층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동백림의 중앙 높다란 탑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은 관광버스가 2층인 까닭은 바깥 풍광을 꼼꼼하게 살펴보라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날 밤 음주활동 덕분에 아예 자리잡고 잠자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러니까 동백림지역으로 접근하는 주변 풍광을 전혀 접하지 못한채 내가 도착한 곳은 그저 높게 솟은 탑이 있는 무미건조한 곳이었다. 동독의 구 사회주의 국가의 옛 이미지는 그렇게 무미건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탑 근처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역사속의 동독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정말 낮은 곳에 임하고 있었다. 그냥 광장에 내려와 있었다. 동독이 이데올로기적인 상징물로 치자면 최고로 추앙했을 법한 아이콘을 그냥 광장 한가운데 낮은 곳에 세워놓았다는 점. 여느 광장의 우뚝 선 영웅과 대비되는 감동적인 동상이었다.

2005/06/07 15:30 2005/06/07 15:30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연작

public art/art works | 2005/01/31 02:14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연작

거대한 크기로 우뚝 선 대나무 인간. 최평곤 작가는 대나무를 엮어서 만드는 방법으로 다양한 인체 표현을 해왔다. 자연과 인공, 생태와 문명을 넘나드는 명상적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작품은 불굴의 주먹을 움켜쥐고 우뚝선 거인이었으며,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생명의 모태이자, 파랑새를 안은 따뜻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거대한 문인상과 무인상을 우리 앞에 우뚝 세워 놓았다. 이 두 작품은 지금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서 있다.

<문인상> 2004

<무인상> 2004

<무인상> 2004 측면


<아가를 위하여> 2002년 부산비엔날레 때 해운대 해수욕장에 설치했던 작품이다.


<파랑새> 서울시립미술관에 설치했던 작품이다.
2005/01/31 02:14 2005/01/31 02:14

 이전  1   다음